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과 현실의 경계 - 연극 너츠

글 입력 2024.08.1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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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좋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완벽하게 기억하기 어렵고, 좋지 않은 일 역시 기억 속에 묻혔다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렇듯 사람의 기억력은 뛰어나다고만 할 수 없다.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의 기억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사람은 흔히 ‘망각의 동물’로 불린다. 즉, 복습하지 않으면 학습한 것도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이는 정보가 단기 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고 전환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은 완전한가, 불완전한가. 불완전한 기억을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현실’을 사는 것인가.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연극 <너츠> 속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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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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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과 동시에 라디오에서 안내 방송이 송출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으레 그렇듯이 물 이외에는 섭취가 불가하고 커튼콜에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라디오는 후반부에서 마리아가 새미에게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 크게 틀어놓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신경질을 낸다든지 중요한 단서로 사용된다. 하우스 어셔가 전할 법한 안내를 라디오로 대체한 시도는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올리는 극단의 특성을 반영한 매우 극단스러운 연출이었다.


안내 방송 이후에 다시 한번 라디오가 작동한다. 살인 사건, 범인.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고 있다는 속보로 극은 시작된다. FBI 요원 새미(임동진)와 레온(김기주)이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새미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할 레온이 새미와 동행하고, 신문에 실린 여성의 몸매를 보면서 감탄하며 스릴러보다 흡사 코미디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곧 극이 진행되면서 놀랄 일들이 많을 관객들을 위한 배려임을 인지하게 된다.


새미는 경찰서로 무전을 보내 용의자들을 현장으로 보낼 것을 요청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용의자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전기 기사 토드(김대한), 분장사 잭(강은일), 성직자 다이머(진휘서). 이 세 용의자는 알리바이를 대기보다 도리어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벗어나기 위한 알리바이가 아닌 범인임을 주장하려고 증명한다. 이에 새미와 레온은 그들의 당일 행적을 조사한다.


*

 

토드는 크리스마스가 두렵기만 하다. 파티를 즐기기는커녕 가족들에게 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일이 생겨서 다행히 집을 비울 수 있었던 토드. 그런 토드는 전선을 구하고 있던 오르테가를 만나게 된다. 오르테가는 사용하던 우산을 보답으로 준다. ‘선물’이었다. 하지만 버림받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진 토드는 자신에게 ‘버렸다’며 오르테가를 살해하고, 이를 자살로 위장한다.

 

잭은 캐런에게 무료로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잭에게 마음이 열린 캐런은 잭과 이야기를 나눈다. 캐런은 집 앞에 면도칼이 놓여있는 등 이상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말은 잭과 캐런은 어릴 적에 이미 인연이 있었다. 잭은 형에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비밀을 털어놓았고, 형과 형의 친구들은 잭의 몸에 예쁜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때는 어렸었다”라고 캐런이 말하자 잭은 “그러면 자신은 얼마나 어렸겠냐”라며 반박한다. 이후 잭은 캐런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칼로 그녀의 목을 그어 죽인다.

 

다이머는 자신을 천국의 문지기라고 칭한다. 골든키로 최면을 건다는 것. 새미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점차 양파를 사과로 여기고 신호에 맞추어 춤을 추며 변해간다. 다이머는 신도들에게 그러했듯이 새미에게도 최면을 걸은 상태에서 기차역으로 인도하고, 기차가 도달했을 즈음에는 골든키로 ‘천국의 문’을 열어준다. 조명에 변화가 생기면서 세 용의자의 자백 또한 끝이 난다.

 

 

 

경계 저 너머


 

파트너 레온이 사실은 새미의 형 ‘레온 오르테가’였음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전부 새미가 만든 기억 속 세상에 불과했으며, 세 용의자는 새미가 겪은 일들로부터 파생된 캐릭터였다. ‘새미 오르테가’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이를 자살로 위장하였고, 형 레온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캐런을 찾아 약혼자가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상처를 입힌 뒤에 살해했고,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 선로로 뛰어들게 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새미는 자신을 사랑한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며 자살을 택한다.


너츠(Nuts)는 미치거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자는 새미가 불쌍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고, 비밀이 폭로된 것도 모자라 몸에 흉터가 남았고, 억압되었던 과거를 가진 새미가 불쌍했다. 그런 과거를 가진 새미는 연쇄 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주신 ‘사랑’을 외면하지 않았다. 올바르게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면, 연쇄 살인범 또한 되지 않았을 테다. 그러므로 ‘기억’은 ‘선택’에 의한 부산물이라고 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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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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