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기에 대한 연극적 각주 - 너츠

연극 <너츠>
글 입력 2024.08.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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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가 ‘광기’에 대해 탐구한 논문을 탈고한 것이 1958년이다. 당시 사회에 만연했지만 철저하게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소위 ‘미치광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푸코의 논문은 1961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온다. 그 3년의 공백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광인들에 대한 우리의 배타적 태도처럼 막연했을 테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란 본래 인간의 신성한 면 중 하나였으며, 이성과 나란히 하는 개념이었다. 그것을 질병이나 범죄처럼 여기며 이성적 인간과 분리해버린 것은 인간 자신이었다.


오늘날에도 광인은 존재한다.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아 일상의 공간에서 배제된 광인을 우리는 멀리하면서 동시에 곁눈질로 관찰하기도 한다. 특이하고 혼란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멀리서 관찰하는 일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흥미로운 오락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시선 아래서 광인은 오락거리로 전락한다. 그러나 진지한 예술적 탐구의 단계에서 광인을 관찰하는 일은 묘하게 다른 결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연극 <너츠>를 본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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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술집 안 낡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살인 사건, 범인, 수사. 끔찍한 내용을 전달하는 뉴스가 끝나고 울리는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은 새미(표지훈)와 레온(김기주)이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FBI요원이자 오래된 파트너인 두 사람은 살인 사건 현장을 조사하면서 세 명의 용의자들을 불러 모은다. 자신이 진짜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아주 수상하고 미친 사람들을. 새미와 레온은 그들 각각을 심문하며 살인 사건의 진상―혹은 광기의 진실―에 다가간다.


한 남자가 우산을 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나 살인을 저지른 토드(김대한), 여성의 얼굴을 끔찍하게 분장한 뒤 살해한 잭(강은일), 사람들을 세뇌해 단체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게 한 다이머(진휘서).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을 고백하는 세 사람은 각자의 결핍을 울부짖는다.

 

방에 감금된 채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과, 자신의 비밀을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누설하고 몸에 흉터를 남겼던 이들에 대한 악몽과,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었던 억압의 감각. 그들의 이름은 각각 외로움, 모멸감, 무력감이다. 그것들은 누군가의 내면에서 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미쳐버린 이유, 혹은 그들이 같은 공간에 갇혀 고함치는 이유는 분명 그들의 바깥에 있다.


광기 어린 연쇄 살인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두운 살인 현장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새미에게 레온은 말한다. 잔혹한 이 살인 현장은 사실 새미의 내면이며, 각각 살인자임을 주장하던 세 인물은 모두 분열된 새미 자신이라는 것. 세 명의 자신을 감금하고, 수치심을 주고, 억압했기에 죽여야 했던 피해자가 새미의 형 레온이었으며, 새미가 그를 찔러 죽임으로서 이 세계가 생겨났다는 것. 성경 속 아벨이 형 카인을 죽인 순간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탄생했다면, 어린 새미가 형 레온을 죽인 순간 최초의 광인은 태어났다.


내면의 분열은 평범한 사건이다.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상황 앞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분열된 자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가둬버렸을 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광기로 변하고 만다. 새미의 내면을 강제로 찢고 분열시킨 것은 형 레온이지만, 그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새미를 분열된 세상에 가둬버린 것은 어머니 마리아(이송이)다.

 

마리아는 새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바로잡지 않고 덮어버린다. 새미의 내면에서 발생한 분열을 수습하지 않은 채 가둬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을, 어머니 마리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해버리고 만 것. 모성애 아래서 광기의 세계는 단단히 구축된다. 그러므로 그 세계를 벗어나 분열된 내면을 통합하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수단은 자신의 유일한 사랑―모성애―을 죽이는 일이다. 혹은 자신이 갇힌 세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광기의 종말을 위하여, 새미는 방아쇠를 당긴다.


푸코는 광인을 끔찍하고 불길한 배타적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고방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연극 <너츠>는 푸코의 말에 연극적 각주를 덧붙인다. 우리 안에도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광기의 불씨―외로움, 모멸감, 무력감―가 있다는 것. 우리는 언제든 타인의 광기에 불을 댕기게 될 수도 있다는 것.

 

90분의 예술적 탐구를 통해 이성적 인간의 허울을 벗기고 나면 마주하는 것은, 바로 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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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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