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견의 미학 [문화 전반]

올해 발견한, 애착이 가는 콘텐츠들 [사람, 물건, 영상]
글 입력 2024.08.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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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모르는 것 투성이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는 걸 좋아했다. 그저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 하나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고민한다. 글을 쓰거나 방송의 구성을 만드는 사람이 과연 내가 되어도 될지, 다른 일을 해야할 지. 다른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전에는 카페에서, 요즘에는 도서관에 나와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쯤 이렇게 사색에 잠긴다.

 

해를 넘길수록 미래에 대한 고민은 많아지는데, 때론 고민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깊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작년의 나는 몰랐던 지식과 경험을 올해의 나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하고 있다고 그렇게 위안 삼아도 되는 걸까. '좋아하는 걸 꿈꿀 수 있고 그 길을 걸어갈 기회가 있다.'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하는 걸까.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그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휴학생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문화를 향유하고 나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는 것 자체는 행운이 아니던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은 행운을 오늘도 제대로 잡아내고 싶다.

 

나는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명 같은 우연으로 발견한 것들을 사진 찍고 수집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행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발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올해 나의 발견을 공개해보려고 한다.

 

 

 

Chapter 01. 다이어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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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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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다이어리 내부

 

 

첫 번째 발견은 나의 애장템 중 하나인 '다이어리'다. 얼룩이 많고 때가 타 낡아 보이지만, 내겐 2년 째 쓰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바이풀 디자인 기억보관함' 다이어리를 작년에 만족스럽게 사용해서 올해도 구매해서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일단 '바이풀 디자인 기억보관함' 다이어리는 월간, 일간으로 구분되어 있고, 하루 일과 기록으로 다이어리 한 면을 전부 쓸 수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헤비기록러들에게 최적이다.

 

글만 기록하는 건 너무 심심해서, 다이어리 꾸미기(줄여서 '다꾸')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나만의 기준과 느낌대로 다이어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소제목을 '다이어리 만들기'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숨겨진 감각을 깨워 스티커나 페이퍼 등을 이용해 꾸미기까지 하는 것. 이렇게 다꾸까지 하다보면 취향을 발견하게 되고, 무엇보다 하루의 기록을 즐겁게 할 수 있다.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스티커와 페이퍼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배치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손으로 찢어서 붙이는 게 잘 어울릴 때도 있고 가위로 잘라서 붙이는 게 오늘의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다꾸를 성공적으로 하지 않는다. '아, 오늘은 실패작이다'라는 느낌이 시작부터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면을 완성하는 일은 대단하다(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Chapter 02. 아무튼,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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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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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게스트하우스(장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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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잡지(황효진)

 

 

책을 잘 읽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나 나같은 문창과생은 더더욱. 책을 안 읽은 사람을 비판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책하려고 쓴 말이다. 그럼에도 올해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있다.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 김초엽 작가님 덕에 SF소설 장르를 알게 되었고, 그 유명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부터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수록된 '인지 공간', '므레모사', '지구 끝의 온실' 등 내 상상의 영역에서 확장되거나 벗어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주셨다. 미래 과학 세계의 딥한 부분을 몰입해서 읽기도 했지만, 그 속에 현재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중요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담아내었다는 점이 김초엽 작가님 책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다. '파견자들'에는 인간에게 광증을 퍼트리는 아포로 가득한 지상 세계와, 그런 지상 세계를 피해 만든 지하 세계가 있다. 그리고 지상 세계로 파견나가기 위해 선발 시험을 치루는 사람들은 지상 세계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들을 '파견자'라고 부른다. 이야기는 파견자 시험을 치루는 '태린'과 태린 속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아무튼 시리즈'. 최근 들어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 자주 간다. 공부를 하다 보면 도서관의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마침 읽고 싶었던 아무튼 시리즈를 발견했다. 아무튼 시리즈를 발견하면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를 먼저 찾게 되는데, 찾을 때마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장성민 작가의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를 시작으로 틈날 때마다 읽고 있다. 책 사이즈가 작아 들고 다니기 편하고, 작가의 취향과 경험을 물씬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은 잡지 덕후 황효진 작가의 '아무튼, 잡지'를 읽고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효진 작가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꾸준히 동화를 쓰고 있는 사람의 눈에 바로 들어왔던 김유진 작가의 '구체적인 어린이', 책 표지와 내용 삽화가 예뻐서 읽으려고 빌렸던 '보통의 것이 좋아', 왜인지 블로그를 쓰는 나를 위한 책인 것 같아 단숨에 집었던 김혜원 작가의 '나를 리뷰하는 법'까지 다양하게 빌리고 읽고 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읽자는 가벼운 책 읽기 목표를 세운 만큼 열심히 읽을 것이다. 아무튼, 발견하는 건 재밌으니까. 

