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슬프지 않아

글 입력 2024.08.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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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함께 기다란 산책로를 올랐다. 이진아기념도서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3년 전의 약속을 이제야 이룬다. 산책로 주변엔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마치 숲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사이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우리의 우산과 이파리에 부딪혀 자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마치 자장가처럼 은은하고 안온한 풍경이었다.


처음 본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숲속의 도서관이란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나무들 사이에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그곳은 주변의 나무들과 똑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파리를 대신하는 양 햇살을 받기 위한 창문도 많았다. 휠체어를 위해 만든 경사로에는 마치 신전처럼 거대한 기둥들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 경사로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나무 향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애인은 나를 잡고 좀 더 안쪽으로 이끌었다. 밖에서 보았던 것과 다르게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 많아 답답하진 않았다. 계단 앞에 서서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라고 했다. 고개를 들자 두꺼운 구름을 뚫고 닿은 햇살이 유리 천장으로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녀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했다.

 

일반 열람실은 2층에 있었다. 짐을 캐비닛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인데다 비가 오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며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사각사각, 소곤소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등등.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생명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열람실 내부에 있던 계단을 오르자 아담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책과 사람이 뒤엉켜 있었다.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인은 계단을 내려오며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여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도중 뜻밖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진아 양의 가족이 책을 좋아했던 그녀를 그리워하며 사재를 기증해 설립된 곳이었다. 나는 입구에서 스치듯이 보았던 동판을 떠올렸다. 거기엔 어떤 이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엔 가족들이 남긴 글귀도 있었다. ‘가슴에 묻는 대신 영원히 살리기로 결심하다.’


그 말을 들으며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의무소방원이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별거 아니다. 의경 같은 거다. 다만 소방서에서 먹고 잘 뿐이다.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아픈 사람들이었다. 죽은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엔 남겨진 이들이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장남의 기일에 모인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산책을 하고, 시시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누군가의 부재는 수시로 틈입했다. 자기 직전, 우연히 집안으로 날아든 나비를 보고 어머니는 죽은 준페이를 떠올렸다. 그 모습에 가족들은 소리 없이 무너졌다. 그들 모두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전역한 이후로도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을 종종 떠올렸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갈 때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울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침묵으로 빚은 응원뿐이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비의 날개짓만으로도 무너지는 게 인간이었다. 따라서 내가 아는 그들은 모두 새드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지어진 이유를 생각하면 이진아기념도서관의 목적은 ‘추모’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열심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서. 그 풍경이 내겐 참 낯설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어디선가 나를 내려다보는 이진아양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런 걸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서대문구는 슬픈 도시였다.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세운 이진아기념도서관 옆에는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던 이들의 염원이 남아있는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게 잡혀가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돌아왔지만 몸이 더럽혀졌다며 멸시를 받은 조선의 여인들이 통과의례 차 몸을 씻던 곳의 이름은 ‘홍제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역사를 뒤로한 채 사람들은 살아간다. 나는 삶의 끝에 죽음이 있는 줄 알았다. 내게 죽음은 곧 삶으로부터의 단절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바로 거기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그 사실을 원동력으로 우린 슬픔을 끌어안고 미래를 살아가는 인내를 얻는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나비를 쫓는 어머니의 모습에 무너지던 가족이, 훗날 나비를 보며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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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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