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안도 - 상실일까, 탈출일까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8.0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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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산다’ 이전에 ‘패션왕’이라는 웹툰으로 먼저 기안84를 알았다. 꽤 재밌게 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를 잃고 연재 마감일을 어기는 날이 많아서 중도 하차했다.

 

그 뒤로 한동안 잊고 살던 이름을 TV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했다.

 

되는대로 사는 듯하면서도 자기만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인생 전체를 보람차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전시라 더 궁금했고 자기의 세계를 그림으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다 싶었다.

 

 

 

섬은 대륙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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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양면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몸과 마음을 달래는 휴양지임과 동시에 홀로 떨어져 바다 위를 표류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내 눈에 비친 기안도는 후자였다. 큰 덩어리로 붙어 서로를 지탱하는 대륙과 다르게 혼자 떨어져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묵직한 덩어리 같은 섬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 속에 담긴 시간의 무게와 지탱할 곳 없어 불안한 그의 마음이었다.

 

이미 바다로 흘러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섬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의 후회를 담은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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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아이가 가장 적은, 멸종을 향해 달려가는 섬. 그것이 저출산 문제로 아기를 보는 게 힘들어지는 한국 사회를 말하는 것인지 세상에 치이고 갈려 마모된 자신을 드러내는 고백일지 우리는 모른다.

 

나는 그저 아이는 마음의 여유를, 멸종은 그걸 잃어버려 조급해지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으레 짐작할 뿐이다.

 

어쩌면 멸종이 아니라 상실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제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물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수많은 머리통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기안이라는 섬은 무언가를 잃었다.

 

 

 

시계는 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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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 84는 10년간 쉬지 않고 달리면서 청춘이라는 보물이 녹아 사라졌다고 말한다. 머리에 이고 싶은 왕관을 쫓느라 주변은 돌아보지 못했나 보다.

 

캔버스 위에서 녹아내리는 시계의 중앙에 떡하니 박혀있고, 표류하는 머리통들의 눈동자에도 새겨진 왕관. 부와 성공, 혹은 사치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롤렉스의 왕관은 눈부시게 빛나고, 그 시계를 찼을 이들의 눈동자는 역으로 빛이 바랬다.

 

거기에 다 녹아내려 형체를 잃은 시계는 제 기능도 할 수 없다. 성공을 갈구하며 살았던 시간이었고 기안84는 확실히 성공해 부를 거머쥐었다.

 

돌이켜보니 성공이 아니라 돈만 손에 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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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치즈처럼 녹은 시계를 많이 봤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다.

 

그의 시계는 선을 따라 한쪽으로 움직이는 시간의 성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현실을 추구하며 세상 모든 개념과 정의, 관념을 부정한다. 시계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시계가 그 반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거부하는 목소리다. 그것이 기안84에게는 탈출이었을지 모른다.

 

다소 후회스러웠던 시간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저 녹아내린 시계에 담겨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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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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