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과 아프리카, 시대를 넘어선 합주 [전시]

글 입력 2024.08.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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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출처 : 모리미술관 홈페이지.

 

 

"일본에서 처음으로 열린 아프리카 흑인 예술가의 개인전".


미술관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의문이 떠나지 않던 전시 타이틀이다. 아프리카 미술을 다룬 전시가 왜 일본 롯폰기 한복판의 모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을까? 역사적 연관성도 희박하고, 문화적인 공통점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본에 저 멀리 아프리카의 미술품이 한데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 주인공인 티에스터 게이츠 작가는 문화의 융합이 아닌 ‘연대’를 추구하며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일궈냈다. 192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민예 운동과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메시지를 결부한 자신만의 예술관을 보여줌으로써, ‘아프리카 미술을 일본에서 선보여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게이츠가 전시장에서 두 문화의 호흡을 맞추어간 과정과 결과물을 함께 살펴보자.


 

 

Afro-Mingei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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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는 흑인 인권운동, 일본 민예운동 등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세 면에 달하는 전시 공간을 할애했다. 사진 직접 촬영

 

 

미국계 흑인인 게이츠는 두 문화의 진정한 우정을 꿈꿨다. 각기 다른 이유로 그림자 속에 침잠해가던 것들이, 함께 영글 수 있도록 계속해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게이츠가 자처한 역할이다.


그 만남은 '민예(Mingei)'에서 찾았다. 게이츠는 2004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도자기를 공부했다. 저명한 작가를 콕 집는 대신 민중의 누군가가 주체가 되고, 그 무엇보다 일본 사람들의 일상을 밀접하게 보여줄 수 있는 민중 공예는 게이츠가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도 새로운 소재였다.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전역에 깊은 뿌리를 둔 도자기는 토속적 향취가 가득한 아프리카 미술이 연상되는 좋은 매개체다. 게이츠가 머문 아이치현 토코나메 지역은 일본의 오래된 6개 도기 산지인 6고요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곳이다. 철 성분이 풍부한 점토 덕분에 일찍이 8세기부터 도자기를 생산했으며 현재는 과거의 1/3정도 규모의 도기를 만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이츠는 해당 지역에 지금까지도 일 년에 한 번씩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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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국-중국의 도자기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 사진 직접 촬영

 

 

일본의 민예 운동이 영국 미술공예운동과 조선 공예와의 만남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민예 운동의 선구자라 불리는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예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조선백자의 여백에 미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한국-일본-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은 도기 작품들을 비치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동아시아 민예의 역사를 보여줬다.


이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를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게이츠만의 방식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미시시피로 이주해 미국계 흑인 여성과 결혼하는 가상의 인물, ‘야마구치’를 설정해 두 문화의 연결고리를 스토리로써 꾸며냈다. (야마구치는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의 성을 본땄다.) 야마구치 연구소라는 가상의 설정 속에서, 게이츠는 일본 민예와 아프리카 미술의 융합을 일궈낸다.


야마구치 연구소는 그 출발점으로 지난 16세기, 정유재란의 여파로 일부 한국인이 일본에 넘어가며 또 다른 도기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한다는 흐름을 취해 역사적 사실성을 더했다. 이처럼 게이츠는 자신의 예술관을 투영한 일종의 페르소나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의 흐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꾀하고, 그다음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다.


 

 

보존의 가치



 

 

내 것을 알아야 다른 것과의 연대도 가능해지는 법이다. 게이츠는 내 것을 알기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컬렉팅, 즉 수집을 선택했다.


전시의 도입부에는 다양한 흑인 예술 작품이 각기 다른 형태로 배치돼 있다. ㄱ자로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공간에, 작품들이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자리한다.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면 벽면 가득 길게 늘어선 향, 시선을 내려보면 읽고 쓰지 못하던 흑인들의 현실이 담긴 석기 작품, 시선을 위로 올리면 아래를 내리쬐는 천사의 모습이 눈에 띈다. 작품에 투영된 의미에 따라 달리 배치된 작품들의 모습은 전시장에 각각의 의미가 움트게 했다.


특히 공간의 한켠에 일곱 개의 스피커와 자리했던 하몬드 오르간은 아프리카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흑인 교회를 상징하는 오브제이자, 게이츠가 그의 예술혼을 처음 일깨웠다는 소회를 남긴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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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아프리카 미술/역사와 관련한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모습. 사진 직접 촬영

 

 

하나하나의 작품에 두었던 시선은 이윽고 전체로 확장된다. 게이츠의 예술관이 가장 상징적으로 담긴 작품이 등장하는 것 역시 이때부터다.


전시장 가득 빼곡히 들어찬 책장에는 흑인미술과 역사에 관한 책들이 빈틈없이 꽂혀있다.

 

각각의 책 한 권이 흑인미술의 파편을 함축하는 이 공간을 지나면, 게이츠가 시카고를 배경으로 펼친 다양한 프로젝트가 사진을 통해 소개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모두 버려진 공간에 예술창고의 색을 입혀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게이츠가 줄곧 강조해 온 수집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일명 ‘부동산 예술’로 건축 재생 프로젝트의 형태를 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처럼.


그중에서도 게이츠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스토니 아일랜드 아트 뱅크(Stony Island Art Bank)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 쓸모를 다한 은행 건물을 1달러에 매입해 아트센터로 바꾼 대대적 프로젝트다. 보수 과정에서 생겨난 100개의 건물 대리석에 ‘우리는 예술을 믿는다’는 문구를 새긴 후 아트바젤에 내놓고, 각각 5,000달러에 판매해 한화 약 6억 원에 달하는 개축 자금까지 마련했다.


이 같은 게이츠의 대형 프로젝트에서는 지역 한켠에서 방치된 채 모습을 잃어가던 건물들이 존재를 지켜가기 위해 분투하던 아프리카 미술과 만나 함께 생존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AF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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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데 요시히로 컬렉션>. 사진 직접 촬영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굴하고, 그로부터 배움을 전하는 것이 게이츠만의 예술관이지만 미래에 대한 사유 역시 놓치지 않았다.


2만여 점이 모인 도자기 너머에는 마치 바를 놀러 온 듯 췰(Chill)한 공간을 연출해 두었고, 그 뒤엔 ‘아프로 민게이’ 단어가 그래피티처럼 칠해진 판자 작품들이 강렬한 조명 아래 늘어서 있다.

 

문화의 연대를 파티의 한 장면처럼 연출하고 형상화한 것이 특징으로, 실제로 해당 공간에서는 주기적으로 DJ파티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연출은 마치 앞으로 흑인미술과 민예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제언을 건네는 듯하다.


이처럼 게이츠는 과거와 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공간을 조성해 전시관 내부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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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 마시자(직역)> 작품. 사진 직접 촬영

 

 

두 문화의 연대가 무궁무진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듯, 게이츠는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게이츠가 일본 교토의 차를 접목해 개발한 인센스, 심지어는 새로운 안료로 구성한 술까지 다양한 품목의 새 작품들을 내보였다.


서로 다른 문화의 연대를 꿈꾸고, 직접 그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게이츠 작가.

 

문화의 보전부터 끊임없이 새로이 이어지는 도전까지, 모리미술관에서 관람한 전시 <아프로 민게이>는 지금과 같이 문화적 교류가 활발한 시대에 제2의 게이츠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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