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14년만에, D 선생님께

당신같은 어른이 될게요.
글 입력 2024.08.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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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아, 안부를 묻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14년 전 선생님의 제자였던 H입니다. 전학 왔던 아이라고 하면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어요. 휴직 전 마지막 제자이기도 했고요. 

 

오랫동안 이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요. 미루고 미루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


다시 여쭐게요.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성인이 된 지도 몇 년이 지났고 대학교도 졸업했어요.


사실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내내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었어요.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걷지만, 그런 일들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문득 선생님과의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가 있어요. 순수한 질문들을 들을 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만났을 때도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요.

 

첫 만남을 기억해요. 새로운 학교에 어리둥절해도 환히 웃는 선생님을 보며 안도했던 순간이요. 그때를 떠올리면 그 웃음과 따뜻한 품이 먼저 떠올라요. 함께한 시간은 3달 남짓인데 왜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까요.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저 혼자는 아니었어요. 모두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셨죠.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던 거예요? 언제나 웃으면서, 모두에게 다정했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스러워요. 기억을 곱씹을 때마다 선생님이 더 그립고 궁금해요. 어떻게 지내실지. 건강하신지. 사소한 것들이요.


몇 년 전에 한 영화를 봤어요.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인데 저는 거기 나오는 선생님이 좋았어요. 조용히 말을 들어주고 곁에 있어 주는 모습들이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모든 것들이라 자꾸 기억에 남았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선생님이 제 인생을 어떻게 보듬어주고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수십번도 더 본 영화인데 저는 볼 때마다 선생님의 다정함이 생각나서 자주 울게 돼요.

 

그래서 이 편지를, 보낼 곳 없는 이 편지를 써야 했어요.


그 해를 추억하면 너무 사소하고 중요한 것들이 가득해요. 이를테면 선생님의 칭찬 같은 것들이요. 일부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를 칭찬해 주셨죠. 서로만 아는 응원들이 모여 등하굣길 5분이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대화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참 순수했던 순간이었네요.


선생님과의 마지막 날이 기억나요. 칭찬 스티커를 모으면 선물 뽑기를 했는데 그날은 플래너를 받았어요. 그 노트를 건네며 꽉 안아주시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해요. 포옹 이후에 정말로 못 보게 될 줄 알았다면 감사하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을 거예요.


그때 못한 감사하단 말을 이제야 드려요. 

외로웠던 시간의 저를 보듬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지만,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건 선생님께서 어린 저를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예요. 덕분에 어른이 됐어요. 지난 14년 동안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는 게 제 인생의 지표 같은 것이었어요. 앞으로도 그 마음은 여전할 거예요. 좋은 어른으로,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갈게요.


살다 보니 슬픈 일은 잊히고 결국 남는 건 받은 존중과 사랑이라는 걸 배웠어요. 선생님의 존중과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고 믿어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제게는 가장 큰 힘이었고 여전히 마음 한편을 데워주는 연료에요.


이 편지가 선생님께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서 우연히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앞으로도 살아갈게요.


늘 행복하세요.


H 드림

 

 

 

노현정.jpg


 

[노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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