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림자 노동, 숨어 있던 노동에 대해

글 입력 2024.08.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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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평소 음료수를 잘 마시지 않지만, 무더위에 지쳐 음료수를 사러 학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계산대 앞에 큰 소리로 전화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같이 산책을 나온 손주가 목이 말라 편의점에 물을 사러 들어왔는데, 현금밖에 없어 결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내 편의점은 오후 6시가 지나면 무인으로 운영되기에 현금으로 결제를 할 수 없다.


통화 내용을 듣다가 내가 도와드려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생수를 내 카드로 사면, 계좌이체로 생수 값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생수 2개를 내 카드로 계산한 뒤 계좌를 알려드린 후 값을 보내주시고 나서야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편의점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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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편의점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면 아주머니는 현금을 지불하고 손주에게 갖다 줄 물을 바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계산해 줄 것을 요청한 후, 계산이 되면 다시 계좌이체를 한 후에야 물을 살 수 있던 것이다.


무인시스템으로 인해 어쩌면 우리는 더 복잡한 삶을 살게 됐을 수도 있겠구나. 그동안 무인기계로 인한 노동은 나에게는 당연한 노동이었다. 때로는 편의점에 아르바이트생이 있는데도 무인기계를 이용해 계산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아르바이트생이 귀찮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인기계로 계산했다. 그럼에도 나는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무인기계로 인한 나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의 노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며칠 전 만난 아주머니께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계산하지 못 하게 됐다면, ‘무인기계로 인한 소외’ 정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나는 무인기계에 소외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아주머니께서 나를 통해 결제를 한 후 나에게 계좌이체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그림자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자 노동, 노동을 했지만 보수를 얻지 못하는 무급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주머니 대신 물을 결제했지만 이에 따른 보수를 얻지 못 했고, 내가 마실 음료수를 결제했지만 이에 대한 보수도 얻지 못했다. 나도 그림자 노동을 한 것이다.


최근 들어 학교 주변 대부분의 식당에 주문, 계산을 받던 노동자가 없어지고 키오스크가 생겼다. 노동자가 했던 주문, 계산이 소비자에게 넘겨진다. 소비자는 또 다른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노동을 군말 없이 한다. 이외에도 ‘물은 셀프입니다’, ‘카페 셀프바’ 등 식당에 셀프라는 단어로 표현된 것들이 소비자에게 떠넘겨진 노동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요지는 기계를 파괴하고 신기술에 반대하자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정말 그림자 노동을 없애기 위해 러다이트 운동을 해야 할까? 만약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을 하게 된다면 ‘소비자에게 노동을 떠넘기지 말라! 키오스크를 없애자! 셀프 노동이 싫다!’는 구호를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로 끝맺은 것처럼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나의 문제 인식에 대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법. 시대의 흐름에 마냥 탑승할 수는 없다. 또한, 지금의 고민이 미래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지라도 내가 하게 될 많은 선택 중 하나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기에 글을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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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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