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리라 [드라마]

글 입력 2024.08.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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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내용에는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드디어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마지막 시즌이 공개됐다. 시즌 3 이후 무려 2년 만에 돌아온 작품이라 공개 전부터 많은 팬의 기대를 모았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쓰는 일곱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슈퍼히어로물이다. 만나면 서로 시비부터 걸며 매일 같이 티격태격하는 일곱 명의 주인공은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그리고 다가올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뿐 아니라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각자의 개인적인 서사 역시 자세히 다루며 히어로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드라마의 마지막 시즌은 시청자들에게 만족감 대신 실망감만을 안겼다.

 

 

 

루즈한 진행과 매력적인 악역의 부재


 

이 작품의 강점은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긴장감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시간선 등 다소 복잡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는 시청자들이 급속도로 드라마 속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섬찟하면서도 유머가 돋보이는 특유의 분위기 역시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시즌 4에서는 <엄브렐러 아카데미>만의 장점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았다.


먼저 시즌 4의 초반 회차를 보자마자 느낀 점은 진행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은 시즌 3이 끝난 순간에서 6년이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많은 세월이 흐른 만큼 단숨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흡입력 있는 서사가 필요했으나, 1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또한 드라마의 강점 중 하나인 ‘다인원 활용’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일곱 명의 인물이 모두 비중 있게 다뤄지며 이들이 다양한 조합을 이뤄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서는 인물들 간의 케미가 이전만 못 했으며, 색다른 이야기가 부족한 한계를 보였다.


임팩트 없는 악역 역시 문제였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도 무게감을 잡아줄 만한 섬뜩한 악역이 매 시즌 등장했다. 가령 시즌 1, 2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핸들러’라는 캐릭터가 돋보였으며, 시즌 2의 ‘스웨덴 삼 형제’ 역시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반면 시즌 3에 등장하는 악역인 ‘파수꾼’ 무리와 이들을 이끄는 ‘진과 진’은 강력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배경 설명도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성장 없는 서사의 한계


 

이번 시즌을 시청하며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주인공이었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인물들이 갈등을 딛고 서로 협력해 세상을 구해내는 과정이다. 시즌 1 초반부터 각 인물이 가진 상처와 결함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앞으로 이를 점차 극복해나갈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 중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주인공들이 갈등을 대처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똑같다. 언제나 서로를 탓하며 제 갈 길 가기 바쁜 이들의 모습을 시즌 4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다 같이 힘을 합쳐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듯했지만 얼마 안 가 ‘벤’은 화를 내며 이탈해버리고, ‘클라우스’는 비난의 화살을 가족들에게 돌린다. 네 개의 시즌이 방영되도록 그저 한결같은 인물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에서 인물들은 더욱 퇴보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마지막 회차까지도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했다. ‘앨리슨’은 배우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루서’ 역시 연인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망가진 삶을 살고 있었다. ‘라일라’와 ‘디에고’는 양육과 일을 병행하느라 지쳤으며, 벤은 가족을 잃은 뒤로 시종일관 삐딱한 자세를 유지한다. 특히 클라우스는 여전히 자신의 약한 면을 극복해내지 못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해피엔딩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조금의 행복이나 성장 없이 막을 내린 이들의 서사는 슬프도록 공허했다.

 

 

 

풀리지 않은 궁금증


 

물론 흥미로운 장면도 일부 존재한다. '제니퍼'와 벤의 관련성, 벤이 죽었던 이유 등 지난 시즌에서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해답이 이번 시즌에 담겨있다. 다만 끝내 풀리지 않은 궁금증에 시청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가령 드라마에는 시즌 3 말미에 갑자기 사라졌던 인물인 ‘슬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분명 다른 인물들과 함께 살아 있었던 슬론이 어느 순간 사라진 이유를 이 드라마는 끝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또한 지난 시즌 마지막에 등장했던 한국 지하철 속 벤에 대한 궁금증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이처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은 드라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이번 시즌은 총 6화로 다른 시즌에 비해 회차 수가 현저히 적다. 그래서인지 복잡했던 사건의 해결 과정과 인물의 심경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작품을 시청하는 내내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감정선과 행동으로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제작 총책임자인 ‘스티브 블랙먼’은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적합한 결말을 찾았다고 자신했으나, 과연 시청자도 이에 동의할지 의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왔나. 작품을 끝까지 감상한 뒤 남는 것은 여운이 아닌 허무함이었다. 아쉽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4는 창대한 시작에 어울리지 않는 미약한 결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참신하고 다양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나, 결국 용두사미의 늪을 피하지 못했다.

 

 

[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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