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무너지는 세상, 우리의 선택은 - ‘아이들’ 전인철 연출, 전강희 드라마터그

글 입력 2024.08.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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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아이들(The Children)_포스터 최종_edit.jpg

 

 

과거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루시 커크우드의 <아이들>은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묻는다.


작품은 지진해일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고 8개월이 지난 시점이 배경이다. 사고 이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소박한 일상을 이어가는 헤이즐과 로빈 부부는 한때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몸담았던 은퇴한 과학자들이다. 이들 앞에 옛 동료 로즈가 나타나며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세 사람의 관계부터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국가적 재난까지. 과거 자신들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 위에서 살고 있던 이들은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2016년 영국 초연을 시작으로 미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 10여 개 국가에서 공연된 바 있는 <아이들>을 한국에서는 극단 돌파구에서 무대에 올린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은 8월 3일부터 11일까지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공연을 앞두고 전인철 연출전강희 드라마터그를 만났다. 낭독극을 거쳐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기까지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해온 작품인 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류의 잘못된 선택 위에서


 

[극단 돌파구] 아이들 공연사진_240802_004.jpg

사진: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 극단 돌파구

 

 

반갑습니다. 두 분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전인철(이하 ‘철’): 안녕하세요. 극단 돌파구의 전인철입니다. 올해는 <고목>에 이어 두 번째 신작인 <아이들>로 인사를 드립니다.


전강희(이하 ‘희’): 드라마터그 전강희입니다. 돌파구와는 <고목>, <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 <그게 다예요>, <지상의 여자들> 등 다양한 작업을 꾸준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이 작품을 돌파구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계기도 궁금해요.


희: 2022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함께 개최된 에든버러 모멘텀(예술계 전문가 교류 프로그램)이라는 행사에서 처음 알게 된 작품입니다. 당시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관련된 작품이 없는지 묻자 누군가 이 작품을 알려줬죠.


철: 코로나 이후 돌파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를 모토 삼게 되었어요. 세대의 연결, 배우의 연결, 공간의 연결 이 세 가지가 주안점이었죠. <아이들>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이야기를 함께 해볼 수 있기에 ‘세대의 연결’ 측면에서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후위기를 다루니 시의성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가 배경인데, 작품의 키워드 중 하나가 ‘기후위기’라는 게 의아하기도 했어요.


희: 루시 커크우드가 한 인터뷰에서 북극곰이 나오지 않는 기후위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해요. 기후위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둘 다 인류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결과라는 점에서 공유하는 맥락이 있죠. 


제 생각엔 코로나 이후 이런 관점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2016년 작인데, 코로나 이전 해외 리뷰를 보면 기성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극이라는 평이 많지,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코로나 이후에야 리뷰에 ‘에코’, ‘에코 스릴러’ 같은 단어가 등장하더라고요.

 

 

북극곰이 나오지 않는 기후위기 연극이라는 설명이 흥미로운데요. ‘에코 스릴러’라는 표현도요.


희: 실제로 앞부분은 세 인물의 미묘한 관계가 중심이 돼요. 어떤 해외 리뷰는 ‘치정극으로 시작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스릴러 느낌도 납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극이 2/3 지난 부분에야 등장해요. 로즈가 헤이즐과 로빈에게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 거기서 일하는 젊은 아이들을 내보내고. 충분히 길고 오래 산 우리가 마지막 책임을 지자고 설득하거든요.

 

 

 

<아이들>을 만들며 생각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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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 극단 돌파구

 

 

제목이 ‘아이들’인데 작품에서 실제 무대에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아요. 두 분이 이 극을 만들며 생각한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철: 저는 이 극에서 말하는 ‘아이들’이란 꼭 세대에 국한된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인물들이 대화하며 ‘아이들’이라고 말할 때는 자식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극의 전체 내용을 고려하면 아이들이란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 자라지 못한 어른으로 느껴졌습니다. 재난 이후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여전히 소비 중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이들이죠.


희: 공연을 만들며 아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모세대만큼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대, 기성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들을 귀하게 대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고, 배우들도 그런 방향으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60대인 작중 인물들을 이번 무대에서는 30대 배우들이 연기하는 이유도 궁금했어요.


