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카고 공공도서관 여정 2. 이민자들에게 공공도서관이 갖는 접근성의 의미 [여행]

설저 리저널 라이브러리편
글 입력 2024.08.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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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접근성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현실


 

“앤드류 카네기는 도서관을 대중을 위한 궁전이라고 불렀죠. 여기는 제 궁전입니다. 저는 항상 공공도서관에 많은 빚을 졌다고 느낍니다. 제가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죠. 아는 사람이 없어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어도 이민자 소녀가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정말 놀랍죠." (출처: KBS 다큐멘터리 인사이트 23.08.17 방송)

 

이민진 작가가 남긴 말이다. 그녀는 2024년 최근 뉴욕타임즈(NYT)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 15위에 오른 화제작 ‘파친코’(Pachinko)의 저자다. 작가가 말하는 도서관은 뉴욕의 공립도서관이다. ‘파친코’(Pachinko)는 201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9년 이 도서는 뉴욕 공립도서관(NYPL) 전체 도서대여 순위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에게 아낌없이 책과 지식을 나누어 주었던 곳이 이제는 그녀가 집필한 책을 세계인에게 빌려주는 곳이 된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또 마음의 손을 건넨다. 소설만큼 아름다운 현실이라 생각했다.

 

전세계의 심금을 울린 이민진 작가의 힘의 원천은 공공도서관에 있었다. 그녀의 신화로 누구나 지식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빛을 발했다. ‘파친코’(Pachinko)는 이민자 가족의 연대기로 이방인이라는 감정과 사회적 위치를 풀어낸 문학이다. 이민진 작가 또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민자였다. 뉴욕의 공립도서관은 그녀가 이 시대의 디킨슨에 비유되는 작가가 되기까지 풍부한 영감을 주었다.

 

공공도서관은 이민자들에게 편견 없이 지식을 나누어 준 궁전이었다. 나 또한 이방인으로서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이민진 작가가 느꼈던 감정에 공감되었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이민자들에겐 공공도서관이 어떤 마음을 빌려주었을지를 상상하며 시카고의 또 다른 공공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속해 있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민자들에게 공공도서관이 갖는 접근성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해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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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저 리저널 라이브러리 (Sulzer Regional Library)


 

오늘의 공공도서관은 설저 리저널 라이브러리 (Sulzer Regional Library)이다. Central, Regional, Branch의 시카고 도서관 분류 중에서 오직 3곳만 존재하는 Regional에 해당한다. 그 이름에서부터 규모와 역사가 기대되었다.

 

설저 리저널 도서관이 위치한 거리는 작은 카페와 상점이 즐비해 있다. 마냥 아기자기한 거 같지만,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딴 Lincoln 스퀘어이다. 이번 공공도서관을 찾는 여행은 거리에 들어서며 링컨 대통령의 조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정보를 만날 수 있다. 큰 규모에서 주는 첫인상과 주변 지역과 어우러짐에서 나오는 도서관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곳에 자리 잡은 공공도서관은 무엇이 다를까? 시카고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도서관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1985년 문을 열었다. 스웨덴 이민자 Conrad Sulzer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황무지를 농지로 일구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번 지점 또한 지난 버드롱 우드브랜치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을 마을 주민으로 만들어주는 통합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지난번엔 한국어책을 보관하고 있다는 특색이 있었다면 설저 라이브러리는 폴란드어, 러시아어와 스페인어로 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시카고에 유럽의 이민자들이 유입되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가진 듯하다. 현대적이면서도 옜스럽게 디자인된 계단, 기둥, 천장은 독일 고전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임을 드러내고 있다. 도서관 의자라고 하기엔 유별나고 카페에서 볼 법한 소품들이 두드러졌는데 처음 도서관이 건립될 때부터 가구 대부분은 독일의 신화적인 주제에 영감을 받아 커스텀 디자인된 것이라고 한다.

 

 

 

능동적 역할의 도서관 서비스 ‘CITZENSHIP CORNER’


 

이 도서관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책을 찾으러 다녀야 할 정도로 가로로도 세로로도 높은 도서관이었다. 양적인 규모만 설명하는 것은 도서관에 대한 표면적인 해석이다. Citizenship Coner 일명 시민권 코너를 보면 방문자들을 위한 도움 제공의 깊이까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을 찾으러 온 사람에게 정보를 준다는 것에 나아가서 주민이 원하는 공통의 정보를 찾아서 주고자 한다. 능동적인 역할의 도서관이다. 이민자에게 시민권과 관련된 서비스와 혜택의 정보를 주고자 특별 코너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코너는 이민자 사회가 합법적으로 일리노이주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다양한 온라인 자원들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복잡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보를 분류해 놓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한 주민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공공도서관이 주민에게 필요한 곳이 되려면 가장 먼저 ’주민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만큼 좋은 의미에서 샐러드 볼(Salad Bowl)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파헤쳐 보면 그만큼 갈등도 많다.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파생되는 사회 갈등과 기본권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을 도서관의 방식으로 제시했다. 본받고 싶은 자세였다.

