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움직임이 향기가 될 때, 우보만리의 '서양 극장 속 한옥' [공연]

창작그룹 우보만리의 <서양 극장 속 한옥>
글 입력 2024.08.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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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날, <서양 극장 속 한옥>을 보기 위해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을 방문했다. 일반적인 공연과 다르게, 관객 참여 이동형 공연임을 알리는 안내 문자와 함께 새로운 형식의 무대에 설렘을 갖고 무대에 들어섰다.

 

무용수와 무대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한국 춤과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있는데, 바로 한옥이다. 한옥은 필자에게 전래동화 속 익숙한 배경이자 한옥마을이나 경복궁을 가면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속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 장인들, 담장, 지붕을 덮는 기와, 마당 앞 소나무, 마룻바닥 등이 떠오른다.

 

본 글은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처럼, 사진과 글을 비교하며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큐레이터가 해체하는 서양 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본 무대는 ‘서양극장 속 한옥’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프로시니엄 무대 안에서 한옥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전시 형식으로 꾸며낸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큐레이터 역할의 무용수가 나와 앞으로 진행될 전시의 진행 순서를 설명하는데, 중간중간 들어오는 그의 재치 있는 말놀림과 더불어 악사와 소리꾼의 생음악은 보는 내내 생동감과 현실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미술관에 가서 설명 없이 작품을 볼 때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볼 때 느낌이 다른 것처럼, 움직임의 여러 요소들을 한옥이라는 공간으로 모으며 작품의 완결성을 갖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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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인 ‘장인의 집’의 막이 오르면 무대 앞쪽에서 장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무용수가 멍석에 앉아 서로 동작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인다. ‘장인의 집’으로 설정된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그들의 움직임은 일종의 노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 무대가 끝나면 관객들은 객석에서 무대 위로 입장하게 되는데,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구조가 아닌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구조로서 무대 위에서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게 해주는 독특하고도 기존에 무용 공연에선 경험해 볼 수 없었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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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으로 ‘다양한 한옥 문’은 크기가 다른 직사각형 모양의 목재 재질의 틀을 가지고 두 명의 무용수가 수행한다. 두 개의 액자로 이런저런 한옥의 문을 형상화하는데 많은 움직임 리서치를 거친 문 모양 형태가 돋보이며, 끼익거리는 문의 효과음을 입으로 내는 것이 관객들의 청각과 촉감을 자극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두 액자가 겹쳐서 문을 위로 열기도 하고, 옆으로 열기도 하고, 밑에서 열기도 하는 구성은 단순히 원목 틀 두 개만으로도 보는 관객의 경험을 무대 위로 끌어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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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구성은 ‘마당에서 자라나는 사계절’이다. 객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액자로 보이는 바닥에 놓인 나무 틀 안에 웅크리고 있는 무용수를 볼 수 있다. 그의 상반신 맨살에는 쌀알이 붙어 있어 모래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시간성을 부여하고, 나무가 자라나는 과정을 타임랩스 형식으로 빠르게, 하지만 아주 미세한 그의 움직임으로 시각화한다. 몸을 웅크려 수축한 상태에서 쭉 펼치며 이완하는 과정까지, 무용수의 몸으로 자연물을 형상화하며 그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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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지는 ‘무한히 확장하는 창을 가진 작은 방’을 지나 ‘정자: 가무악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무대 맨 뒤쪽에서 정자 뼈대 모양의 정육각형 목재를 위에 매달아 놓고 그 안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가 보인다.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은 평면적인 정육각형 뼈대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며, 그 안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정자에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옛 어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옛적에 이야기 마당이 되었던 정자는 무대 위에서 춤마당이 되고, 한참 동안 회포를 풀고 나면 저 멀리서 산자락에 해가 걸려있는 그 시절 공간과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이후 자연스럽게 ‘가을밤 마당’ 감상 시간이 되면, 무대 위 모든 스태프가 모니터 화면을 덮고 조명을 어둡게 내린다. 비록 무대 바닥에 앉아서 보는 작은 조명 빛이지만, 어둠이 내린 밤에 새가 지저귀는 듯한 고요함과 얕은 바람 소리는 정자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 듯한 환상을 주며 편안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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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금세 밤하늘이 지나가고 나면 ‘코 앞에서 바라보는 한국 춤’이 전개되는데, 노란 저고리와 파란 치마는 한국 춤 중 교방 굿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한복을 갖춘 고운 무용수가 코앞에서 춤판을 펼친다. 그녀의 춤에 푹 빠져들어 갈때쯤, ‘마을 축제 잔칫날’이 열림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장구를 멘 또 다른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녀는 신명 나게 장구를 치며 춤판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관객들 또한 그 분위기에 취하며 함께 춤을 즐기고, 박수를 치며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작품을 볼 때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지 못하더라도 작품의 제목에 묻어나오는 정겨운 어조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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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작품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다양한 공간을 품은 남자, 3명’이 목에 여러 겹의 제각각 크기의 나무 틀을 메고 등장한다. 목에 걸려있는 나무 틀을 몸으로 세우고, 비틀며, 그 틀은 서로 엉켜지며 다양한 공간을 품어낸다. 겹겹이 싸여있는 나무 틀을 세우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개의 공간. 마치 지금까지 본인들이 했던 무대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요약해서 보여준 바와 같다.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이 있고, 다른 공간을 새롭게 창출해 내는 과정이 한옥이라는 집을 설계해 낸다.

 

 

 

한옥이 주는, 춤이 주는 향토감


 

한옥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서양 극장 속에서 확장할 줄은 몰랐다. 한옥마을에서만 볼 수 있던 한옥이라는 공간을, 조금은 낯선 프로시니엄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은 색다른 시도이다. 전시 형식이지만, 공연이었고. 분명 극장이었지만, 한옥이었다. 서양 극장 속에서 옛 시대의 일상복을 입고 무용수들의 몸에서 구현하고 있는 일상성은 이내 관객들의 경험 속에 내재한 기억을 통해 이내 한옥의 몸과 공간으로 환치되었다. 또한 고정된 무대에서 기초적인 무용의 공간을 해체하고 ‘한옥’으로 재조립하는 과정이 한옥이라는 고풍스러운 공간을 더욱 부각해 보여주었다.

 

최근 무용 공연에서 관객과 무용수가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관객은 무대의 참여자로서 단지 시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관객이 무엇을 경험하고 함께 했느냐라는 수행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이번 작품 또한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해 준 공연이라고 볼 수 있겠다. 뭐든 해체하면 다시 조립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이번 작품은 해체와 조립의 경계를 세심하게 탐구하고 재조립한 고풍이 풍겨온다. 한국 춤의 본질은 여러 갈래로 펼쳐질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음악과 공간에 집중한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서양 극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낯선 경험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오감으로 느낀 음악과 춤, 그리고 정겨운 기분은 향기로 남아 기억 속에 배어왔다.

 

움직임이 향기가 될 때, 비로소 내가 춤을 사랑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옥의 나무에 빗방울이 스며들어 향토적인 향기를 뿜는 듯, 찰나에 느낀 향토감과 빈 공간 속에서 오는 밀도감이 마음에 와닿았다.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움직임은 그 여운이 몸에 베어온다는 점에서 향기와 참으로 닮아 있었다.

 

 

사진 출처 : c.송우람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 공식 포스트), c.byone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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