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제의 시대 속을 떠도는 '기억' -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네마프

'기록'된 이미지와 '기억' 속 이미지
글 입력 2024.08.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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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국내 유일의 영화와 전시를 아우르는 뉴미디어아트 대안영화제인 제24회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2024)이 개최되었다.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7일간 KT&G상상마당 시네마/스위트관, 서울아트시네마,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상암연구센터 미디어홀, 별관 아웃하우스 등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네마프2024는 대안영화, 디지털영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등 뉴미디어아트 영상과 전시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대안영상예술축제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영화제로, 올해 30여개국 87편이 상영, 멀티스크리닝 전시된다.


올해 네마프2024의 주제인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을 나타낸 '한국 단편2'의 영화 다섯 편과 '글로컬 단편3' 영화 다섯 편을 감상했다.

 

 

 

한국 단편2


 

우리의 동굴(Our cave)- 1960년대 미군 부대 앞에서 춤추는 한국인 여성들 모습의 시퀀스와 한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지나간 자리엔 필름이 남는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의심한 마그리트와 조선 후기 신복돈의 야담집인 《학산한언》은 공통적으로 동굴이란 어둠과 거울상으로 다시 들어간다. 카메라와 단둘이 남겨진 공간에서 그 둘은 서로에게 어떤 시선으로 남을까?


폐쇄 회로 텔레비전(Close-circuit Television)- 코인 노래방이란 장소가 주는 안락함과 폐쇄성은 개인의 울타리다. 현대에 새로운 기술이 된 스마트폰을 비추며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그것을 바라보다가 노래방 CCTV에 갇힌 자신을 보게 된다.


체화(Chaehwa)- 수수께끼의 전학생 ‘다빈’이 초등학교에 전학 온다. 여름인데 일광욕을 즐기고, 밥은 물만 마시며 몸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다빈이 산에서 내려온 이후, 세상의 모든 꽃이 만개한다.


'다빈'에게 다가오는 시선, 표정, 말씨들은 호기심, 경외, 혐오로 이어지다가 종장에는 그것을 모두 공유하게 된다. 자신과 타자의 횡단을 저변과 주변을 허무는 에코아나키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형형색색의 색채적 현란함으로 아름답고 섬뜩하게 은유한다. '다빈'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그 꽃이 '다빈' 자신이며, '때리는 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글로컬 단편3


 

열렬한 타자(Ardent Other)- 2019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군중들이 경악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키메라는 이 위협적 사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담는다. 800년의 세월이라는 프랑스의 정체성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의 두려움은 상기될 필요가 있고, 재앙에 대한 반응은 무언가에 대한 징후로 재현되었다. 단순한 슬로우 모션 촬영에서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변환되며 군중의 기억은 박제되지만 불타없어진 노트르담 성당은 스크린에 한번도 비치지 못한다.


충족의 요건(How to Please)- 이라크 내전을 피해 도망친 Wed Al-Asadi는 핀란드에서 망명을 신청하기 위해 요리사로 일자리를 구하고, 취업 허가를 신청하고, 교육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핀란드는 망명 신청을 거부하며 그의 망명 절차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의 회고는 세트장에서 진행되며 마치 게임을 연상시키지만, AI 음성의 무미건조한 신청 거부 알림은 점점 한 사람의 권리에서 인간 권리의 가장 최소한으로 축소한다. 이제는 운전할 권리마저 박탈된 그는 세트장에 놓인 자동차를 타고 그곳을 벗어나며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에필로그에서는 그가 전화로 감독에게 망명 신청 허가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난다. 실사례를 다룬 만큼 그 소식에 안도감을 느끼긴 했지만, 스크린을 벗어난 다른 망명자들의 삶은 에필로그에 닿기까지의 수많은 고난과 실패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은 안정된 망명자의 삶을 그리기 어렵다는 인식에 씁쓸함을 느꼈다.


퀘브란테(Quebrante)- 은퇴한 교사이자 탐험가인 에리스마르를 따라가며 아마존 횡단 고속도로인 아마존 BR-230 고속도로의 동굴, 폐허, 환상을 탐험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에 실린 달과 동굴을 비추는 달, 그곳들엔 모두 달이 있었다. 'Quebrante'는 포르투갈어로 '파괴'를 뜻한다.


아마존 횡단 BR-230 고속도로는 브라질 정부의 진보 개발 정책의 일부로 1964년부터 1985년까지인 군부독재 기간 시행되었다. 한국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브라질은 그 자체로 '달'이었다. 달의 뒷면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상상할 수 있다. 에라스마르는 오로지 양초 하나에 의존하며 동굴에 들어가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발견할 것이란 상상에 믿음을 가진다. 달 모형물을 굴리며 갖고 노는 어린아이들처럼 상처와 두려움을 따뜻하고 반짝거리게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

 

작년 네마프에서는 전시 공간에서 대안영화를 감상했다면 올해에는 KT&G 상상마당 시네마라는 완전한 블랙 큐브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나 2024년 네마프의 주제였던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을 표현할 암실을 블랙 큐브가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올해 네마프의 영화 선정 기준이나 영화의 주제적 측면, 영화에 사용된 기술을 살펴보았을 때, 'AI'란 단어를 유독 많이 접하고 있는 요즘을 기민하게 포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작품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대안적 시선과 질문을 던진 작품들이었다. 인간을 압도하는 기계의 이미지는 산업혁명 시대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다. 인공지능이란 명제 아래에 숨기고 있는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에 대한 대안적 관점은 한 번도 설명되지 않은 비주류의 시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타자에서 메타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대한 시발점이 되는 영화제였다.


점점 박제되고 표본 되는 정보가 늘어나지만, 그에 비해 인간의 기억은 불분명하고 연속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기억이 가진 힘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대안'을 찾게 해줄 것이다. 네마프는 올해에 이어 계속하여 비주류의 시선을 대변할 좋은 창작물들을 세상에 알리길 바란다.

 

 

 

변의정.jpg

 

 

[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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