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속독은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글 입력 2024.08.1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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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불안할 때마다 속독하는 버릇이 있다.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하는 것과 비슷하게, 하루에 책 3권을 무섭도록 읽어나간 적이 있다. 물론 책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다소 느긋하게 읽어야 하는 문학 도서는 제쳐두고,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자기 계발 책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단순했다. 틀어진 삶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싶었다. 인생을 구원해 줄 해결책이 책 속에 있다고 믿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꼼꼼하고 자세히 읽는 정독(精讀)을 지향하라고 강조했다. 마구잡이로 그냥 읽는 것은 하루에 천백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 조언을 깊이 새겨듣는 사람이지만, 유난히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멋대로 속독한다.


자기 계발 도서 애호가로서 말하자면, 미라클모닝 같이 흔한 해결책이 보이면 바로 넘긴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실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누구나 다 인지하고 있는 갓생사는 방식이니 말이다.

 

평소와 같이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 의미심장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끈기가 부족하다면, 정기적인 봉사를 실천해라. 운이 좋아지는 길이다." 보다시피 꽤 거창한 문장은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 나에겐 잔소리보단 조언같이 느껴졌다. 지금 이 시기에 당장 행해야겠다며 뭔지 모를 열정이 마음에서 우러나왔다. 마침, 올해 초 작성해 둔 버킷리스트에 유기묘 봉사하기가 있어 당장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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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길러본 적 없는 사람이 무얼 알겠나. 길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츄르 하나 건네주는 마음 하나 믿고 시작했다. 관리자분께서 쉬운 일은 아니니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셨다. 걱정 따윈 없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태도가 무색해질 정도로 일은 쉽지 않았다. 3시간 동안 쉴 틈이 없었다. 한 달 동안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귀가했었다. 그래도 지칠 때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고양이를 보며 힘을 얻기도 했다. 흔히 부모님께서 자식 키울 맛 난다고 말씀하실 때 이런 기분일까. 한 번도 헤아려보지 못했던 심정을 이곳에서 느껴본다.


사정상 나의 봉사활동 여정은 3개월로 마무리됐다. 어떻게 보면 짧고 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며 얻은 것이 많다. 가장 큰 수확은 자기 확신이다. 어떠한 대가도 없이 내가 가진 힘만으로 도움이 됐다는 게 뿌듯했다. 또한 이런 일을 실행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몇 년 동안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분들을 보며 존경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려운데 일정한 보수 하나 없이 선의를 베푼다는 건 큰일이다.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봤다. 언젠가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또는 재정적으로 안정된 시기가 찾아온다면, 항상 더 나은 미래를 가정하며 그제야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진 것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 한 권이 나를 변화시켰다. 이래서 불안할 때, 해결책 찾는 것처럼 속독하는 이유다. 결국 내 인생의 본질적인 목표는 더 나은 사람이다. 추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가진 재화나 가치를 환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中

 

 

가장 좋아하는 책 구절을 가져와 봤다. 언뜻 관념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으로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했을 때야말로 이 문장이 크게 와닿을 것이다. 나에겐 이번 봉사활동이 문장을 되돌아보는 전환점이 되었다. 혹시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면 천천히 곱씹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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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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