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과 죽음 사이에서 본질을 논하다 -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영화]

삶과 죽음, 선과 악, 신과 인간. 끊임없는 대화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다.
글 입력 2024.08.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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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두 석학의 의미있는 대화,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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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동명의 연극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39년 9월의 어느 날 저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에 C.S. 루이스라는 한 젊은 교수가 찾아온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두 석학이 하루동안 나눈 대화는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그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관람 후 여러가지 대화의 장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평소 다양한, 특히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잊고 지낸 주제에 대해 사유하고 나눌 수 있게 된다. 영화에 등장한 유신론적 관점과 무신론적 관점, 삶과 죽음, 불행 앞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고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여기서 입장을 고심한다는 것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가 회심을 하고, 무신론자였던 프로이트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종교적 오브제들을 서재에 잔뜩 들여놓은 것처럼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그저 현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고찰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할 듯 싶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꼽히는 세계 2차대전 당시였던만큼, 그들의 대화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삶과 죽음이다. 그들의 대화 사이마다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 영문도 모른채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연히, 프로이트와 루이스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죽음 앞에 우린 모두 겁쟁이”라는 프로이트의 대사나, 오경보로 인해 참전 당시 얻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발현되는 루이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연약성을 확인한다. 이렇듯 인류사를 두 석학의 대화 및 개인적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조명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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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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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국의 목회자이자 작가였던 존 번연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어지는 히틀러의 연설로, 시대적 배경이 무척 혼란스러웠던 제2차 세계대전임을 알 수 있다. 혼돈의 세상 속에서 삶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두 사람. 루이스가 전쟁통에서 위험을 감수하고서, 열차를 타고 프로이트의 집에 찾아가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두 인물 모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양극단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입장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할까 싶던 걱정도 잠시 둘은 스크린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프로이트의 서재로 데려간다. 물론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화는 당연히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그것도 세계관이 다른 두 석학의 대화이니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서로 주장을 펼치기에 바쁜 것이 아닌, 각자의 삶을 들여다 보고 설명하는, 무척 건설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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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루이스와 프로이트만 보여주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자녀이자 그의 훌륭한 제자인 안나 프로이트의 삶 또한 보여준다. 영화화를 하며 안나를 비중있게 다룬 것은 어쩌면 두 남성의 서사만을 다루었던 원작에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더해 밸런스를 더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안나를 통해 박사 자신도 자신이 구축한 이론과는 달리 잘못된 부성애를 휘두른다. 이는 늘 정답인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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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학자 프로이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관람할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정신분석학의 권위자인 그의 서재에 과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종교적 물건들이 늘어져 있다거나, 일반적인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와 딸 안나의 꿈을 들여다 보았을 때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딸에게 이상하리만큼 집착하고 통제하는 모습이 자신이 만든 이론에서 병리적이라고 제시했던 반응과 닮아있다는 점 등등 그도 훌륭한 학자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키신다. 이는 꽤 재밌게 다가오며,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존재는 모두 모순적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서사는 다른 듯 닮아있다. 이것이 두 인물을 극에 함께 등장시킨 이유가 아닐까. 신념이나 나이차를 뛰어 넘은, 서로를 강하게 묶는 닮은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슬픔(부정적 경험)이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 또는 형과 얽힌 유년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인물들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발전하거나 동기 유발 원인이 된다. “유년시절과 슬픔이 어디 우릴 떠나던가요?”하고 자조적인 어투로 묻던 프로이트의 대사가 생각난다. 두 인물의 공통분모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존재를 강하게 믿는 사람과 이성만을 믿는 사람이라는 대립적 구도 또한 둘의 닮은 점을 상기시키는 장치다. 모태신앙에서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한 성공회 신자인 루이스. 그에 반해 루이스의 대사처럼, 신의 부재를 강하게 믿는 프로이트.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처럼, 그는 어쩌면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식과 손자의 죽음, 전쟁으로 인한 민족 탄압, 건강 문제 등 연이은 악재로 괴로운 삶을 보낸 말년에 배신감이 들어 신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부정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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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영화 자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관람한 적은 없지만 연극의 경우에는 두 사람의 논쟁에 무게를 더 두고 있어, 관객의 입장에서 훨씬 심도 있고 몰입감이 좋다고 한다. 영화는 대화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 등 등장인물 개인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친절하고 직관적이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의 방향이 이리저리 튀어 집중이 어려웠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열정적인 토론, 삶의 의미 고찰 등 대화 소재 자체의 흥미도는 있었으나,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이 각본이 연극으로 제작되었는지 역체감하는 순간이었다. 2인으로 구성된, 어둡고 작은 무대였다면 언쟁의 매력이 살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봐야 할 이유는 있다. 출연진들의 보장된 연기력과 잔잔하면서도 실감나는 연출, 잘 녹아진 인물에 대한 설명 등이 소위 “볼 맛”나게 한다. 또한 평소 프로이트의 이론에 관심 있었던 분들이라면...? 감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 : 명랑한 태도


