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삶의 이유를 애써 찾아

글 입력 2024.08.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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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래된 고질병이 하나 있다. 상대방의 예측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무릇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도 관심이 필요한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전의 문장을 쓸 때 다소 불쾌감을 느꼈는데, ‘사람’의 집단에 나를 집어넣는 것은 예측가능성을 말하기 때문이며, ‘관심’이라는 단어가 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관심을 ‘애정’이라는 말로 교체한다면, 나 역시도 ‘나’에게만 주는 누군가의 특별한 애정이 필요하다.

 

그 말인 즉슨, ‘나’와 타인이 구별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는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나는 대단한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구는 없기 때문에 이 구분 필요성은 애정을 욕구하는 현상이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나의 ‘예측가능성’을 흩뜨려 놓기 시작한 것은 애쉬(Ash)의 동조실험을 들을 뒤부터였다. 실험에 따르면 75% 가량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1)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2) 사람을 예측하고자 하는 이 불순한 실험을 파괴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고 싶었다.

 

*동조실험 :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두 개의 선분 A, B 중 더 짧은 선분이 무엇인지 차례대로 말하도록 한다. 자신의 앞사람 모두가 ‘A’를 응답했다면, 'A'가 절대적으로 더 길지만 ‘A’를 고르게 될 확률이 75% 가량된다는 실험

 

 

 

나와 세상 사이의 유대는 노골적이리만치 조잡하다. (클라리시 비스펙트로, '아구아 비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구태여 ‘예측가능성’을 거부하기 위해 에너지를 썼다. 종종, 그것보다 더 빈번히, 나의 결정은 나의 예측을 피해갔다. 세상의 수많은 요인들은 멋대로 상호작용하고, ‘나’는 가변적인 존재로서, ‘사회 속의 나’는 ‘사회’와 ‘나’를 연결하는 ‘속’이라는 명사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얼기설기 엉겨있다. 용한 신당이 입소문 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오답인 예측 중에서 높은 예측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애쓰지 않더라도 이미 일반적인 예측은 대체로 오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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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사랑하는지, 누구를 사랑할 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이러한 무지를 발견하는 것이 사랑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 장 뤽 고다르, '뒤라스 X 고다르 대화')


 

전 연인이 ‘자신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질문에 ‘멍청한 질문이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의 질문에 준비된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멍청한' 질문으로 분류한 나의 사고회로 때문이었다. 왜 그런 분류 작업이 일어났는가? 내가 마땅한 논리를 가지고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호’는 대부분 직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확언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 Robert Zajonc) 때문이다. 타의적으로 같은 사물에 노출되는 경우 등에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충분히 조작될 수 있으므로, ‘직관적’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하고자 첨언한다.

 

“멋있게 나이드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잘 안다.”는 말이 근래 꽤 자주 들린다. 이 말은 취향이 먼저 존재한 뒤, 취향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했듯이, 취업을 해야 하는 나는 왜 ‘기획자’가 되고 싶은 지 애써 설명해야 했다. 나로선 다소 충격이었는데,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석사과정까지 마쳐놓고선 선택의 이유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강제적으로 수십가지의 이유들이 발견되었다.

 

1. 제한적인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직업이다.

2.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3.  … 등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었는데도, ‘이유’에 대해 누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고민 → 선택'의 생리보다 '끌림 → 선택 → 합리화'가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선택 이유에 대해 설명하시오.' 단계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한 행위이다. 옛적에는 연인의 애정을 붙잡기 위해서, 지금은 심사위원들의 눈을 붙잡기 위해서. 내 시간을 잡아먹는 단계였다. 따라서 위의 이유들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깊어지게 했지만 스스로를 믿진 않는다. 내 생각은 지어낸 것이니까. (클라리시 비스펙트로, '아구아 비바')


 

우리는 삶의 이유를 애써 찾는 삶을 살고 있다. 행위에는 무릇 이유를 붙여야 함이 마땅하고, 의미 없는 시간들은 이야기를 담지 못해 종종 일기장에도 흔적을 남길 자격없이 소거된다. 어쨌든 이유를 지니게 된 ‘기획자’라는 목표는 다른 ‘취향’들보다 나의 마음 속에서 연명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갖은 이유들로 인해 다른 목표들과 구별되어 내가 ‘특별한’ 애정을 쏟는 무엇인가로 변모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덧붙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내면의 복잡도는 내려간다. 이것을 몰입이라고 부른다. 

