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짝인다

글 입력 2024.08.1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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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되었건 함께하는 사람을 우선 고려하는 편이다. 사람이 좋다면 무슨 일이라도 즐거이 해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끝끝내 사람과 일 모두 껴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함께할 사람도 모른 채 지원한 오프라인 피드백 모임은 특이한 도전이었다.

 

이번 도전은 오로지 일을 우선한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목적 밖에는 없었다. 피드백 모임 참가를 고민하던 시점은 에디터로 활동한지 1달을 겨우 넘긴 때였고, 매주 글을 기고하는 부담감과 더불어 내 글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인해 여간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살면서 처음으로 글쓰기의 장벽 앞에 정면으로 무너진 순간이었다.

 

*    *    *


처음으로 글쓰기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중학생 무렵이었다. 표지가 예쁘다는 말로 추천을 받은 책을 읽었던 날을 계기로 오랫동안 소설가를 꿈꾸었다. 그 습관이 남아 요즘도 문학을 즐겨보는 습관이 있다. 한편으로 주장하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몇 차례 들었던 경험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으나, 그런 말들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칭찬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로 향하는 문이 열리리란 기대를 은연중에 품고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일환으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기로 결심하고 지원 방법을 살피던 중, 사전에 오피니언 한두 건을 기고해야 한다는 조건을 알았다. 그 순간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대체 오피니언이 뭐지?”

 

오피니언의 사전적 정의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과 의견을 적은 글’이라는 풀이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타 집필진들의 글을 읽어보며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문화예술 또는 문화 현상을 소재로 삼아, 단계적으로 찬찬히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쓰자.’ 이것을 목표로 적절한 주제를 담고 적절한 분위기를 풍기는 글을 빚으려 애를 쓰곤 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향해 목표를 세운 것이 잘못이었을까. 창작은 고통이라지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창작은 처음이었다. 매주 마감을 앞두고는 “이런 주제, 이런 구성, 이런 내용의 글을 쓰는 게 맞는 것일까?”라는, 정답 없는 질문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곤 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떠올리기가 버거웠다. 분량이 쌓일수록 같은 고민이 덧대어져 머리가 팽팽 돌았다. 내 글을 비난하거나 바로잡으려는 이 하나 없는데, 글 하나를 기고할 때마다 사방에서 펀치를 때려 맞는 기분이었다. 더는 글쓰기가 설레지 않았고, 내 글이 부끄러웠다. 내 이름을 매달고 겨우 이런 글을 내걸어야 한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그러한 마음은 나조차 정의하지 못할 모호한 형태로 뭉치기 시작했고, 이내 글쓰기가 싫다는 감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    *    *

 

첩첩산중으로 감정이 쌓이던 무렵에 오프라인 피드백 모임의 참가 신청 연락을 받았다. 마침 딱 좋은 기회였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알아낼 유일한 기회처럼 느껴졌다. 큰 고민 없이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우리 네 명의 모임은 봄을 맞아 푸르게 빛나는 수원 행궁동 근처에서 결성되었다.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30분이나 지났을까. 좋은 사람을 만날 기대는 일찍이 접어두었건만, 대화를 할수록 그것이 섣부른 오판이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인지, 혹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전에 읽은 서로의 글이 그것을 쓴 사람에 대한 청사진이라도 제공한 양, 이미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듯 낯설지 않았고 대화는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여러 주제가 교차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의 글에 대한 감상과 정중한 조언은 당연하고,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과 서로를 구성한 특징에 대해서까지도. 동시에 순간을 붙잡으려 손을 바삐 굴려서 몇몇은 공책에 적어 두었다.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글자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들의 눈동자는 얼마나 생생하게 빛나는지, 그러한 사람들이 펴낸 이야기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런 것들은 소리 없이 은은하게 반짝이곤 했다. 그 빛이 와 닿아 나의 가슴에도 열이 올랐다.


*    *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불꽃을 삼켜 심장에 품은 듯 조마조마하면서도 그 뜨거움에 질식할 것 같고 무게는 그 무엇보다 육중하여 끊임없이 내면을 짓누르지만 떨쳐내려 떼어놓으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것. 글쓰기는 이렇게나 제멋대로 내면을 뒤흔들어놓았고, 나는 그것을 끝끝내 삼키지 못했다. 결국 아가리를 벌려 뜨겁게 요동치는 그 마음을 다시 토해냈다. 소중히 지켜왔던 마음은 찌꺼기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것에서마저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모임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내면에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부러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대화의 면면에서 자연스레 느껴졌다. 자기 글에 대한 감상을 꼼꼼히 기록하는 모습에서, 글쓰기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짓는 미소에서, 글을 회상하며 머쓱한 듯 지어 보이는 귀여운 얼굴에서.

 

그들은 현재의 글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기의 글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다음번에는 지금과 다른 느낌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미 그 사람의 글은 그만의 방식대로 완결성을 지녔는데, 더 나아가 새로운 길을 펼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니. 그것이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인데, 스스로 자책하고 낙담하는 순간이 분명 있을 터인데, 기꺼이 모두 감당하겠다는 열정을 품었다니!

 

그러한 열정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될까. 못한다고 해서 누구도 지적하지 않고, 글쓰기 실력이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어떤 능력을 개발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남들보다 더 큰 심리적 고통이 따른다. 그것을 좋아함에도 잘하지 못하는 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마침내 성장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그들은 여리디여린 불꽃을 기꺼이 삼킬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조원들의 글을 읽으며 한번, 대화를 나누며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글쓰기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그 고통스러운 불씨를 기꺼이 삼켰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발휘하는 힘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그들 내면의 강인한 심지 끄트머리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그 강인함을 보았다. 그것이 마음으로는 품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소중한 만큼 쉬이 사라지는 마음을 지켜온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불꽃을 지켜주어서 고마웠다.

 

*    *    *

 

마지막 모임을 앞둔 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가. 그 여린 불꽃을 다시 삼킬까, 끝끝내 고개 돌리고 말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숭고한 행위이며,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또 어떤 순간 나에게서 그들과 닮은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니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글을 써야 한다는 내면의 명령을 느끼고 있다. 유전자에 새겨진 명령을 수행하듯, 나라는 인간으로서는 글쓰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모임의 누군가가 말해준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의 문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이러한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까지, 생각해보면 많이도 징징거렸다. 내 글이 밉다고, 가치를 모르겠다고,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조원들은 다음 글을 독려해주곤 했다. 부끄럽고도 감사한 마음이다.

 

아쉬움이 반드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도 다음번도 섣불리 이름 붙일 수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우리들을 기대한다. 각자의 다음번이 꾸려갈 아름다움을, 또 내가 피워낼 수 있는 빛을 상상한다. 오직 그것을 믿으며,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다음을 써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임의 세 분께도 기쁨으로 남길 바라며. 안녕, 고마웠어요!

 

 

 

서지원 컬쳐리스트.jpg

 

 

[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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