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근거지'를 아시나요 [문화 전반]

어쩌다 이렇게 욕 많은 사회가 되었을까
글 입력 2024.08.1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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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근거지'

 

초등학생 사이에서 해외여행 한 번 못 갈 만큼 출석을 열심히 하는 학생의 가정형편을 비하하는 뜻이다.

 


 

 

요즘 학급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폭력성이 날로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엘사(LH임대아파트 사는 사람, 월거지, 전거지(월세 사는 거지, 전세 사는 거지), 이백충, 삼백충(월 소득이 200,300만 원인 부모의 자녀) 등 초등학생 사이에서 경제적 상태, 가정형편 등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친구가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가정형편이 왜 비하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이런 신조어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우월성의 증명을 위해 필요한 희생자 


 

대학시절, 미국문화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 한 사진을 보여주셨다. 흑인이 백인에게 잔인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 사진이었다.

 

흑인이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로 죽임을 당했고, 아래에는 많은 백인 집단이 밑에서 보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흑인을 잔혹하게 때려죽이는 ‘린칭’ 행위였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교수님은 해당 사진을 보며, 19세기의 미국사회에서는 백인의 우월성을 위한 희생자가 필요했다고 설명하셨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은 이제 간접적인 방식으로 비극을 되풀이한다, 언어를 사용해 우월성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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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상을 비하함으로써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속성의 사람이 아닌 제삼자, 혹은 더 우월한 사람이 되게끔, 언어로 구분 짓고 분리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개근거지라는 말을 던지면 나는 개근거지가 아닌 사람이 된다. 나와 다르다 구분 짓는 이유는 계급과 서열을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어린 나이에 그것을 의식하고 격차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는 것일까.

 

 


구분 짓는 사회 


 

언어는 문화 속에서 만들어지고, 문화는 사회의 한 체계에 영향을 받는다. 열심히 출석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무엇을 얻기 위해 구걸한다는 의미의 거지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로 '개근상' 일 것이다. 차이를 느끼게 하는 언어, 너랑 나를 구분 짓는 언어는 차별을 느낄 때 그것에 대한 적개심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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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를 가면 모두가 부여받는 것이 있다.

 

숫자들이다. 반 숫자, 반 번호, 반에서 시험을 치면서 나오게 되는 석차, 전교 등급, 그리고 대입결과, 대학의 순위까지.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시장에서 또 단어가 붙는다. 매출에 따라 내가 가려는 곳이 대자이냐 중자이냐. 게다가 회사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직급이 나뉜다.

 

편의와 효율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용어들이 사회를 계급을 나누고 사람등급을 나누고 인격을 구분하는 말로 오용되고 있다. 등급이 나눠지고 그에 대한 대우와 보상이 명확하게 주어지는 경쟁의 시대에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증명을 위한 희생자가 필요해진다.

 

다시 폭력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욕 많은 사회가 되었을까


 

아이들은 너랑 나를 구분 짓는 차별적 언어를 왜 만들어냈을까. 신조어의 시작점은 과연 어디였을까.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아이는 옆에 있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란다.

 

빠가충, 김치녀, 맘충, 벼락거지, 지잡대, 철밥통, 세금충 어른들도 아무렇지 않게 너와 나를 구분 짓고, 인격을 비하하는 용어들을 툭툭 내뱉으며 산다.

 

결국 이 모든 현상의 출발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 나 자신들이 모여서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회적 언어습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안 좋은 습관들을 서로 보고 배우고 스스럼없이 행위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어른으로 마주할 수 있다. 개근거지라는 용어는 사실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말 습관과 사회시스템이 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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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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