 

예측을 통해 고통을 줄일 것인가? 몰입을 통해 고통을 줄일 것인가?

 

쇼펜하우어는 생존을 위한 비관을 말한다. 삶의 고통을 미리 예견하고 이를 고민했다. 예측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논리이다. 비관은 크고 무거운 것이므로 평생 짊어지기에는 버겁다는 점에 일말의 의심이 없고, 결국 기록되는 것은 예측적중률이 아니라 적절하게 끌어 모은 이유, 즉 지지세력이다.

 

- 첫 번째 나의 생각 : 예측과 지지는 모두 주관적이다.
- 두 번째 나의 생각 : ‘예측’은 결과와 비교해 정오를 판단해야 한다. ‘지지’는 확증편향에 따라 결과값과 그 논리가 일치한다.
- 세 번째 나의 생각 : ‘예측’은 사전에 수많은 ‘가정’이 필요하므로, 복잡한 사고 회로가 필요하다. ‘지지’는 한 장면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하면 된다. 이 1개의 회선은 사고를 편리하게 만든다.

 

사실상 결과로부터의 분석해 나가는 방법이 ‘자아’를 돌아보기에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Wounded inner child)나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 등도 결과를 두고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지지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선호 : 나는 ‘낭비’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 시간을 허투루 쓸 때 신이 나는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 지지 1 : 12시간 이상 잠을 잘 때 행복하다.
- 지지 2 : 이동시간에 아무것도 안하는 내 모습이 좋다.
 
- 선호 : 내가 시간을 투자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 지지 1 : 버스나 지하철에서 항상 잔다. 잠이 부족하진 않지만 잠을 좋아한다.
- 지지 2 : 보통의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답장하는 속도는 빠르면 2~3일에서 최대 2주까지 소요된다.
- 지지 3 : 전 애인들과 작별을 결심한 순간들은, 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이다.

 

좋아하는 이유를 미리 정리해 둔다는 것은, 좋아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좋아하지 않아야 할 이유와 같다. 나의 선호를 애써 부정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 때 새로운 고통의 세계가 시작된다. 내면의 충돌.

 

그러므로 타인에게 도덕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각각의 이유를 붙여야 하는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마음 놓고 ‘좋아함’에 몰입하려고 한다. ‘나’, 그 다음으로 ‘사회관계’, 이 우선순위가 내가 선택한 순서이므로, 사회관계가 필요할 때, 그 때에 의미를 붙이면 될 것이다. 그 순간의 내가 해야 하는 선호에 대한 해석 방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곳에 내가 서 있는 이유들을 충만히 끌어모으면서 그 이유들이 눈 앞을 가리더라도 흐림에 만족하면서 살겠다. 나는 흐린 날을 좋아하곤 했으니.

 

삶은 무의미로 가득 차 있다. 사물은, 말은, 사람은,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각기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의 사물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부질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찌나 많은 해석들이 부대껴있는지, 결국 무가치함이자, 무의미함이다. 무엇이든 부질없을 것이므로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에 두려고 한다. 자연스러움은 곧 안정이므로.

 

그 후에 이유를 덧붙여서 나이테를 두껍게 쌓아올린다. 비가 오면 빗물에 따라 노랗게 바랜 잎을 조금 떼어내고- 벌레가 꼬여들면 고름마냥 진액을 짜내고- 결코 매끈할 수 없는 고목이 되면 지금보다 더욱 단단해지리라.

 

 

*올해 초에 선물 받은 ‘기획자의 독서(김도영)’라는 책을 통해, 내가 ‘어떤’ 기획자가 되겠다는 것보다 ‘무슨 이유로’ 기획자가 되고 싶은 지 찾는 것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10일간 태국을 여행하면서 읽은 네 권의 책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일깨워주었다. 나와 결이 맞는 새로운 문장을 수집할 수 있다. 이 문장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경험의 상황에서 기인할 수 있다. : ‘앰(킴 뚜이)’, ‘밀림의 야수(헨리 제임스)’, ‘기만(토마스 만’, ‘아구아 비바(클라리시 비스펙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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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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