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년 이어지는 예술가들의 고충 - 거의 새로운 춤 [공연]

글 입력 2024.08.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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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거의’ ‘새로운’ ‘춤’


 

세 가지의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거의 새로운 춤>은 3년 동안 계속되어 온 작품이다. 이는 ‘발제 안무’라고 하는 것부터 알 수 있듯이 심포지엄 발제 형식으로 4명의 발제 안무가 진행된다.

 

‘새로운’이라는 단어를 달고, 미래라는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는 네 명의 안무가의 시각이 다양하게 담겨있는 일종의 토론 형식을 관람할 수 있다. 심포지엄을 여러 학회에서 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는 무용수 그리고 안무가가 한 명의 발제자가 되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시현하는 형식을 띈다.

 

 

 

Part 2. 무용수에게 춤이란?


 

첫 번째 발제자, 김보라, 박상미, 최수진, 최낙권은 <춤에 대해 춤 하기 ; 공연자 관점으로 보기>를 선보였다. 무대에 무용수 네 명은 마이크를 차고 의자 5개를 놓고 앉은 채로 진행된다. 마치 관객과의 대화를 보는 듯했으며, 무대를 세 면으로 감싼 흰 벽에는 ‘준비’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AI가 화면에 뜬 단어를 읽어준다, ‘퍼스트 스텝’ 관객석의 조명이 꺼지지 않은 채로 공연은 시작된다. 퍼스트 스텝에 대한 개인의 생각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설렘, 첫 마음 그리고 태도, 호흡, 첫 등장까지 첫 단어라 어색할 수도 있지만, 점차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경험, 그리고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단어는 ‘발란스’, 발레를 전공했다던 최수진은 균형을 제시하고, 박상미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예로 들며 진화의 시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몸을 언급한다.

 

세 번째 단어는 ‘속도’, 그리고 ‘암전’, 그리고 ‘점프’ 단어가 제시될 때마다 한 명의 발제자가 발언권을 얻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엮어서 말이다. 여섯 번째 단어, ‘방향’에서 최낙권은 자신의 모델 생활을 언급한다. 제한된 방향 안에서 표현되는 삶을 살았던 그는, 모델에서 무용수로 전략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어디든 소리치고 뛰어다닐 수 있는 그의 워킹을 대조해서 보여주었다. 그의 뻔뻔한 쇼잉은 관객들의 웃음을 샀다.

 

일곱 번째 단어, ‘절정’, 마지막 ‘커튼콜’ 마치 단어가 작품의 시작과 끝을 맺는 듯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종료된다. 몸의 강렬한 변화가 일어나는 절정 후 커튼콜은 마지막 인사였다. 무용수끼리 인사를 하고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 무대는 종료된다.

 

‘-하기’에는 여러 의미를 담는다. 이번 ‘춤하기’는 무용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 “각각의 춤 경험을 인용하고 발췌하며 스스로를 발생시킨 춤에 대해서 묻고, 답하고, 재현한다.”라고 안무가가 말한다. 근래에는 무대 위에서 무용수가 말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 보인다. 무용수는 본래 춤을 외우고 실현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연극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극적인 연기도 해야 하고, 대사도 꽤나 긴 분량을 외워서 진행해야 한다. 물론 프로 배우들처럼 연기를 잘하고 대사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해 약간의 허점이 보이지만, 몸을 언어로 사용하는 무용 공연에서 텍스트 즉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쟁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커튼콜에서 모든 무용수가 퇴장하고, 발레리나였던 최수진이 무대 위에 남는다. 그녀는 무대 중간 자신의 신발을 벗어놓고 영국 발레단에서 은퇴할 때의 경험을 언급한다. 40살이 채 되지도 않은 그녀가 나이라는 이유로 무용단에서 은퇴해야 하고, 어떻게 보면 직업을 잃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말로 내뱉을 때 벅차오르는 그녀의 감정은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때의 벅차면서도 허망하고, 그동안 무용에 바쳐온 청춘과 수많은 노력의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토론의 형식답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Part 3. '거의’ 새로운 춤


 

두 번째 작품 김동규 안무의 <없는 변화 ; 접속할수록 고립된다>는 5명의 댄서가 나무, 창틀, 책상, 의자, 나무 소품을 들고 등장한다. 몇 명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헤드셋을 차고 있다. 그들이 서 있는 원판은 돌아가기 시작하며, 관객은 마치 각 무용수가 듣고 있는 음악을 함께 듣는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그 음악에 맞는 사람이 중간에서 춤을 추고, 돌아가는 원판은 시선의 변화이자 시간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었다. 그렇게 그저 노래가 흘러가듯이 시간을 흘러가게 내두면, 무용수들은 어느덧 소품들을 한곳에 모아 흰 벽이 열린 뒷무대로 퇴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쨰 무대, 신창호의 <춤과 노동 사이 ; 포스트 휴머니즘에 대한 안무적 고찰>이 시작된다. 첫 무대에 나왔던 김보라와 신창호는 서로 인터뷰를 주고받듯 AI가 제작한 영상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중력을 무시하고 있는 듯한 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 가상 세계 속에서의 무한한 시간은 앞서 공연된 김동규 작품과 대조를 이룬다.

