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과 망각이 만든 세상, 연극 너츠

상처받은 내면이 이끈 자멸의 길
글 입력 2024.08.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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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 '피오'가 더 익숙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배우로 거듭난 배우 ‘표지훈’. 그의 연기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대학로를 방문했다.


연극 <너츠>는 극단 소년이 지난 1월 워크숍 공연 이후, 발전된 스토리와 새로운 캐스팅으로 선보이는 미스터리 추리 창작극이다. 배경은 1994년 미국 북부 미네소타주, 한 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경찰 '새미'와 그의 파트너 '레온'이 찾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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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여느 추리극처럼, 두 경찰은 범인의 증거를 찾기 위해 현장을 수사하고 관련된 용의자를 불러 그들의 알리바이를 하나씩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기수리기사 ‘토드’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이유 모를 분노심을 느끼고 그를 따라가 살해한다. 분장사 ‘잭’은 학창 시절 동성인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본인을 괴롭힌 사람을 찾아가 복수심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이비 교주 ‘다이머’는 최면을 걸어 천국의 문으로 인도한다는 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기차선로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상한 점은 세 명의 용의자가 하나 같이 본인이 살인범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인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 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일처럼 보인다. 용의자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관객들은 점점 더 미궁 속에 빠진다. 세 사건이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는 되지 못한다.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전개하던 무대는 현실로 돌아가 새미와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왠지 모르게 새미를 억압하는 마리아, 그런 마리아가 이젠 신물이 나는듯한 새미, 새미를 농락하는 레온, 그리고 앞서 나온 살인사건들이 보도된 기사가 실린 신문 무더기들.


새미는 유년 시절 아버지와 형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었다. 현재의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나약했고 나를 해치는 존재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또 다른 ‘나’는 계속 생겨났다. 가족은 어린 새미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고독함과 외로움을 주었다. 학창 시절, 성 정체성을 이유로 괴롭힘을 받은 새미는 사회에서 또 배제된다. 이 과정에서 쌓인 세상에 대한 분노는 새미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했다.


토드, 잭, 다이머는 새미의 불안한 내면이 만든 자아들이다. 개별의 사건들을 먼저 보여주어, 편집증 환자의 특징을 연출적 요소에 적용해 관객이 새미의 분열된 자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극은 살인 용의자를 찾는 과정으로 시작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살인 용의자가 아닌 '새미' 본인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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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네가 만든 세상이야."

 

비참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피했지만 묻을 수 없던 새미 본연의 자아가 끝내 드러난다. 본인의 결핍으로 인해 무참히 저지른 살인자 ‘새미’. 새미가 만든 가상 공간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자신의 살인을 쭉 지켜본 어머니 ‘마리아’를 죽일 것인지, 자신을 죽일 것인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자아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면이 불안해서, 현재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이유는 제각각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에 등장했던 장재열(조인성)은 과거 자신의 상처를 가진 허상의 자아 한강우를 만들었고, 연극 ‘벨기에 물고기’의 므시외도 자신의 다른 자아 어린 소녀 ‘피유’와 이야기하며 삶과 상처를 공유한다. 극 중, 새미도 불안한 내면이 창조한 세 개의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과 개별의 존재로 인지한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삐뚤어진 마음이 저지른 살인은 새미를 결국 자멸의 길로 이끈다.


적당한 반전과 혼란스러운 자아를 극대화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던 추리 연극 <너츠>. 미스터리 추리라는 장르적 요소를 더해 무더운 여름과 걸맞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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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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