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 한국단편부문

글 입력 2024.08.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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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제로 홍대의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한국 단편 부문 4를 관람하였다. 총 4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이어진 토크쇼를 통해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영화가 남긴 여운과 나의 구름 같은 감상에 작가의 명확한 신념과 또렷한 목소리의 색을 칠할 수 있었다.

 

 

 

“첨예한 주제의식”과 “실험적인 형식” (부록 책자 중)


 

내 이야기가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사람도 공감 받게 하려는 창작의 과정은 어렵다. 동시에 실험적인 것이 보편적인 사랑을 받긴 어렵다. 대안영상예술제를 통해 만난 한국 단편 작품들은 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자신만의 경험에서 비롯된 감수성을 통해 풀어내면서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하기란 쉽지 않음에도 대안영상예술제는 시대에 필요한 감성이 어떻게 발현되어야 할지 현명하게 대답해 준다.


대안의 의미가 무엇일까? 형식의 독창성에서만 대안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면을 들춰 지적해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준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함께 살기 위한 고민에서 대안 영상예술이 시작되고 관객에게 닿았다. 기존의 것들로는 소외된 이야기를 조명하기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감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영화의 문법이 필요함을 배울 수 있었다.

 

 

 

1. 이은조 감독의 ‘폐허의 자장가’


 

돌을 살리고자 하는 아이의 여정에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할 수 있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돌 인듯 사람인 듯한 대상이 탄생과 죽음에 대해 속삭인다. 돌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한다. 이는 행위자로서의 인간 모습을 돌로 표현한 것이라는 감독의 설명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 사회가 마주한 비극의 원인은 생명인 것과 아닌 것의 구분에 있다고 감독은 전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과 가치 판단에서 자장가는 시작된다.


이를 어떻게 대상화하여 감독은 보여주고 있을까? 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애도 즉, 죽음에서 비롯되는 감정이야말로 생명에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무언가에 인간성의 특징을 부여하며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든다.


돌을 애니매이팅 하기는 쉽다. 하지만 돌의 관계를 다룬 것이 아니다. 돌이 죽었다는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사회에 반응하는지를 반사해 보여주는 데에 메시지가 있다. 어떻게 아이에게 표현하는지.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전한다. 다양한 요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의 비생명성, 약자이자 권력관계 부각하기 위한 크기의 상하관계나 규모의 압도감 드러난다. 가면을 벗으면 아이의 모습과 괴물의 모습이 같다. 자기로부터 떠나고 죽는 여행이 삶이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장 존엄하게 대우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기존에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울타리 쳐진 감정의 영역에 대해 반추하게 한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것인데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한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엇을 기록하게 되든 인간 사고의 때가 묻어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함께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작가의 말이 현명한 답이 되어준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환대받지 못하는 것을 노력하는 것이 예술계가 하려는 노력이다.” (감독의 말)

 

 

 

2. 권동현, 권세정 감독의 ‘러브데스 도그’


 

내선일체를 정당화하려는 속내로 촬영된 신체검사와 개의 사진이 구체적인 증거의 언어가 되어 내러티브를 설계한다. 사진이 영상으로 재구성되어 시대의 비극성과 아픔이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 탄생의 시작점은 나와 함께한 개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개가 찍힌 가장 오래된 사진을 찾았던 작가의 여정이 제작의 영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록으로 남겨진 사진들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한 발자취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동물과 세계에서 맺고 있는 관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무심결에 놓치고 있는 다양한 맥락과 관계를 되짚으며 시작한다.


마지막엔 현대적인 이미지를 넣어 과거 사진과의 대조를 보여준다. 어떻게 대상을 촬영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실험적인 고민이 담겨있다. 촬영 방법에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었다. 사진은 윤곽을 확인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숨 쉬는 것처럼 표현하고자 함이라 감독은 전한다. 


감독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된 동물과 재현된 인물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이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순간의 숭고함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숨이 부여된 순간부터 권리는 주어진다. ‘러브데스 도그’ 는 그 권리의 무게로 짓밟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또 다른 기억과 기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3. 정다희 감독의 ‘옷장 속 사람들’


 

나는 나일 뿐인데 나를 설명해야만 나의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다르면 어떡할까로 고민이 된 적이 있는가? 나와 세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지는 전적으로 남에게 달린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의 애니메이션 ‘옷장 속 사람들’은 무엇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제안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가 입는 옷이 우리를 설명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가져본 욕심, 겉치레와 허례허식을 인간이 된 옷으로 귀엽게 표현한 작품이다. 감독은 그러한 외적인 치장이 사람의 욕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재밌게’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전했다.


옷을 소유한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 취향과 선택을 반영한다. 자신에게 어울리고 맞는 옷을 입어야 옷이 날개가 되듯, 외적으로 무엇을 걸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옷장 속 사람들’은 옷 안에 몸이 없다는 설정으로 껍데기만 남은 인간을 표현했다. 그래서 옷들의 세상에서는 발소리가 없다. 


삶은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쫓으려는 순간의 연속인가? 어디까지가 순수한 열망 즉 꿈이 되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허영 즉 욕심인지 경계선이 모호한 거 같다. 이때 소유라는 인간의 욕망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려준다. 인간의 욕망을  장갑, 모자, 신발, 단계별로 상징하여 표현했다는 감독의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작품의 메시지는 ‘마음의 눈’을 말하는 햄릿부터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는 어린 왕자 같은 고전 작품들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영상의 언어는 옛사람들도 고민했던 메시지를 현대 사회도 공감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대에 맞게 실험적이고 더욱 피부에 와 닿는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찾아보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 내가 소유한 물건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야말로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반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은 진정한 정체성의 발현을 가로막는다.

 

 

 

4. 안두이 감독의 ‘칠롱의 밤’


 

소개글에서 감독은 우리가 이미 못됐다고 표현한다. 함께라는 가치를 외치면서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칠롱의 밤’은 이것 또한 폭력임을 알게 해주는 프레임을 선물한다. 관객에게 전달된 프레임이라는 선물은 타자와 주변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야기와 카메라라는 것은 만든 사람의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촬영은 이미 렌즈에 입각해 이루어지기에 감독은 완결성의 의미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주변부 이야기와 소외된 존재들을 다룰 때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대안적인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프레임의 한계를 역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누구나 촬영된 무언가를 볼 때는 프레임을 통해 보고 있기에 이러한 매체의 한계를 인식할 때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어서란 설명이다.


난민에게 보내는 편지와 곰에게 보내는 표면적인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편지는 수단이며 칠롱과 아이샤는 난민과 위기에 처한 곰이다. 곰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편지 내러티브로 픽션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사회에서 주변부로 여겨지는 것들을 포용의 관점이 아닌 동등한 선상에 올려놓고 설명하려는 시도로 느껴졌다. 변방의 현실과 단일민족 환상을 영상이 도구가 되어 보여준다.


중첩된 이야기를 만든 프레임은 우리의 무심한 내면을 발견하게 한다. 곰이 겪는 이야기처럼 외면받는 이들이 사회에 발 디딜 틈이 없음을 공감하게 한다. 이 현상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할 윤리적인 책임이 무엇인지 고민의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존재 자체로 사회 구성원임을 외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독은 우리가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임을 주장하는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언제나 말은 쉽고 행동하는 것은 어렵듯이 이 작품은 우리가 함께를 외치고만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한다. 나와 다른 타자를 우리가 얼마나 환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상문학이다.


[한줄평이 되지 못한 두세줄평] 타자들에 대한 태도와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 한국 단편선들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대안영상의 특징과 닮아 있다. 일반적인 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다양한 영화의 언어와 문법을 느낄 수 있었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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