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기’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 함희원 씨어터, '아기' [공연]

8월 10일, 함희원 씨어터 <아기>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공연
글 입력 2024.08.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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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기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안무가 함희원은 경제적, 사회적 상황 등의 이유로 부모가 아기 양육을 포기하는 ‘베이비박스’를 주제로 <아기>를 서강대 메리홀에서 선보였다. 본 공연은 서사성을 가진 무용 공연으로서 가상의 인물을 맡은 무용수들이 각자의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 ‘아기’를 마주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전개한다. 또한 작품을 유쾌하면서도 영화적 분위기로 풀어내며, 관객의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한다.

 

안무가 함희원은 자신만의 움직임 메소드와 연출 기법을 구체화하여 이미지를 입체화시키는 작업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안무가이다. 필자는 이번 <아기> 공연을 그의 안무작으로 처음 감상함에도 불구하고 타 안무가들과는 비교되는 독창적인 안무법으로, 영화적인 분위기를 순수무용에 녹여내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작업을 볼 수 있었다.

 

작품 <아기>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인 ‘베이비박스(babybox)’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회에서 영유아 양육을 포기하는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 문제에 대해 여러 대립하는 의견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연간 약 150명의 아이가 베이비박스에 담겨 신고된다고 한다. 이번 작품 또한 아기와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작품 속에서 무용수들은 개개인의 역할을 맡고 가상의 인물이 되어 스토리 전개를 펼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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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암전 후, 공연은 검은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한 남성이 아이 포대기를 안고 도망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2층 객석에서 등장한 남성은 객석을 내려와 막이 올라온 무대 위로 도망치고, 무대 위에는 아기를 눕혀서 놀아주는 모빌 장난감들이 매달려있다. 천장에 달린 무대 모빌로 가득 채워진 무대, 그리고 중앙에 놓여있는 의문의 박스는 ‘베이비박스’로 보인다.


맨 처음 등장한 의문의 남성을 제외한 7명의 무용수는 갑작스럽게 마주한 아기를 보고 드는 감정들을 묘사한다. 처음 아기를 마주하고 들었던 호기심과 신비로움 등의 많은 감정부터, 후에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이러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아기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부모의 모습처럼 보인다. 지금의 아기를 바라보는 개개인의 또 다른 시선들은 결국 누군가 돌아오게 될 책임감이 되고, 이후 이 책임감은 부담감이 되어 결국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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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북에 제시된 등장인물들의 간단한 정보를 보면, 아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 남을 웃게 해주는 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 육아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등으로 구성된다. 무용수들의 동작 구성 또한 아기가 젖병을 빨아먹는 듯한 움직임,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움직임,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다 대는 움직임 등 아기가 느끼는 감정과 아기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동시에 내포한다. 더불어 아기의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 친근하면서도, 누군가에겐 두려운 소리일 수 있다. 작은 생명체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며, 아기를 대하는 태도 또한 양면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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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중간마다 아기를 중심으로, 중앙에 놓여있는 베이비박스를 중심으로 급진적으로 휘몰아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육아에 휘말린 하루를 표현하며, 아기의 웃음소리에 좋았다가도 울음소리에 다시금 머리가 아파지는 연출과 연기가 돋보인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역동적이면서 섬세한 모습으로 작품 감상에 집중도를 높여주었다. 또한 음악과 더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의 모습, 그리고 아기가 담겨있는 베이비박스가 움직이는 장면들은 알게 모르게 보는 내내 긴장감을 유발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적인 연출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무가가 이번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장면이 지속될수록, 아기에게 이젠 관심조차 안주는 사람, 베이비박스에 넣은 아기를 회상하는 사람, 부모가 되어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 등 명확하게 나뉜다. 실제로 어린 여자아이가 무대에 등장해 무용수의 상상 속 아기와 함께 노는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아기를 가진 부모에게 아기를 빼앗기고, 또다시 돌려봤는 장면을 묘사한다. 결국 누구 하나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놓인 어린 생명체는 한 명의 삶을, 모두의 삶을, 서로의 관계를 바꿔놓으며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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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아기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가? 그 상황을 우리는 그저 외면해야만 하는 걸까? 아기의 감정은 존중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야 하는가? 살면서 누구에게나 겪을 여러 시련들 중, 차마 확정 지을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이번 <아기> 작품을 통해 함희원 안무가는 다소 무거운 주제 속 인간의 양면성을 내포하였으며, 사회 배경에 대한 깊은 인식과 연출력으로 위트 있게 풀어내었다. 진정으로 아기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단면적인 아기의 이야기를 추상명사로 바꿔내며 무용이라는 해답으로 그의 수많은 생각들과 인간 사회의 군상을 엮어 풀어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함희원 씨어터의 색을 확실히 보여준 무대라고 생각이 들며, 다음 작품 또한 기대되는 바이다.

 

 

참조 : "영유아 두고 가는 베이비박스, 합법도 불법도 아냐" - 머니투데이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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