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처서 매직을 기다리며

그리 나쁘지 않은 여름이 지나고 있다
글 입력 2024.08.1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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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매직에 속지 말자, 진짜는 처서 매직이라고 했지만 입추가 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덜 더워진 것 같단 말이 나왔다. 모든 사무실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친구들 단톡방에서 너무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 기준이 이상해졌다는 이야를 나눴다. 입추 매직을 믿기 위해 애를 쓰며 아침 기온 29도면 떨어진 거 아니냐고 하던 사람들... 그러나 열대야가 지속되고 낮 기온이 치솟는 말복 더위 앞에서 지금이 2018년보다 더 덥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생각난다, 몸에 이불에 척척 들러붙던 그해 여름...

 

작년 여름은 유난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올해는 잘 지내보려고 했다. 코로나 동안 움츠러든 몸이 스트레칭을 시작했지만 여러 제한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나날을 겪고 나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여름이라 이러면 안 되겠단 생각에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로 했는데 그렇게 애를 써야 했다는 것까지 '힘든 여름'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올해 여름은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8월 초부터 중순까지 감기로 강제 휴양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는 이야기에 공중 보건과 주변 사람의 안전을 위해 확실하게 연차를 소진할 기대를 품었지만 회사 앞 병원에서는 코로나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감기가 낫지 않아서 연차 쓰고 단골 병원에 갔을 때는 굳이 코로나 검사를 할 필요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무더위와 실내 냉방으로 감기 심하게 걸려서 연차 쓴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8월 초 일주일이 사라지게 되었다.


컨디션 회복할 타이밍에는 말복 더위가 기승이었다. 날이 정말 더운 건지 몸이 안 좋아서 더 덥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작년의 교훈이 무색하게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연일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야외활동 자제, 수분 섭취를 넘어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권유하는 안전 안내 문자가 알림을 울렸다. 저녁 8시 넘어서 운동 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이 매번 너무 더웠다. 이쯤 되니 야외활동은 생존의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작년만큼 무기력하거나 심심해서 몸부림치는 일은 없었다. 작년과 다른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순전히 재미 목적의 만화책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계발의 듀오링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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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만화 작가가 더딘 속도로 활동하고 있다. 몰아서 읽다가 까먹었다가 다른 작품도 보다가 문득 결말이 생각나지 않는 만화가 있어서 찾아보니 이미 절판되었고 e북으로도 출간되지 않아서 인터넷을 뒤적여 중고 매물을 구했다. 10대 시절 만화책을 사 모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베란다 창고행. 아마 습한 구석에 처박혀 곰팡이와 함께하고 있지 않을까. 지나간 과거는 잊고 손에 넣지 못했던 만화책을 읽었다. 세로형 스크롤과 패드의 터치에 익숙해졌다가 다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보는 재미. 거의 잊고 있다시피한 만화책의 종이 질감. 10대 시절을 추억하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거실에 에어컨 켜고 온 가족이 모여 만화책 검정 고무신을 읽던 기억까지 떠올랐다. 그런 여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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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알아서 러시아어 공부 잘하고 대학시절 배웠던 카작어까지 다시 시작할 줄 알았다. 현재 듀오링고 러시아어 섹션 2, 유닛 8 진행 중이다. 작년 1분기 이후로 손에서 놨다가 지난달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올해의 할 일 목록에 올려놓고 내내 까먹고 미루다가 중간 점검 때 정신 차리고 부랴부랴 시작했다. 주말에 종종 까먹어서 빼먹기는 하지만 매일 해야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12시가 되기 전에 급하게 하는 날도 있었는데 이젠 출근길을 이용해서 빠르게 해치운다. 나름 소소하게 발전이란 걸 했다. (거의) 매일 느끼는 일상의 작은 뿌듯함.


상반기에 떨어진 자격증 시험 재도전을 지난달부터 준비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 문제집은 지난 시험 이후 위치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것만 빼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처서 매직이 실현되어 불필요한 외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이번 여름의 유일한 고비라면 그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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