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자기와 나 [미술/전시]

분청사기의 매력을 알아보다
글 입력 2024.08.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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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첫 도자기는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차회를 하시면서 다도를 공부하셨기 때문에 내가 기억할 때부터 우리 집의 찻장에는 찻그릇과 도자기들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었을 무렵, 차는 아직 써서 싫어했던 나에게 어머니가 다완에 말차와 요구르트를 섞어서 주셨다. 지금까지도 그 맛이 기억날 만큼 정말 맛있어서 차가 더 이상 쓰지 않은 나이가 되자 나는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본 다도가 아닌 한국 다도를 공부하시면서 형식에 얽매이는 것보다 차를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어렸던 나도 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차선으로 말차를 휘젓고, 퇴수기에 찻잔을 데운 물을 버리며 도자기를 가까이하며 지냈다. 어렸을 적이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미술사와 도자기, 역사를 좋아하는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 데 꽤 크게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도자기는 밀양, 하동 일대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분청다완이다. 어머니는 청자나 백자보다 그 과도기에 있는 분청사기를 더 좋아하시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분청사기가 가지는 우둘투둘한 질감이 두 손으로 다완을 들어 올렸을 때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본가에는 유약 면이 고르지 않고 색감도 일정하지 않으며 거칠거칠한 느낌의 다완이 많다. 자연스레 나 또한 이런 도자기들을 접하면서 매끄러운 백자, 청자보다 유약이 두껍게 발려서 두껍게 잡히고 유약 면이 고르지 않아 거칠거칠한 도자기도 꽤 좋아하게 되었다. 보기에는 매끄럽고 아름다운 청자, 백자가 좋기도 하고, 실제로 도자기로서의 완성도도 높지만 실제로 차를 마시고 쓸 때는 분청다완이 가진 그 나름의 매력이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상감청자와 백자의 과도기로 취급받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전 고려청자와 비교했을 때 다른 모습에 ‘한국적이다, 수더분하다, 익살스럽다, 천진난만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근대기에 형성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오리엔탈리즘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 감상자들의 편향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국제적인 양식이었고, 국가적 필요와 목적에 따라 발전했기에 '청자와 백자의 과도기'라는 시각만으로 분청사기를 해석할 수는 없다.


분청사기는 회청색 그릇을 백톳물로 분장한 뒤에 투명한 유약을 바르고 1,200도 이상에서 구워내어 여러 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낸 조선시대에 주요 도기를 차지한 종류다. 이렇게 조선시대에 급격하게 변화한 요인에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국가가 성립되며 국가와 왕실의 새로운 그릇이 등장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성리학적 가치관과 미의식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국가의 수요와 통제하에 도자기를 생산했는데, 그 흔적을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자기소(磁器所) 139곳, 도기소(陶器所) 185곳’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 8년 10월 22일 기사를 보면,

 

 

호조에서 계하기를,

“전에는 각사(各司)에서 바치는 물건이 일정한 식례(式例)가 없었기 때문에 혹 많기도 하고 혹 적기도 하였습니다. 청컨대 일정한 식례를 정하시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즉 태종-세종 연간의 조선 왕실은 국가적 필요에 따라 규격화가 가능한 양식의 분청사기 제작을 주도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가 흔하게 아는 인화분청사기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인화분청사기는 무늬도장을 사용해서 반복해 시문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정한 규격 설정이 가능했다. 또한 공납요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에는 관사명이나 생산 지역, 장인 이름을 새겨서 관리를 용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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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조선 전기에는 공납의 일환으로 인화분청사기가 주도적으로 제작되었다면 1460년대에는 관요체제의 백자 생산으로의 국요자기 생산체제로 전환되며 조화분청사기와 철화분청사기가 제작되었다. 분청사기 철화 모란무늬 장군과 분청사기 귀얄무늬 대접은 당시에 양식적인 독자성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분청사기를 필두로 한 조선의 다완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와비, 사비로 대표되는 일본의 미의식을 형성하는데 주된 영향을 미치고, 조선은 경질백자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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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알면 알수록, 접하면 접할수록 매력적인 존재다. 매끄러운 백자 다완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분청 다완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물론 도자기가 발전한 역사에서는 그 완성도에 따라 질적으로 좋고 나쁜 도자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쓰이는 도자기들은 이와 상관없이 함께 지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우연히 사게 된 도자기에 따라, 소소한 이유와 배경에 따라 사랑받는다.

 

나 또한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차를 마실 때 매끄러운 백자나 청자 보다는 조금은 질감이 살아있는, 거칠거칠한 분청 다완을 더 좋아한다. 이는 어머니의 취향에 따라 이런 분청다완을 더 자주 접하면서 생긴 나만의 도자기 취향일 것이다. 그렇게 생긴 나만의 도자기 취향을 따라 다양한 도자기를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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