철: 외국에서는 대부분 60대 배우가 연기를 한다고 해요. 하지만 돌파구가 리얼리즘을 무대에 올리려는 단체는 아니기에 꼭 나이 든 배우가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봤어요. 오히려 젊은 배우가 60대를 연기할 때 더 다양한 세대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30대 배우가 60대 연기를 하며 ‘아이들’이라고 할 때, 관객은 그들보다 더 어린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희: 무대에서 60대 인물을 ‘재현’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배우들이 될 수 있는 지점과 될 수 없는 지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젊은이로서 나이 든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과 본인의 나이대보다 더 어린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지요. 비록 60대인 세 사람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그보다 다양한 세대가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 잘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집 안에서, 대화로만 이어지는 극을 긴장감 있게 끌어가기 위해 연출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철: 리얼리즘 극이라 외국에서는 실제 오두막집 세트를 제작해 무대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돌파구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게 그냥 빈 무대예요. 게다가 앞서 말했듯 배우들부터가 60대도 아니죠. 이런 식으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관객이 자기 생각을 개입시킬 여지를 많이 열어두었습니다.


희: <아이들>은 2/3지점에서 이야기가 폭발하는 작품인데, 앞부분에 나오는 세 사람의 대화를 많이 정리했어요. 유머 코드가 많이 나오지만 이게 한국 정서랑은 잘 맞지 않아서 번역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거든요.

 

 

한국에서는 초연이지만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된 작품이에요.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희: 일단 만들기 쉬운 구조예요. 인물이 세 명뿐이고, 계속 오두막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진행이 되니까요. 또 주제의 특성상 청소년 교육용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듯해요. 프로그램을 봤는데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를 기후위기와 엮어서 굉장히 잘 구성했더군요.


철: 저도 드라마터그님 말씀에 공감하고요.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기후변화에서 훨씬 더 큰 위기감을 느끼다 보니 관련한 공연도 많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청소년과 이야기해보면 좋을 작품이라 생각해 청소년 단체와 컨택하려 노력 중인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앞으로 기회가 더 생기면 좋겠어요.

 

 


위기의 시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극단 돌파구] 아이들 공연사진_240802_106.jpg

사진: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 극단 돌파구

 

 

극에서는 로즈와 헤이즐 두 인물의 상반된 삶의 태도가 두드러져요. 로즈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삼아 책임을 지려고 한다면, 헤이즐은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며 자기 주변을 잘 챙기는 삶을 지향해요.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두 분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철: 저는 그 두 가지 삶의 방식이 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덕적으로 본다면 젊은 노동자들을 대신해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려는 로즈가 더 옳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상을 건강하게 잘 사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요. 돌파구의 <아이들>은 그 각각의 삶에 대해 팽팽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희: 저는 약간 다르게 읽었는데요, 배경이 영국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헤이즐의 삶은 전형적인 기득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렇기에 그들이 만든 세상을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쪽으로 텍스트를 읽었던 것 같아요. 존중보다는 비판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물론 한국에 들여와 저희가 공연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또 다른 맥락이 더해질 수도 있겠지만요.

 

 

헤이즐의 삶을 비판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읽는다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어요.


철: 작가가 헤이즐의 삶을 비판만 한다고 읽기에는 작품에서 묘사되는 헤이즐의 삶에 뭔가 숭고한 부분이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저는 누구 한 사람이 맞거나 틀리다고 말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라고 봤고, 이번에 공연을 만들면서도 누군가를 너무 가르치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으려 했어요.


희: 이 희곡은 확실히 불편함을 던져요.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물론 헤이즐의 인생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로즈의 말에 더 힘을 실어주는 측면이 있지요. 그게 관객을 불편하게 할 것이고, 그게 이 작품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만들고 지탱시킨 것이 결국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인물들의 삶의 태도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태도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분은 현실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희: ‘나’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있어요. 조금 비약일 수 있는데, 기후위기를 다룬다고 하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더 집중해서 기후위기가 자기개발의 연장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개인의 실천에 머무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어요.


철: 분리배출 같은 건 잘 하고 있지만, 보여지는 데 치중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덥다 덥다 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크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유럽의 경우 원래 에어컨 없이 지냈는데 요즘은 다 에어컨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위기감이 훨씬 더 심해 보입니다.

 

 

<아이들>을 보고 나면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 그리고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두 분의 자유로운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희: 결국 타자가 되어 보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이 가장 잘하는 일이 이 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연극을 만드는 우리가 더 열심히 작업을 해야겠죠. 연극을 떠나서도 이제 인류가, 자기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려면 남을 살려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철: 재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하고 변화하는 게 필요해요.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단순히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작품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극,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극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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