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영화]

Krzysztof Kieślowski, (1988), < Kroki Film O Milosci >
글 입력 2024.08.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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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쉬운 제목에 비해 발음하기도 어려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제목의 '짧은'이라는 단어가 특히 끌렸다. 도파민 중독이라거나 요새 유독 떨어진 집중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 맞다) 거대하고 수많은 사랑 중 어떤 사랑을 콕 집어 이야기하고 있을지- 러프하게 내놓은 제목에 어울리는 필름일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그렇게 87분 동안 아이패드에 얼굴을 처박고 있으니.... <불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과 <헤어질 결심>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살 토메크에게는 우체국 업무보다 오후 8시 반에 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연상의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 본인의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지만, 토메크는 볼 수 있다. 책상에 놓인 망원경은 온전히 마그다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동그란 원형의 렌즈를 통해 비추어지는 마그다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아름답다. 지쳐 보이는 그녀는 샤워 가운을 입고 우유를 먹으며 벽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 수정하고, 그린다.

 

남자들과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던 토메크는. 치기 어린 마음에 가스가 새고 있다는 허위 신고를 넣어 분위기를 중단시키기도 하고, 문득 전화를 걸고서는 아무 말 없이 끊는다거나- 우체국에서도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거짓 우편을 넣어두기도 한다. 책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며 마음 깊숙이 위로를 건네는 토메크를 보다 보면. 단순한 관음증 환자로 치부할 순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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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고 싶어? 

아뇨

나랑 자고 싶어?

아뇨

그럼 데이트하고 싶니?

아뇨

그럼 바라는게 뭐야?

없어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는 것. 망원경을 통해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본다는 것은 엄연한 범죄임에도, 토메크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시선에는 어떠한 쾌락이나 욕망이 배제되어 있다. 마그다를 단순히 성적 욕망의 해소나, 호기심 따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그다가 자신의 예술 작품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처럼. 그는 오직 그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싶어 하는 것뿐이다.

 

마그다는 이 어린 청년을 보면서 약간의 괘씸함 그리고 오기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사랑 따위를 운운하는 어린 양을 보며... 뭘 모른다-고 생각 했겠다. 그렇게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던 토메크를 집으로 데려와 애무 행위를 한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저 사랑이라는 탈을 쓴 성적 쾌락만이 존재할 뿐이라며 기만하는 것이다.

 

크게 충격받은 토메크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욕조에서 손목을 긋는다. 손목을 그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다. 마그다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인 그저 사회에 찌들어버린 전형적인 어른일 뿐이었겠지만. 토메크에게는 그 사랑. 마그다가 짓밟은, 그리고 우리조차 도저히 알 도리가 없는 그만의 사랑이 목숨과도 같이 중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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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든 토메크의 옆에 앉아. 그가 그랬던 것처럼 망원경을 통해 건너편 집을 바라보던 마그다는. 엎드려 슬피 우는 본인을. 그리고 그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토메크를 발견한다. 19살 젊은 날의 착각이라 무시했던 사랑을 직접 포착한 마그다의 눈동자에는 수많은 감정이 일렁인다.

 

사랑의 본질은 응시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바라봐 주는 것. 어쩌면 응시의 본질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비약을 섞어 생각해 보자면. 바라보는 순간 사랑하게 되지 않는가. 시선과 시선이 맞닿아 바라보는 세계가 겹쳐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보는 것을 나도 보고 싶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반대말을 찾아가다 보면 혐오가 아닌 무관심 더 나아가 무인식에 다다르는 것 또한 그런 이유겠다.

 

마그다를 바라보던 토메크.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는 마그다. 그 속에서 발견한 사랑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고 만연하지만 귀히 숨겨있는 듯하다.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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