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지털로 기록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전쟁' [미술/전시]

'기록'의 편린은 '기억'임을 보여주는 왈리드 라드의 <아틀라스 그룹 (The Atlas Group)>
글 입력 2024.08.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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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은 미래에 대한 반향들(Reflexe)로 전율을 하고 있는 한에서만 가치를 갖는다’고 앙드레 브레통은 말한다. (...) 첫번째, 기술(생산력)은 어떤 일정한 예술형식을 향해 나아간다."

 

 

앞선 인용문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발췌했다. 해당 부분은 예술이 새롭게 발전되는 기술들을 어떻게 포섭하고, 기술이 예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예술 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테제를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테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선형적, 역사적 유물론이 반영된 지점이며, 구조의 층위를 나누었을 때 예술은 상부구조에, 자본은 하부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자본과 기술이 결정적으로 변화한 후에, 즉각적인 방식이 아닌 간접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에 있어 예술은 '거울'이지만, 때에 따라 왜곡되고 시간차가 나타난다.

 

 

 

왈리드 라드가 경험한 '중동역사'


 

레바논 출신 미디어 작가 왈리드 라드(Walid Raad)의 〈아틀라스 그룹 (The Atlas Group, 1989-2004)〉는 현대의 기록이 가진 왜곡의 거울들을 면면히 보여준다. 〈The Atlas Group〉은 1989년 왈리드 라드가 베이루트에서 설립한 프로젝트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의 레바논 전쟁에 초점을 맞춘 레바논의 현대사를 연구하고 기록한다.

 

문학적 허구로 쓰인 노트와 사진, 사운드 및 비디오를 차용하여 〈The Atlas Group〉은 이 특정 기간에 대한 조명을 위해 문서를 찾아내고 보존하며 연구하고 제작한다. 이 문서들은 디지털 아카이브에 데이터베이스화시키고 일기나 사진을 분석한 것 같은 2차 사료의 형태로 정리했다. 이는 레바논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대안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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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리드 라드의 웹페이지, 그에 대한 주요약력은 빈칸처리 되어있다.

 

 

작가인 왈리드 라드는 레바논에서 1967년 Christian East Beirut에서 팔레스타인인 어머니와 레바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꿈은 사진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사진 공부를 이어갔는데, 그 외에도 중동 연구 수업도 듣기 시작했다. 그는 "저는 아랍 세계의 역사나 레바논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교육은 미국에서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라드는 교육의 장소에 따라 바뀌는 편파적인 정보 습득 경험과 논문을 위해 기록 보관소와 기록 문서에 대한 광범위한 작업을 해야 했고, 박사 학위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이론적 문해력, 연구 및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을 그의 예술 활동 전반에 활용했다.


레바논 내전의 역사는 작가의 눈으로 겪은 개인적이고 파편적인 경험이 혼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라드 본인도 그의 아카이브를 신경증적인 도큐먼트라고 부른다. ¹ 그가 사실과 검증이 필수적인 일반적인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벗어나 주관과 허구를 개입시키려는 의도는 무엇 때문일까?

 

프로젝트는 웹사이트를 이용한 디지털 아카이브 사례이지만 하나의 예술 작업이기도 하며 역설적으로 디지털화된 정보와 객관적 역사서술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가 주제로 삼은 레바논 내전이 가진 하나의 시점으로 규정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적, 인종적, 종교적, 이념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²

 

 

 

역사 아카이빙이라는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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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그룹-왈리드 라드, Let's be honest, the weather helped(솔직히 말하자면, 날씨가 도왔었다), 1988

 

 

라드는 이 복잡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료로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기표)과 허구로 작성된 글(기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데이터베이스화 된 정보는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 시각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활자보다 이해되기 쉽지만, 조작된 정보 또한 시각 정보를 이용하여 쉽게 설득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그는 시각적 기술을 활용하여 어떤 역사적 서술 방식이든 정보전달의 우위를 차지하고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한다면 그것이 사실로 인식되는 혼란스러운 세태를 지적했다.


그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어떤 인문학적인 정보를 나열하여 전달하기보다는 기존의 인문학 관점을 거시적이고 은유적으로 비평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인문학에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저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역사를 단일한 시점으로 보는 것을 방지하지만 정보 조작과 인지 감각의 변화에 따른 신뢰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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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그룹-파드와 하순, Better be watching the clouds(구름을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1992

 

 

이를 통해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뉴 미디어 매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혼란과 오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의 도움을 얻어야 함과 더불어 정보에 대한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연결고리는 필연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참고문헌

¹ Walid Raad, 아카이브 웹페이지

² 최종철. (2016). 디지털 아카이브 그리고 파라-인덱스: 왈리드 라드의 아틀라스 그룹. 예술과 미디어, 15(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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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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