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아오르지 못한 구조적 문제점 [영화]

글 입력 2024.08.10 22: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럿>을 관람하기 전,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본 적이 있다. 스웨덴 영화 Cockpit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Cockpit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설정으로 퀴어적 요소가 꽤 있고,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풍자를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알고 난 뒤, <파일럿>은 어떠한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인 문제를 풀어낼 것인지 궁금해졌다.

 


Br3Sze1_UfCeY9xN9Fv3ew.jpg

 

 

<파일럿>은 전형적인 코미디 장르 영화를 표방하고 있었다. 간간이 한국 사회 내의 여성 차별적인 구조적 문제를 끌고 오긴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짚지 못하고 어설프게 산발적으로 넘어가 버린다는 지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성희롱 발언을 한 남성 파일럿 한정우는 여성으로 신분을 위장해 부기장으로 재취업하게 되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유명세를 타게 되어 항공사의 얼굴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남성인 한정우가 여성으로서의 삶을 일시적으로나마 살아보며, 여성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차별 혹은 편견의 지점을 보여주며 짚었어야만 “여장을 한 남성”의 소재를 선택한 것이 납득 가능해진다.

 


WPf672wgp4FW_jVUqepEfQ.jpg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짚지 못하고 완성 되어버린 영화는 소재 선택에 대한 의문만을 생성한다. 한정우가 회식 자리에서 여성 파일럿과 승무원의 외모에 대해 ‘예쁘다’는 외모 지적의 성희롱적 발언 때문에 이 모든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의 모습으로 분장한 남성”이라는 요소를 통하여 유머 코드를 챙기려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흩어져버리고, 자기모순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한정우가 한정미의 신분으로 살아가며 여성으로서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긴 하지만, 현 사회에서 여성이 느끼는 차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다. 클럽에서 여성의 거부 의사와는 상관없이 함께 놀자며 팔을 끌어당기는 남성을 향해 한정미(한정우)는 걸걸한 목소리를 보이며,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어필해 남성을 당황케 하고 상황을 빠져나간다. 이 씬은 실제 여성이었더라면, 절대 웃지만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성에게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코미디적인 요소로 변환하여 관객에게 이 상황의 젠더 권력 차원의 구조적 문제점에 닿지 못하게 한다.

 


ktRheOH6o_-pv8QAvI7WsQ.jpg

 

 

<파일럿>에서 규격화된 사회적 여성성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 윤슬기는 언제나 남성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또한, 윤슬기는 한정우의 성희롱 발언을 직접 녹음하여 공론화시킨 장본인 임인 동시에, 한정미를 같은 여성으로서 아끼며 동지애를 느끼는 동료이기도 하다. 이렇듯 윤슬기에게 <파일럿>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와도 같은 캐릭터성을 부여했다면, 이 서사를 끝까지 가지고 가 그가 가지고 있는 의의를 관객들로 하여금 돌아보게 해야 했다.


윤슬기가 한정우를 공론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이는 여성이 용기 내 남성 권력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함에도, 오히려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 또한 한정우의 한정미 위장 신분 사건을 막기 위한 기업 측이 사용하는 비장의 카드, 혹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될 뿐이다. 윤슬기의 이러한 행동과 그에 따른 사회의 폭력적인 반응과 시선이 중점적인 내용으로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기업 측의 횡포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급작스럽게 바뀌어 버린다.

 


Avk-cYv9p5cwxK0okNzzow.jpg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한정우라는 인물은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무엇이 바뀌었을까? 그 무엇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정우는 끝까지 자신이 한 성희롱적 발언에 대한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였고,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적 면모는 유지되었다. 아이가 발레를 하고 싶다는 지점에 대해 알게 되긴 하였지만, 이는 그저 ‘알게 된 것’일 뿐, ‘생각의 변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 채, 추락하는 영화의 서사는 마치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처럼 보인다.

 

 

[이선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