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콘크리트 속 사람 냄새 [공간]

예술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 런던 바비칸 센터
글 입력 2024.08.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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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물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런던에 있는 바비칸 센터가 떠오른다.

 

순전히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했다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안은 채 돌아간 기억이 남아있다. 1년 후, 다시 바비칸 센터에 방문해 여전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상했다. 건물 하나를 보려고 런던을 가다니.

 

대체 어떤 점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 이유와 함께 바비칸 센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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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칸과의 첫 만남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보가 없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바비칸 센터를 향하면서 이런 빌딩 숲속에 무엇이 있을까, 기대 없이 입장했다.

 

처음에는 카펫이 깔린 극장 홀이 나타났다. 영화관, 공연장, 도서관이 층층이 있는 공간을 지나 외부로 나가면 야외 정원이 나온다. 바비칸 센터의 여러 건물이 이 정원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중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 건물들에 숨은 반전 요소다.

 

공간을 마주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인공 연못이 높은 건물들과 대비되어 공간이 더욱 커보여 압도됐다. 모던한 홀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환한 야외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개방감과 신선함. 처음 경험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조금씩 피어난 식물들과 아파트의 테라스들, 사람들의 대화 소리들이 이 공간의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코가 시릴 정도의 바람에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오래된 건물의 생명력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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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서 바라본 인공연못.

 


 

브루탈리즘


 

바비칸 센터의 매력에 빠진 이후 건물의 배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바비칸 센터는 브루탈리즘에 기반으로 한 건물이다.

 

간략하게 브루탈리즘을 설명하자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융성한 건축 기조이다. 실용주의를 중심으로 콘크리트나 철근, 벽돌 등 기본 구조체에 장식을 더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다.

 

바비칸 센터는 1971년부터 1982년까지 11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많은 브루탈리즘 건물이 그렇듯, 이곳 또한 흉물스럽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런던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로 뽑힌 적도 있을 정도다. 물론 현재는 가치를 인정받아 바비칸 센터는 2급 보존 건물로 지정되었다.

 

많은 이들이 외면하던 이 건물은 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바비칸 센터의 매력을 자세히 소개하려면 복합문화센터라는 특징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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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의 질감이 햇빛과 섞여 상반된 느낌을 준다.

 


 

기본에 충실한 복합문화센터


 

바비칸 센터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합문화센터이다. 극장, 200석의 소극장과 3개의 스크린을 지닌 영화관, 도서관, 식당, 컨벤션 홀, 콘서트홀, 미술 전시관과 예술 학교 등이 있다. 또 매주 일요일에만 개방하는 실내 온실도 있어 찾아본다면 그 규모만큼 구경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내가 바비칸 센터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야외정원도 있지만 꿈꿔온 복합문화센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필하모니의 공연이 있을 때는 클래식 공연장으로, 음악 축제에는 페스티벌 장으로, 주요한 영화 상영이 있을 때는 행사장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공간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공연장에는 연극을 보러온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있었고 한쪽에는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이 공존했다. 끝나고 미술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렇게 다양한 예술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질투 날 정도로 근사했다.

 

단순히 책 몇 권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각자 용도에 충실한 공간과 이를 충실히 이용하는 프로그램이 더해져 이용자를 유치하는 것. 그것이 복합문화센터의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비칸 센터는 그 기본이 실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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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여운 것들'의 프리미어 공개 전 , 의상 전시를 하고 있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 사람


 

브루탈리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옥 같다, 무서워 보인다는 둥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그 의견들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브루탈리즘은 건축의 완성을 이야기한다. 바로 사람이다.

 

모든 공간은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다. 집은 편히 쉬기 위해, 학교는 교육하기 위해, 공연장은 공연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공간의 쓰임은 당연히 이용자들을 통해 완전해진다. 아무리 대단한 건축물도 사람 없이는 흉물이 될 수밖에 없다. 관리를 하고, 발길이 끊기지 않는 건축물은 사랑을 먹으며 풍성해진다.

 

내가 건축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맥락과 상통한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건물들, 특히 손길이 꾸준히 닿은 곳은 아무리 작은 공간일지라도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비칸 센터도 그렇다. 홀을 올라가 마주한 중앙 정원도 사진을 찍고, 이야기 나누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나는 건축의 그런 순간을 포착한다. 흑백에 색이 나타나는 순간, 어두운 밤, 불을 켜는 순간, 마지막 한 끗이 완성되는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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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거주민들과 관광객들이 교차되는 중앙 정원.

 

 

 

오래된 공간에 산다는 것


 

바비칸 센터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일이다. 건축 투어에 참석하기 위해 세찬 비바람을 뚫고 갔다. 하필 그치지 않는 비를 만나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옹기종기 비를 피해 탐방을 했다.

 

투어의 진행자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이다. 실제로 거주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자부심이나 놓치기 쉬운 공간들을 안내해 준다.

 

역사가 있는 건물이니만큼 주민으로서 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대부분 그 책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진행자는 말했다. 문 색상은 변경이 불가하고 커튼은 하얀색으로 통일하며 외부 테라스에는 언제나 화분이 있어야 하는 것들은 실제로 주민들이 지켜야 하는 지침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의 뿌듯한 표정에서 이들이 공간이 얼마나 많은 자부심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바비칸 센터의 거주 유닛은 수십 개의 각 평형과 구조가 여러 가지로 세분화 되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소개 영상, 도면을 보아도 같은 구조의 집은 찾기 어렵다. 많은 주민이 예술에 조예가 깊기에 아파트 내부를 공개하는 프로그램도 여름에 있어 추천한다고 소개했다.

 

획일화된 거친 콘크리트 속에 그런 개성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사는 곳에 자부심이 있는 삶을 살짝 엿보며 오래된 건물을 어떤 정신으로 지켜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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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문 색상과 테라스를 따라 있는 화분들.

 

 

건축 애호가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처음의 인상은 단지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바비칸 센터는 알면 알수록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건축의 매력과 예술의 풍성함, 사람이 만드는 건축의 마지막 한끗까지.

 

부디 런던 여행을 간다면 바비칸 센터를 방문해 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콘크리트 속 사람 냄새를 맡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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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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