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 편지는 50년 전 교토에서 시작되어 [영화]

한 가족의 마음에 닿았다
글 입력 2024.08.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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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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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시간은 서로 가장 흡사하면서도 천차만별의 모양을 띈다. 분명히 똑같은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데도 어딘가 미묘하게 엇갈린다. 아예 밖에서 바라볼 때면 더욱 그렇다. 부모와 자식의 시간이 그렇듯이, 장녀와 막내의 삶이 그렇듯이. 그래서 제일 이해가 필요한 집단은 따지고 보면 결국 가족이다. 가장 가까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가장 가깝기에 부딪힘을 피할 수도 없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생각하는 게 그렇게 다를 때가 있다. 세상이란 어찌나 다채로운지. 가끔은 꺾이지 않는 서로의 줏대가 서로를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가족이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할 때의 배신감은 어디에 가서 풀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그들의 시간은 하나로 뭉친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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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50년 전 일본 교토에서 시작되어...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는 네 모녀가 겪는 삶을 편지라는 장치 하나로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타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고 세 자매를 키워낸 어머니, 화자와 항상 앞에서 책임감을 두 손에 쥐어야만 했던 장녀 혜진, 꿈을 찾아 상경한 둘째 혜영과 그런 언니들을 보고 자란 막내 혜주까지.

 

비록 엄마의 옆이 허전해도 그들은 단란하다. 정말 ‘집’같다. 모든 집에는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냄새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어떤 집은 향기로운 현관의 디퓨저 냄새 일수도 있고, 어떤 집은 싱그러운 풀 내음 일 수도 있다. 이 집의 향은, 은은하면서도 약간은 매캐한, 오래된 나무의 향이다. 혜영이 도망치듯 서울을 벗어나 영도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러한 내음을 느꼈다. 우리 딸, 한 번 안아보자. 약간은 구수한 엄마의 체취도.

 

삶이 지치고 버거울 때 찾아온 집은 언제나 변함없다. 자상하지만 이해 안 가는 구석이 한가득인 엄마도, 까칠한 언니도, 철없는 동생도. 눈앞에 닥친 거대한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지겨움인 줄도 모르고 부딪히는 장면도 너무나도 익숙한 집의 모습이다.

 

점점 사라질 일만 남은 우리 엄마. 그 현실을 마주한 혜영은 안 그래도 막막한 삶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사 부지기수.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일어나기 마련이다. 불행도 추억이 될 수 있다. 엄마가 남기고자 했던 것들이 그제서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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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좋아하면 만지고 싶은 마음 아나.

...

추억은 만질 수가 없잖아.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심성이지만, 곧 어떻게든 손을 뻗어 어루만지고 싶은 물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앨범을 사 모으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피규어나 굿즈를 모은다. 그 대상을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내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애정을 갖고 싶어 한다.

 

어떤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필름 위에 박아버리고자 하는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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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한번 안아보자.

 

 

좋아하는 사람을 안고 싶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까.

 

품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득 찰 때의 그 포만감, 엄마 이화자는 본인이 모아둔 모든 순간을 평생 사랑할 것이다. 혜영의 눈에 그 모습이 들어온 순간, 그 곁을 누구보다 오래 지켜온 사람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욕심이 차오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편지는 그런 혜영의 욕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 집에서 당신이 그 무엇보다 오래 지녀온 편지. 잘 알아보지도 못할 필체로 적힌 낯선 모양의 글씨를 해석하느라 진땀을 뺐으면서도 차마 먼저 말도 꺼내지 못하는 두근거림은 자녀라면 익숙한 것이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길, 원하는 반응이 나오길.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대답은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워 명치에 박힌 응어리를 뜨겁게 만든다.

 

엄마, 교토에 가고 싶다. 이건 '화자'이기도 하지만, '하나코'이기도 했던 엄마의 대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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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의 엄마는 결국 교토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삶은 계속된다. 여전히 엄마의 곁에는 새로운 가족이 있고, 그들은 각자의 삶을, 또 공동체의 삶을 영위해간다. 선택지라고는 없어 보였던 눈앞에는 새로운 길이 나타나고, 어떻게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또 한 걸음 디뎌본다.

 

모두 다시 천천히 제자리를 찾은 후에는 또 똑같지만 분명히 다를 하루가 가족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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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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