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금의 문제, 미래의 문제, 우리가 논의하게 될 것들 -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네마프 2024
글 입력 2024.08.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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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네마프2024.png


 

학교들은 방학에 들어가고, 직장인들의 여름 휴가가 시작되는 무더운 8월의 초. 벌써 24회를 맞은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발이 서울에서 열렸다. KC상상마당시네마, SMIT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SMIT), SA서울아트시네마, KS상상마당상상스위트, OT별관아웃하우스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린 이번 네마프는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을 주제로 30여개국의 87편이 상영, 전시되었다.


주제인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은 인간 역사들이 권력화된 인공지능의 디지털로 빅데이터화되는 시대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고 한다. 우린 오픈AI 챗GPT 등 인공지능이 생성해내는 텍스트, 이미지, 무빙이미지 등이 인간의 사유체계를 뒤흔드는 시대에 살고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미지는 데이터로서 박제, 대물림되고, 어떤 이미지는 그저 모호한 기억으로 가상공간을 유령처럼 배회한다.


올해 주제전은 한국입양 7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진행되는 "떠도는 기억, 그 너머의 흔적, 한국입양 70년"이다. 디엔 볼쉐이 립과 제인 진 카이젠, 말레나 최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작가전엔 엘리 허경란의 작품 '더 래그워트, 플란테리언즈, 북극 정원' 세 작품이 초청되었다. 카메라를 이용한 기록자이자 한 인간이라는 관찰자로서 자연과 인간이 맺는 유기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비디오로 제시한다.


올해의 국가 교류전은 일본이 초청되었다. 올해는 우리에게 가까우면서도 국내에서는 잘 접하지 않았던 일본의 비디오예술 작품들을 모아 특별전으로 소개한다. 야마모트 루리코, 나카지마 코, 스즈키 노노호 작가 등의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비디오아트 등과 한일교류전 작품 등 15개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마지막으로 장르전 "바이오스코프, 물질의 아나토미"에선 과학장치의 발달로 생겨나는 새로운 데이터 중 그림값을 가진 것들을 통해 동시대를 바라본다. 작품들 속 이미지는 기계로 인해 만들어지는 탈 인간적인 맥락, 동시에 인간이 발명한 기계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미지라는 모순의 공존을 시각화한다. 난 장르전과 국가교류전을 선택해서 관람했고, 이 중 몇작품을 중심으로 오늘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바이오스코프, 물질의 아나토미: 단편

Bioscope, Anatomy of the Matter: Shorts


 

장르전_미얀마 아나토미_프라팟 지와랑산.jpg

장르전_미얀마 아나토미_프라팟 지와랑산


 

바이오스코프는 의학, 과학 등 기술적 발달에 의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뚫어보는 기계의 눈을 전면에 세워내는 작업들이 많았다. 첫 작품인 <미얀마 아나토미>는 해부학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담론을 은밀하게 담아냈다. 스틸컷에 나온 것처럼 영상 자체는 스틸 이미지와 보이스 오버를 많이 활용한다. 이미지가 상당히 설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보이스 오버는 직관적인 내용의 인터뷰를 활용하는 방식이 많다. 영상을 쭉 보고나면 권력, 제국주의,전쟁, 과학기술의 발달, 박제된 동물, 박물관, 전시, 오락으로 이어지는 키워드가 머릿속에 줄지어 있다.


끝나고 진행된 감독님들과의 GV에서 나온 질문에서 한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넘어갈때 파랗게 변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도 관람을 하면서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미얀마에서는 이국적인 동물이 든 우리에 파란 조명을 많이 킨다고 한다. 작품에서 이 파란색은 동물원 자체, 혹은 기술진보, 교육이라는 정당화아래 일상적이 되어버린 감금, 박제, 해부되어버린 생명을 주목하게 만든 경종인 것이다. 당연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당연시되면서 타자화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것들을 보고있으면 이런 물음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기술이 발달해야 하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많은 기술, 물건이 필요한가? 이게 정말로 더 나은 삶, 경제 성장, 행복, 완벽한 삶을 보장하는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삶에 안주하는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인가 혹은 진정한 자유를 향하는 지혜일까.


GV가 끝나고도 파란 조명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육점의 고기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빨간 조명을 마주할 때. 오징어잡이배의 반짝이는 노란 조명을 볼 때. 성매매 업소에 켜져있는 홍등을 보며. 퍼스널 컬러에 맞는 101가지 화장품을 제작, 마케팅, 판매하는 화장품 매대를 볼 때. 이미지로 점철된 일상이 점차 대상화되고 타자화되어감을 느낀다.

 

 

 

일본 교류전2: 미래의 유적

The Extension of IAFT: ALT-Moving images


 

본 작품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의심없이 '아부리다시: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진 비디오 편지'를 꼽고싶다. 스즈키 노노호의 작품으로 9분 24초의 타임라인, 3개의 챕터로 나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챕터는 세대를 중심으로 나뉘는 듯 하다. 작가인 자신, 자신의 자식, 자신의 아버지.

 

형식은 다양하다. 실사 영상, 보이지 않는 잉크로 인쇄한 사진 셀 애니메이션, 그림 셀 애니메이션, 루프, 사운드 역시 나레이션, 동요, 효과음 등등 다양하게 쓰인다.

 

밑엔 유튜브에서 찾은 예고편 버전의 작품. 짧게라도 전반적인 영상의 톤 앤 매너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 작품이 기반으로 하는 사건은 전쟁이다. 일본이 전쟁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묘한 기분이지만, 개인이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축에서 이야기를 해 볼 수있다. 특히 올해 네마프의 주제인 '떠도는 기억'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같다. 지극히 국가-정치-경제적 수단인 전쟁은 어쩌면 개인-기억-감정과는 극점에 있는 존재다. 그러나 너무나 집단적이기 때문일까, 전쟁의 영향권 밖에서 존재하는 역사, 유적, 유산 개인은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다큐 형식(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극영화 형식(가상)이 공존한다.

 

더불어 내가 인상깊게 느껴진 부분은 작품의 공연적인 부분이다. 영상이 퍼포먼스를 하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퍼포먼스나 무용, 공연을 카메라로 찍었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영상 자체가 내 앞에서 춤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애니메이션+실사+나레이션+사운드 등등 실험적인 형식이 주는 신선함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가가 하는 이야기 자체는 마냥 실험적이지 않았다.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킬수있는 실험 영상이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영상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는 해냈다.


이후 이어진 GV에서 또한 이 작품이 세계 곳곳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만약 기회가 되면 꼭 극장에서 관람해보시길 추천한다. 공연이나 연극처럼 무대 예술을 보는 듯한 몰입감, 감정의 요동을 스크린에서 느끼게 된 몇 안되는 작품이었다.

 

*

 

두 가지 섹션(총 6작품)밖에 보지 못해 전체적인 영화제의 분위기에 대해서 많은 리뷰를 남기지 못한 부분은 아쉽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제였음은 확실하다.

 

이 중엔 현재 논의가 시작된 담론도 있지만, 곧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만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오늘 리뷰엔 그런 부분을 비롯해 내가 느낀 최대한 많은 부분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여기엔 분명치 않은 부분, 작가의 의도와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작년에도 리뷰를 썼었고, 올해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네마프는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늘 반갑고 놀라운 영화제이다. 앞으로도 좋은 작가와 영상을 발굴하고 소개해주는 역할과 함께, 영화제에서도 유일무이한 대안영상을 다루는 포지션을 굳건히 지켜나가 주기를 바란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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