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끝까지 21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영화]

글 입력 2024.08.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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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1일 후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일명 ‘마틸다’라고 불리는 소행성이 3주 뒤에 지구와 충돌할 예정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맛있는 식사 즐기기 등 당장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으나,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뭘 해야 좋을지 방황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의 주인공 ‘도지’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가 지구 종말 21일 전에 선택한 첫 일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었다. 미래가 사라진 상황 속에서 도지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평소처럼 회사도 가보고, 친구가 연 파티에서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한다. 남은 시간 동안 아무 사람이나 만나며 무의미한 쾌락을 즐기는 그의 친구들과 달리, 도지는 공허한 눈빛으로 ‘내가 원하는 걸 모르겠어’라고 중얼거린다.


영화는 종말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세상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평소처럼 도지의 집을 청소하는 청소부 ‘엘사’, 경찰이 없는 틈을 타 폭동을 일으키는 무리,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앵커 등.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보낸다. 반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지는 고장 난 나침반처럼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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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페니’를 만나며 도지는 계획에 없던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어색한 이웃 사이지만, 페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도지는 자신이 어릴 적 사랑했던 사람을 찾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선다. 이들의 여정이 시작된 시점은 종말 12일 전. 당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나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도지의 모습은 아직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페니와 도지는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해나간다. 집에 가면 뭘 하고 싶냐는 도지의 질문에 페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거예요. 아빠 정원에도 가고요. 괴상한 해바라기를 키우는데 키가 305cm나 돼요. 형제들이랑 나가서 놀기도 할래요. 조카들이랑도 놀 거고요. 오랫동안 잊고 왔던 것들을 모두 할 거예요.”



페니는 도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잘못된 사람과 순간에 쓴 시간을 후회했다. 세상의 끝 앞에서 그는 자신이 줄곧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저 의미 없는 일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안 좋은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며, 남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과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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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 없이 떠난 길 끝에 이들이 찾은 삶의 의미는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영화 속에서 종말은, 행복이라고 믿었던 것들 밑에 잠겨 있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드러낸다. 세상의 끝까지 21일 남은 순간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완벽한 선택이 있을까? 소박하지만 진실한 감정으로 가득한 ‘진정한 삶’을 발견한 이들에게 종말은 세상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가능케 한 존재였다.


그동안 지구의 종말을 다룬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세상의 끝까지 21일>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주인공이 종말에 맞서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지구 멸망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영화 <2012>는 종말이 머지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돈 룩 업> 역시 지구를 파괴할 혜성 충돌을 막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지구 종말 영화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나 종말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인류 최대 위기에 맞서는 인물들과 그 과정에 더해지는 스릴감이 영화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인 것이다. 반면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종말을 피할 수 있는 조그만 가능성도 내비치지 않는다. 영화 속 그 누구도 멸망을 피해 도망치거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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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삶의 의미나 방향이라고는 없었던 이들이 결국 종말을 맞이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과정을 다룬다. 누군가는 이 작품이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 영화는 충분히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각자 주어진 시간이 다를 뿐, 결국 인생의 끝은 다가오는 법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그 끝을 극단적으로 앞당겨 관객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21일 후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쩌면 이는 우리의 삶과 아주 동떨어진 질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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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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