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랑스는 여름의 풍미를 머금고 [영화]

영화 <프렌치수프(The Taste of Things)>
글 입력 2024.08.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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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요리하는 외제니(왼쪽)과 도댕.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이번 여름을 뜨겁게 달군 두 가지가 있다. 타는 듯한 더위와, 폐막을 목전에 앞둔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다. 더위가 정점에 다다를 시기에 개막한 올림픽은 입추를 지나 어느새 조금씩 가을을 준비하는 늦여름을 장식해 주고 있다.


올림픽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요소는 여러 시도들이 함축된 개막식과 에펠탑/그랑팔레/앵발리드 등 파리의 문화적 명소를 보금자리 삼은 경기장이다. 프랑스라는 국가의 문화적 자부심을 그대로 올림픽에 녹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76회 칸 감독상을 수상한 트란 안 훙 감독의 작품 <프렌치 수프> 역시 프랑스의 자부심 그 자체인 미식을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레스토랑 오너 도댕과 함께 요리하는 요리사 외제니의 모습을 통해, 음식에 한없이 진심인 프랑스의 식문화를 온연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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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무스, 전복, 가재, 야채 등 다채로운 재료를 담은 외제니의 '볼로방'. 사진 출처 :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식 페이지

 

 

프랑스인에게 식사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산물이다. 외제니가 직접 키운 채소를 정성스레 손질해 소쿠리에 담는 영화의 도입부,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주방에 사뿐히 걸어들어와 마치 그 요리 하나만을 위해 탄생한 듯한 조리 도구에 식재료를 능숙하게 담아내는 모습. 영화에 담긴 장면들을 함께 머금다 보면 정성이 가득한 식사에 초대받은 느낌에 황홀한 기분까지 든다.


식전주부터 디저트, 적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4~5시간에 달하는 식사 시간. 이 시간을 빼곡히 채우는 음식엔 요리를 통해 상대와 소통하고, 근사한 추억을 마련해주고픈 마음이 깊이 녹아있다. 마치 작품을 어루만지듯 음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요리들에 꾸준히 방대한 숨을 불어넣는다. 특히 도댕이 사랑하는 포토푀는 프랑스 국민의 향토 음식으로서 전통을 상징하고, 퍼프 페이스트리 안에 치킨무스, 전복, 가재, 야채 등 다채로운 재료를 풍성히 담은 볼로방에는 정성이 한데 녹아들어 가 있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여러 형태로 담긴다. 정성 대신 허례허식이 가득한 식사를 냉랭히 내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도댕 일행이 유라시아 왕자에게 식사를 초청받아 장장 8시간에 걸쳐 휘황찬란한 요리를 맛보고 돌아왔을 때, 요리에 규칙 대신 관습이 가득했다는 평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가 설득에 성공한 것인지, 관람 후엔 프랑스 음식 외에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달큰하고 따뜻한 어니언수프로 속을 달래고, 묵직하지만 그만큼 깊은 맛의 본식을 맛본 후 달콤한 디저트로 입가심을 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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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에게 프러포즈하는 도댕의 모습.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영화에서 음식이 포용하는 것은 맛 그 이상이다. 도댕과 외제니의 애틋한 사랑마저 음식을 매개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도댕은 외제니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요리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름 모를 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외제니에게 그녀만을 위한 만찬을 선보이고, 자신의 필살기인 포토푀를 맛보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고, 별다른 말없이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이유 역시 20여 년간 함께 이어온 요리의 호흡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외제니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도댕에게 아내 이전에 ‘요리사’로 남길 택했다. 그녀는 몇 차례 청혼을 거절하다, 반지를 디저트로 덮어 요리로써 호소한 도댕의 프러포즈에 끝내 응했다. 하지만 도댕과 결혼의 연을 맺기 전에 숨을 거두었고, 도댕에게 자신이 당신에게 아내인지, 요리사인지 물었다. 그러곤 요리사라는 그의 대답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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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약속하는 두 사람의 모습. 풍경과 의상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명화 같은 인상을 준다.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타는 듯한 여름을 사랑한 외제니는 자신이 그토록 애정하던 계절에 도댕 곁을 떠났다. 요리에 아낌없이 내어준 열정이 정점에 닿을 즈음 지극히 차분하게 눈을 감으며 아쉬움을 자아내면서도 영화에 숭고한 분위기를 더했다.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의 가을에 서로의 평생을 함께하고자 약속했지만, 뜨거운 여름에 사랑과 열정을 태운 채 일생을 마무리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여름의 싱그러운 색채를 머금고 있다. 언뜻 가을과 어울리는 듯 앤틱한 분위기의 주방에 햇볕을 가득 비추어 여름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영화 속 인물들이 숲속을 거닐고,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오는 풍경 모두 여름의 빛깔로 가득하다.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기 전에 <프렌치수프>를 한 번쯤 영화관에서 맛보길 추천한다. 무더운 날씨에 조금은 지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건네는 향기로운 선물을 맞이하기에 여름보다 적절한 계절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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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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