[Opinion] 담장을 넘어 발견한 ‘너’ [영화]

글 입력 2024.08.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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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사라질 때가 있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점심시간의 붐비는 식당 등. 시선을 두는 곳마다 인간으로 넘쳐나는 도시에서 때로는 디스토피아 영화 속 황량한 세계를 선망하기도 한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듯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소위 말하는 ‘인류애’가 소멸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스크래퍼>는 그럼에도 우리가 ‘혼자’가 아닌 ‘함께’여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스크래퍼>는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속담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듯 문장에 줄이 그어지고, 서투른 글씨로 써 내려간 새로운 문장이 등장한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 자랄 수 있어.’ 


영화의 주인공 ‘조지’는 엄마를 여의고 혼자 살아간다.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기 싫은 그는 ‘윈스턴 처칠’이라는 가상의 삼촌을 만들어 사회복지사의 의심을 피한다. 영화의 앞부분은 그가 홀로 서는 방식을 조명한다. 능숙하게 집을 청소하고, 친구와 자전거를 훔쳐 생활비를 충당한다. 친한 편의점 점원의 목소리를 녹음해 사회복지사와의 전화 통화도 문제없이 넘어간다.

 

조지의 하루는 망설임이나 서투름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나이에 비해 너무도 빨리 맞이한 ‘혼자만의 삶’을 능숙하게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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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날 담장을 넘어 낯선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조지의 삶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제이슨’은 조지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소개하지만, 조지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한다. 제이슨을 집에서 쫓아내려고도 해보고 그의 핸드폰도 뒤져보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이들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어린 나이임에도 나름의 성숙함을 내비치는 조지와 달리 제이슨은 철이 덜 든 어른이다. 그는 자전거를 훔치는 조지를 훈육하지 않고 오히려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후에는 조지가 자전거를 훔칠 때 망까지 봐주기도 한다. 이처럼 제이슨에게서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면모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제이슨을 만나고 엉망진창이 된 조지의 삶은 이전보다 역동적이다. 담담해 보였던 그가 제이슨을 만나며 속에 쌓아왔던 여러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다. 제이슨은 서투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지의 삶을 함께한다. 그가 자전거를 훔치거나 경찰을 피해 도망쳐도 그저 친구처럼 같이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애써 삼켜왔던 조지는 제이슨과 놀며 장난기 가득한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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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던 조각을 찾아 완성한 퍼즐처럼, 이들 역시 서로의 존재로 자신을 완성해나간다. 제이슨은 딸을 만나 아버지로서 더욱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조지 역시 그를 만나 아이로서의 천진난만함을 되찾는다.

 

혼자 자랄 수 있다고 자부했던 조지가 제이슨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스크래퍼>는 적당한 온도로 무겁지 않게 담아낸다. 지금도 자신의 존재가 필요 없냐고 묻는 제이슨에게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조지. 그리고 어색하지만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부녀의 모습은 관객들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불완전하기에 때로는 타인을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 역시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갈등 끝에도 결국 서로를 택한 조지와 제이슨처럼 말이다.

 

‘함께하는 것의 미학’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담장을 넘어야 한다. 제아무리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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