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정말 자유로운가요? [공연]

블라인드 러너(Blind Runner), 달리기를 통해 자유를 말하다
글 입력 2024.08.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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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는 ‘THIS IS THE NEW BLACK’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매년 여름 시대를 선도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Sync Next(싱크 넥스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여름에도 마찬가지로 음악, 연극, 현대무용,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컨템퍼러리 다큐멘터리 연극의 핵심 인물로 조명받는 이란 출신 연출가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가 직접 쓰고 연출한 연극 〈블라인드 러너(Blind Runner)〉였다.

 

 

 

달리기를 통해 자유를 찾는 사람들


 

정치범으로 수감된 아내의 면회를 간 남자는 고민 끝에 파리의 달리기 대회에서 파리싸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시각장애인 여성의 가이드러너를 맡기로 한다. 두 사람은 부족한 준비 시간에도 결국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지만, 파리싸는 대회에서 수여하는 용기의 배지를 거부하고 남자와 함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38km의 해저터널을 건너기로 한다.


이민자 문제와 이란의 히잡 시위 사건을 동시에 녹여낸 이 연극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장치는 바로 ‘달리기’다. 마라톤을 하면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남자와 여자는 감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일상이 분리된 후에도 감옥 안과 밖에서, 다시 말해 각자의 자리에서 달리기를 통해 연결고리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설정상으로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으나 무대 위에서는 밝게 비춘 두 개의 길을 왕복하며 나란히 달리는 연출은 그러한 의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와 여자는 면회에서 갈등을 거듭 경험하면서 서로의 삶이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반(反)정부 포스팅 하나로 5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 여자는 자신을 끝없이 억압하는 환경에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남자는 아내가 마주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면 아내가 가석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유가 억압된 세상과 자유가 억압된 세상 속에서 허용된 자유마저 극도로 제한된 감옥의 차이는 역시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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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jamin Krieg

 

 

그런 남자에게 파리싸는 수감된 아내를 대신해 남자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일깨워주는 존재다. 파리싸는 자유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나선다는 점에서 남자의 재소자 아내와 닮아있다. 시위 중 산탄총에 눈을 맞아 실명한 마라톤 선수인 그는 파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한 뒤, 배지 수여를 거부한다. 프랑스가 자기 눈을 잃게 한 산탄총을 만든 나라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파리를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남자의 숙소를 찾아가 해저터널을 건너 영국으로 넘어가는 둘만의 시위를 제안한다. 남자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38km 길이의 터널을 막차와 첫차 사이의 시간인 5시간 35분 만에 통과한다. 이에 실패할 경우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죽는다.’

 

그동안 무대 위를 직선과 원을 그리며 달렸던 두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 찬 벽면의 작은 점 같은 빛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극의 절반은 재소자 아내를, 나머지 절반은 시각장애인 마라톤 선수를 연기했던 한 명의 배우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가 된다. 그러면서 남자가 파리싸와 함께 해저터널을 건너기 위해 강행하는, 목숨을 건 한밤중의 달리기는 결국 남자가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아내를 위해 참여하는 뜻깊은 시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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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jamin Krieg

 

 

 

자유는 목적지가 아니다


 

"Freedom is not a goal, but a process. So there’s no end."

 

연출가 쿠헤니타스는 자유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나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자유는 달리기와 닮아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들은 자유를 찾았어?”라고 묻겠지만, 사실 자유는 그들이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서 달리는 매 순간에 존재했다. 자유를 찾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이 자유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번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을 보면서 이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두 개의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쟁으로 자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러시아의 선수를 상대로 경기에서 이긴 뒤 그의 악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실격당한 우크라이나 펜싱 선수 올하 하를란이 이번 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따냈던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 선수와 맞붙어 1점을 쏜 세계 최빈국 차드의 양궁 선수 이스라엘 마다예가 독학으로 양궁을 배워 과거 식민 지배를 당했던 프랑스에서 열린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사연이 알려지며 전 세계 수많은 시청자에게 응원을 받는 장면이었다.

 

두 선수는 〈블라인드 러너〉의 배경이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연극 속 인물들처럼 자신을 가두고 억압하는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적극적으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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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jamin Krieg

 

 

지금도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에 맞선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사회도 잘 들여다보면 빈틈과 허점으로 가득하기에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쯤에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을 가두고 옭아매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가? 당신은 자유를 구하고(seek) 있는가? 당신은 정말 자유로운가?

 

우리는 감옥에 수감된 재소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세상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무력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모두 자기만의 자유를 찾고, 그것을 위해 마음껏 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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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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