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열된 자아, 또다른 나를 찾는 평생의 여정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제24회 NeMaf – 떠도는 기억, 그 너머의 흔적, 한국입양 70년
글 입력 2024.08.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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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네마프2024.png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 먼저 행사 이름에 들어간 각각의 단어를 쪼개 보려 한다.

 

‘서울’ –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뜻이다. ‘국제’ – 국제적인 행사라는 뜻이다. ‘예술’ – 예술의 정의가 무엇이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것에 관한 행사라는 뜻이다. ‘페스티벌’ –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통 주제의 무언가를 누리는 시공간적 경험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대안 영상’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만 남는다.

 

‘대안 영상’이라는 말은 참 모호하다. 나에게 ‘대안’이라는 단어는 다소 어떤 좋지 않은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무언가는 부정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내 직관적인 해석에 따르면 대안 영상이라는 단어는 기존에 우리가 영상이라고 여겼던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의 움직임(영상)이 고정적이고, 그래서 제한되어 있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안 영상은 수많은 것을 포괄한다. 어떨 땐 이게 영화가 맞는지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스토리와 주제를 알 수 없는 시각 자료들이 많다. 그러므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은 모든 장르와 형식을 포괄하는, 모든 영상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광범위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네마프에서는 매년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영상들을 수집해 상영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올해의 주제는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이다. 작년에는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었다. 상당히 첨예한 주제다. 그래서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상들은 독특하고, 예리하다. 이런 심오한 주제 탓에 다른 영화제와는 다르게 학구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영화제다.

 

 


떠도는 기억, 그 너머의 흔적, 한국입양 70년


 

제24회 네마프의 여러 섹션 중 하나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의 해외 입양을 다룬다.

 

한국의 입양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꼽자면 기록에 따른 한국의 첫 공식 해외입양은 1954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한국 입양의 시작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국가와 사회의 주도로 시작되어, 제도적이고 사업적인 형태로 진행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아동의 입양이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곳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하나의 ‘사업’으로 보일 정도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일국일민(一國一民)주의’라는 정치적 신념으로 새로운 정책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양제도는 전쟁과 그로 인한 극심한 빈곤의 영향도 컸지만,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경직되고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해외 입양은 2024년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그것은 처음으로 공식 입양을 가 낯선 땅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1세대 입양인들’ 중 몇은 이미 한 인간으로의 생을 마감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24회 네마프에서는 이런 한국의 제도적 입양으로 인해 고국을 벗어나 살게 된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본 리뷰에서는 디앤 볼쉐이 림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그는 전쟁, 기억, 가족을 주요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영상 감독이다. 첫 다큐멘터리 작품인 <일인칭 복수>로, 텔레비전 작품과 관련해 우수한 업적을 기념하는 미국의 에미상을 수상한 유능한 창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입양인이다. 자신의 입양인 정체성을 탐구하며, 한국의 해외 입양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현재까지 세 편 제작했다. 그중 첫 번째 작품, <일인칭 복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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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자아의 조각 찾기


 

First person plural. 내가 한 명인데 여러 자아가 존재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병증으로 여긴다. 그만큼 어색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물리적 형태와 내면의 인성이 일치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온전한 상황으로 여긴다.

 

<일인칭 복수>는 미국 한인 입양인이 친가족을 찾으며 자아가 분열되는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디앤 볼쉐이 림은 66년도에 미국에 입양되었다. 캘리포니아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 속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살아오던 그는, 반복해서 꾸는 꿈을 곱씹으며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입양되기 직전, 사실은 자신은 ‘차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아이를 대체하여 입양된 것임을 기억해 낸다. 그는 자기 존재의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가 기억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문득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참 모호한 일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입양되기 전 기록을 통해 과거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계속해서 좌절의 위기에 처한다.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 장벽은 많기 때문이다. 입양 기록의 부정확성, 한국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양부모와의 갈등.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은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는 타인의 존재이자, 자신은 결국 혼자라는 데서 느껴지는 고독이다. 입양 기관에서는 기록을 찾으러 온 그에게 ‘잊고 사는 게 지혜로운 것’이라 말한다. 결국 만나게 된 한국의 가족은 - 수많은 입양인이 한국 가족의 거부로 친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고로 디앤 볼쉐이의 케이스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라 할 수 있다 – 디앤을 환영하면서도, 그에게 ‘너를 위한 일이었다’, ‘촬영한 것은 한국에서 공개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변명과 속마음을 내비친다.

 

그러나 이 모든 말보다 그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을 입양한 가족과의 갈등이다. 디앤은 ‘차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아이가 보육원에서 사라지자 그 아이를 대체해 입양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양부모의 사랑이 과연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 이전에 존재했던 차정희를 위한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네가 차정희가 아니어도 너를 사랑한다, 네가 누구든 사랑했을 것이다’라는 가족의 말은 당연히 디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전하는 의도로 발화되었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보통 한국에서 그리는 한인 입양인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입양인 자녀가 직접 친가족과의 재회를 기록한다. 여기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만난 순간의 애틋함과 감동도 있지만, 입양인이 바라본 낯선 고국의 모습, 그리고 특히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양부모와, 자신의 자아를 재구성하려는 성인 자녀의 미묘한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초반에는 감독의 유년 시절을 담아낸 영상 자료가 방대하게 등장한다. 심지어는 입양으로 미국에 도착한 당일의 모습까지도 담은 이 영상은 모두 디앤의 아버지가 기록해 온 것이다. 이 영상들은 전형적인 미국 백인 중산층 가정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아버지 사후 발견한 테이프를 정리하던 중 깨달은 것은, 이 영상들이 아버지가 그간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였음을 말한다. 이어 그는 첫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시도였다고 밝혔다. <일인칭 복수>는 그러므로 한인 입양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시도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 최초의 기억


 

이번 제24회 네마프에 상영된 한국입양 관련 영상이 제작된 시기는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다양하고, 2010년대 이전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까지, 대안 영상보다는 기존의 영상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작품들이 많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들은 왜 네마프에서 상영하게 되었을까? 이번 네마프의 주제는 AI와 같은 도구의 발달로 인한 인간 사유체계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입양인의 ‘기억’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총체로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년시절에 관한 기억을 얼마나 복기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입양인의 삶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디앤 볼쉐이 림이 삼십 대에 접어들고 나서 ‘문득’, ‘꿈을 꿔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 이야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기억과 삶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형적 문법에 따른 영상물이어도, 그리고 이미 그들의 삶에서 결말이 정해진 사건을 다룬 영상이어도, 현재의 삶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입양인의 자아(또는 자신의 입양 이전의 삶)를 찾는 데 현재보다 과거의 기록이 훨씬 더 유효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입양인들은 쉽게 찾기 어려운 과거의 기록을 헤집고, 그것을 다시 조립해 자신의 모습을 구성한다.

 

이렇듯 과거의 영상마저도 현재 인간의 사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입양 70주년 기념 섹션은 어쩌면 네마프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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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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