 

해가 갈수록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줄어든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들을 차치하고, 먹고 사는 일에만 열중하거나 당장 힘든 일에 에너지를 많이 빼았기고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쓸모 없다고 보여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저 그런대로 살다보면, 언젠간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에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늘 의식적으로 삶의 본질에 대해 가닿고자 노력한다. 설령 답을 찾지 못하더라고 괜찮다. 밀도있는 삶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그 작은 노력이 훗날 더 멋진 삶을 만들어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퇴보하는 삶만큼 못난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오류를 오가며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中

 

 

위의 대사는 마지막 대화 이후 루이스가 떠나기 전, 프로이트가 위트 있게 건넨 그의 저서 속지에 적어준 문장이다. 유독 기억에 남는다. 여러 번 오류를 겪고 나서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이 꼭 우리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담아 놓은 듯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성숙 하기 때문에 성장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대사처럼, 미성숙한 우리는 어쩌면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해야만 성장하는 존재들인가 보다. 그러다 종종 찾아오는 작은 성공들에 기뻐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들이 아닐까. 그리하여 사실 실패한 인생이라 불러도 틀릴 것 없지만, 끝내 행복하거나 의미있는 삶을 산 사람으로 포장 가능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최화정의 말이 화제가 되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께서 그녀에게 해주신 문장이었다. “사람이 허리를 쫙 펴고 입꼬리를 쫙 올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대!” 그런 행동을 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로부터 신뢰도 얻을 수 있기에 명랑하고 당당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주변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마법의 주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은 자세와 환한 미소 그리고 똘망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치 별 거 아닌 일로 여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해결에 도달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참으로 멋진 태도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배운 것을 실천하고 또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에서 필자는 일말의 희망을 얻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추구미’는 추구하는 이미지, 즉 본인이 원하는 모습이나 가치관을 의미한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필자는 앞으로 가져야 할 추구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격변의 시대에서 추구미는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앞서 이야기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이기고 지는 것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 생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일생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대화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유의미한 삶인지 생각할 틈을 준다. 유한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삶을 명랑하게 대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별 거 아닌 일상을 보다 밝고 맑게 만들어 주는 건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뿐이므로.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명랑함 뿐이다. 세상을 그저 긍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대한으로 밝고 맑게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나서는 것. 적어도 명랑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으며 아파하는 일도, 불가항력 앞에 주저 앉는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몰상식한 순간을 만났을 때 스트레스 받는 일도 적어질 것이다. 명랑함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정답 없는 것들로 둘러싸인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또한 개인적으로 대소사에 초연해질 수 있는 능력에 밑바탕이 되는 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앞서 말한 문장으로부터 명랑함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영화의 메시지와 연관지어 내린 필자만의 결론이다.

 

앞으로의 남은 삶은 보다 명랑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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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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