 

마디는 신창호가 2022년 안무한 <비욘드 블랙>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에도 최초의 인공지능 작품으로서 큰 성과와 주목을 받았는데, 이렇게 다른 작품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마디의 영향력이 크고 실행력 또한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춤과 노동은 여러 담론을 야기한다. 그 담론의 중심에서 인공지능 그리고 로봇의 등장은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고 의문을 품는 시선을 제기한다.

 

영상으로 투사되는 ‘영상’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할 수 있었고, 그리고 수많은 렌즈 속 인공지능 ‘마디’의 모습을 스켈레톤 형태를 띤 모습, 그리고 이를 재현한 무용수, 그리고 만들어낸 아바타를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제시했다. 이는 모션 캠쳐로 딴 아바타이며, 무용수이자, 인공지능 마디, 그리고 현실의 무용수 이렇게 4명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기술이 제시한 춤을 그대로 따라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로봇이었다면 100% 일치했을 움직임이 무용수마다 다르게 산출되는 모습은 로봇과 분리되는 인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인간은 한 동작을 따라 해도 다른 시간성과 공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습을 통해 칼군무로 맞춰도 아주 미세한 차이는 꼭 보인다. 인공지능의 실현 매체가 된 인간은 현시대 담론에서 아직도 눈여겨 볼 만하며, 결국은 기계와 우리는 공생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Part 4. 환원되는 춤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진엽 안무가의 <새롭게 포맷되는, 오래된 춤과 새로운 설정의 공존>은 전미숙 안무가가 함께 나와 무대를 채운다. 두 무용가의 진솔한 고백은 무용수가 겪는 ‘노화’ 그리고 신체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차진엽 안무가의 프리다이빙 경험을 토대로 물속에서 잠시 뇌의 시간을 멈추는 듯한, 호흡을 머금고 뇌에게 휴식을 주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이 이야기는 차진엽 'round3 원형하는 몸 프리뷰'에서 살짝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더 다가오는 점은 ‘물’이었다. 생명이 시작되는 물, 그리고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물. 태초의 아기가 된 듯한 신성함과 계속해서 순환한다는 의미까지 담는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움’에 대해 설명적 어조로 말하고 있으며, 원형을 찾기 위한 잠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더불어 새로움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바로 ‘거의’라는 단어에 녹아있다고 느꼈다. 전미숙은 중간에 나와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예술가는 새로워야 한다. 창작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그녀가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겪어온 예술가의 삶에 대한 고충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잘 느껴졌다. 이로써 필자는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가 담겨있는 ‘거의’라는 단어에 생각이 꽂히게 되었다.

 

 

 

Part 5. 변화하는 춤의 위치


 

<거의 새로운 춤>은 80분 동안 유연하게 흘러간다. 각각 다른 발제지만 연결 고리를 잘 엮어 한 번에 이어지도록 하였고, 심포지엄 형태의 무용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네 명의 발제자이자 안무가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으로, 자신의 일대기를 되돌아보았고, 그들의 태도는 보는 이에게 무용수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였고 진솔한 이야기는 마음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번 작품은 실험적이라기보다 설명적이다. 춤을 설명하고 작품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춤에서 얻은 점, 그리고 얻지 못했던 점을 기술한다. 무용수가 이처럼 발제하면서 자신이 춤을 추며 공부하고 깨달은 점을 무대 위에서, 또는 다른 공간에서 말할 기회가 더욱 생겼으면 좋겠다. 그저 무의식에 춤을 추고 의무감에 춤을 추는 무용수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무대 위에서 표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춤을 췄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약간 아쉬웠던 점은 중간중간 쓰이는 용어가 전문가에겐 익숙한 용어일 수 있지만, 일반 대중에겐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심포지엄이 전문가들을 위한 자리이긴 하지만, 이건 공연의 형식을 띈 작품으로서 일반 대중의 시선도 조금 고려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심포지엄 형식의 <거의 새로운 춤>인 만큼 매년 변화하는 발제자와 주제,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실험되는 여러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춤의 옛 주소보다도 춤의 현 주소라는 타이틀을 갖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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