 

 

 

Chapter 03. 이 열정, 음색, 습도, 온도, 그리고 캐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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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ENTEEN TOUR 'FOLLOW' AGAIN TO SEOUL 2일차(마지막 콘서트)

 

 

2024년 4월 28일. 캐럿(세븐틴 팬덤명) 2년 차로 생전 처음 아이돌 콘서트를 가봤다. 더군다나 혼자 가는 콘서트여서 떨려서 콘서트 필수 준비물 영상을 찾아보며 준비했었다. 다행히 2주 전에 같이 콘서트 가는 사람들을 알게 되어 부담을 덜게 되었다. 

 

세븐틴 콘서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와 12시간이 넘도록 밖에서 열심히 즐긴 탓인지 다음 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콘서트의 여운은 콘서트 끝난 후에도 꺼지지 않은 응원봉 불빛처럼 오래 갔다. 좋아하는 아이돌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설렘,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거리는 멀어도 직접 보고 응원법을 외칠 수 있다는 기쁨과 무한 아나스(세븐틴은 앵콜로 노래 '아주 Nice'를 30분 동안 무한으로 부른다)를 외칠 수 있다는 행복감이 세븐틴이라는 그룹에 이전보다 더 빠지게 만들었다. 이때 슬로건이나 응원봉, 부채는 기본이고 세븐틴의 열정과 음색과 공연장의 분위기와 습도, 온도를 수집했다. 또, 콘서트 세트리스트(노래 리스트)를 얻었다. 등장 퍼포먼스부터 퇴장까지의 구성이 그들의 서사였다. 내게는 다시 살아갈 원동력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또 있기를.

 

 

 

Chapter 04.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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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있는 모든 것을 수집하는 병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책갈피, 엽서, 명함, 영수증, 공연 티켓, 예쁜 비닐, 전단지, 잡지, 영화 포스터 등 내 눈에 괜찮아 보이면 무조건 하나씩 집어 간다. 종이로 수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두거나 캡처를 해둬서 필요할 때 찾아서 다시 보는 편이다.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건 '콘텐츠'. 그중에서도 공연과 드라마다. 올해 흥미롭게 본 공연은 'B클래스'다. 졸업공연 PASS를 받기 위해 B클래스 학생 4명이 한 팀이 되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연극이다. 결손 가정인 보컬 전공 이수현 역을 맡은 권태하 배우의 노래에 반해 공연 책자까지 구매했던 애착이 가는 연극이었다. 꿈을 좇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따뜻한 연극이라 내 공연 취향과도 맞닿아있어 더 뜻깊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드라마하면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가 먼저 떠오른다. '눈물의 여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았지만, '선재 업고 튀어'는 뒤늦게 합류하여 봤었다. 둘다 결이 다른 잘 만든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물들에게 과몰입이 된다거나, 선재앓이를 하진 않았다.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근에 내 취향을 아주 저격한, 과몰입해 일주일도 안 되어 정주행해 16화 마지막 방송날짜까지 따라잡아 봤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지난주에 '벼랑 끝에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오피니언 기고를 했던 주인공 '낮과 밤이 다른 그녀'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최고 시청률 11.7%를 받고 종영한, 낮에는 '임순'으로 밤에는 '이미진'으로 하루를 살면서 연쇄살인범을 잡는 수사추리극이자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수사추리의 비중이 적고 범인의 단서나 범인을 잡는 과정이 후반부에 한꺼번에 몰려 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드라마의 콘셉트와 스토리 및 러브라인, 감정씬을 각본과 연출적으로 잘 살린 점에서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만에 전 시리즈를 정주행했다는 시청자를 보면 알지 않겠는가.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어떻게 작품을 수집했을까? 이번에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활용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취향을 알리는 동시에 이 드라마는 꼭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과감하게 스토리를 올렸다. 정은지, 이정은, 최진혁 세 배우와 타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스토리라인과 잘 맞물려 들어갔던 작품이라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내용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보길 바란다. 

 

 

 

Epilogue. 나를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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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시를 쓰고 발표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박제'와 관련된 시를 썼었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그때 썼던 시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세상의 것들을 누르고 수집하고 박제하다가 결국 나까지 박제해버렸다는 그런 시였다. 늘 그렇듯 나는 발견한 것을 보존하거나 각색 혹은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 좋아하는 마음이 은연 중에 시 속에도 녹아 들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나를 수집한다.'

 

어떤 꿈을 갖던 나는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수집하고 기록하고 가꿀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려는 일도 세상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각색해 세상에 내놓는 일이 아닐까. 결국 다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알고 잘 키우기 위해 나만의 기록하고 수집하는 방식으로 세상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양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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