 

 

 

공간 구성


 

책만 읽으러 온 사람만 있지 않다. 과제 하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전자기기를 사용하러 온 사람,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자 찾은 사람, 목적이 다양하다. 그만큼 모두의 목적을 담을 수 있는 공간 구성도 중요하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생각하면 형식적이고 반듯한 네모난 공간 구성을 떠올리기 쉽다. 특히 한국의 공립공도서관에서 어른의 층계로 올라갈수록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있던 어린이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은 좀 달랐다. 어른도 아이처럼 재미난 공간에서 공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걸까. 벽에 붙어서 나만의 사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방문자들을 위한 공부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1인 책상도 많다.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규칙 없이 배치된 책걸상의 위치와 카페 소품 같은 책상들이 구경하는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가구판매장에 온 게 아님을 상기시키며 책이나 찾자고 몇 번을 되새기며 다닌 기억이 난다. 계단이 어떻게 이어져서 어디에서 공부할 수 있을지 모험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을 누볐다. 그만큼 볼거리가 된다는 말이다.

 

공간 활용마저 이방인인 나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장 큰 매력은 공부하기 위해 마련된 곳과 책이 있어야 할 곳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학습 스타일과 성격에 따라 원하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 점이 창의성을 향상하게 한다... 완전한 경계가 아닌 말 그대로 ‘융화’라는 단어를 선택해 책과 사람을 연결한 공간 구성이다.

 

 

 

청소년과 미래를 생각하는 ‘YOU MEDIA’


 

미국의 미디어 대기업 'comcast'는 작년 10월 시카고의 26개 도서관 지점을 선정해 전자기기들을 지원했다. 설저 라이브러리도 우수한 자원을 인정받아 선정되었다. 우리도 스터디 카페나 도서관에서 전자기기를 빌릴 수 있고, 컴퓨터 사용도 대부분의 곳에서 가능하지 않나? 반문할 수 있다. 'YOU MEDIA'는 흔한 전자기기 대여 서비스와 다르다. YOU는 YOUTH의 준말로 21세기의 10대들을 특별히 지원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공교육의 여부에 상관없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도서관이 배움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별함은 학습의 관점이 아니라 흥미와 함께의 관점에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데에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나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친구들과 놀 수 있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학습을 놀이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평생교육의 시작점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일단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재밌어야 계속 오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낸, 본질에 충실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리저널 도서관의 성장통


 

이쯤에서 3개의 리저널 도서관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1916년 CPL(시카고 공공도서관 체계)의 총사령관인 Henry Regler의 “Library Plan for the Whole City” (도시 전체를 위한 도시 계획)에 따라 처음으로 건립이 제안되었다. 그는 ‘democratize information access’란 표현을 사용했다. 정보 접근을 민주화한다는 직역처럼 공공도서관은 지역 주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식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4년 뒤, 그의 이름을 딴 1920년 서쪽 지역을 대표하는 리저널 라이브러리가 문을 열며 그 시작을 알렸다.

 

리저널 도서관은 위기를 겪으며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시카고의 공공도서관은 벽화가 갖는 상징성이 중요하듯이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설저 리저널 도서관도 건립 당시 도서관에 배치한 4개의 벽화가 도서관의 공간 구성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으로 곤욕을 치렀다. 첫 리저널 지점이었던 Regler 또한 비슷한 성장통을 겪었다. 도서관의 확장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하기로 결정된 벽화가 공공예술로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녔다는 점에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 벽화는 도시 건물 보수 비용의 1%를 그 건물에 전시된 공공 예술에 바치도록 규정한 “Percent for Art” 프로그램의 일부로 의뢰되었었다. 이는 공공예술의 역할에 대해 마을 전체가 고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모든 시민에게 편리한 접근성을 제공하려는 목표에서 비롯되었기에 주민이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피할 수 없었다. 100년을 넘긴 오랜 역사만큼 마을에 사는 사람들 또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별로 지역별로 유입되는 다양한 이민자가 주민이 되도록 지역 도서관이 연대와 소통의 역할을 하게 했다. 당시 시민활동가는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천국이, 직업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기업가에게는 친구를, 시민활동가에겐 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보관과 대여의 전통적 의미와 학습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려는 실험적 역할의 교차로에 있었던 도서관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공공도서관은 이제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참고: beltmag)

 

 

 

외곽지역의 공공도서관


 

Lincoln이 붙은 또 다른 이름의 도서관을 찾은 이야기도 함께 곁들이고 싶다. ‘링컨우드 퍼블릭 라이브러리(LincolnWood Public Library)’이다. CPL에는 해당하지 않는 곳이라 의아함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중심부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난 외곽의 마을이어서였을까. 시카고에 있는 모든 도서관이 CPL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CPL이 아니기에 도서관 분류에서의 공통점은 없지만, 링컨이 들어갔다는 명칭에서 재미난 표면적인 공통점이 있었고, 전자기기를 누구에게나 제공한다는 내용 면에서의 공통점이 나를 흥미롭게 했다.

 

‘YOU Media’란 이름 대신 이 도서관이 표방하고 있는 전자기기 대여 정책은 ‘Library of Things’이다. 도서관이 가진 다양한 전자기기들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얼마나 다양한지 상상을 초월한다. 콘센트 케이블, 충전기, 카메라, 촬영장비 등 기기의 종류와 성격이 다양하다. 전자기기가 사용되는 다양한 용도를 생각했음을 느꼈다. 도서관은 이용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시 한번 도서관은 학습하러 오는 곳의 역할만을 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

 

공공도서관이 지역문화기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공한다. 모범답안의 주장 근거들을 찾을 수 있었던 여정이 되었다. 역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도서관이 특색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에게까지 도서관이 매력적인 곳으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목적에 충실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내가 찾은 리저널 도서관이 벽화 논란을 겪었던 당시 지역주민 대표자는 당시 "우리는 단순한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었다.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는 것은 고정관념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나로 하여금 도서관에 간다고 말했을 때 공부나 책을 읽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사회를 꿈꾸게 했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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