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류의 되풀이를 통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삶 –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행위
글 입력 2024.08.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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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잘 알려진 학자이자 유신론자 ‘C.S. 루이스’의 마지막 논쟁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두 실존 인물을 내세워 가상의 대담을 창조했다. 종교와 신의 존재 유무에서 출발해 삶, 관계, 그리고 죽음까지 나아가는 세기의 논쟁을 또렷하게 다룬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의 런던. 죽음을 앞둔 프로이트의 서재에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지내고 있는 루이스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발단은 두 사람의 지적 호기심이다.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저서에 담긴 신에 대한 변증을 보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에 이른다. 루이스는 곧장 초대에 응하고, 이내 최고의 지성들이 나누는 치열한 갑론을박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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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지적 논쟁에 대한 열정과 세상을 탐구하는 지성에서 비롯된다. 죽음의 공포와 전쟁의 위협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지만 논쟁을 펼치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의 악화로 죽음의 공포를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초대를 행하고, 루이스는 전쟁의 위험과 불안이 내내 도사리는 런던으로 향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초대에 응한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불확실한 논쟁거리에 대해 파고드는 열성을 멈추지 않는 자세가 인상 깊다.

 

신과 종교, 삶과 죽음에 관한 인물들의 견해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외려 대화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를 더욱 눈여겨보게 된다. 한 사람은 무신론자, 다른 한 사람은 유신론자로서 어쩌면 극과 극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들의 대담은 투쟁적인 다툼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본인은 반드시 옳고 상대는 반드시 그르다는 지나친 교만이 부재하는 덕분이다. 물론 각자의 오랜 연구와 축적된 경험에서 기인한 기조 신념을 굳게 유지하나, 어떠한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본인의 것과 상반된 견해를 비판하지만 비난하지는 않으면서 경청하는 태도는 자연스레 두 인물 간의 약한 유대로 이어진다. 상대의 입장과 믿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하며 내밀한 사연을 따져 물으려다가도 이내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본다. 주장과 반박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영화의 흐름에도 지치지 않고 대화에 열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논쟁 사이사이에 두 인물의 과거 경험과 고통, 결핍을 조금씩 틈입시킨 연출 역시 몰입을 더한다. 대화에 몰두하는 지성뿐 아니라 인물의 결핍까지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한 ‘안소니 홉킨스’와 ‘매튜 구드’의 연기가 특히 두드러진다. 안소니 홉킨스는 딸 안나와의 건강하지 못한 애착, 그리고 세상과 죽음을 향한 분통스러운 마음을 겪는 프로이트로, 매튜 구드는 굳건한 신념을 지녔지만 참전으로 인한 상흔에 고통받는 루이스로 완벽히 분했다고 느껴진다.

 

안소니 홉킨스의 열연은 내내 탁월하지만, 특히 병으로 이른 죽음을 맞이한 딸과 손자를 기억하며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신이 정말로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럴 수는 없을 거라고, 이렇게나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이 신의 계획이라니 터무니없다고 외치며 분노하는 얼굴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느낀다. 발화할 때의 표정, 몸짓, 걸음걸이 같은 것들로 본인이 해석한 인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해 내는 능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루이스라는 인물의 복잡한 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매튜 구드의 호연 역시 그에 뒤처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지적이고 강인한 인물 속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극심한 불안을 느끼는 이면을 포착하고 열연해냈다. 어두운 곳에서 섬광이 번쩍거리거나 갑작스럽게 큰 기차 소리 따위를 듣게 될 때 비치는 혼미한 얼굴에서 내면 깊은 곳의 고통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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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지적인 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지적이고 흥미로운 논쟁을 내놓는 데서 그치는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두 인물을 통해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질병 앞에서 마주하는 나약함, 전쟁으로 인한 무력감 등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절망적인 감정들을 비춘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어떻게든 일상을 영위해 나가야 하지만 때로는 그 감정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오답을 거치며 계속해서 답을 찾아나간다는 인물들의 결론은 비단 학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결코 통제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죽음, 누군가에겐 너무나 부당하고 불공평한 그 죽음이 일으키는 분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그렇게 떠안고 있는 감정들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지만 두려움을 짊어진 채로 오답을 거듭하며 나아가는 것이 최선일 테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영화가 삶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관점을 살필 수 있다. 루이스가 떠난 뒤, 음악을 듣지 않던 프로이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본다. 그리고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집을 빠져나와 또 수많은 고통과 오류와 탐구를 반복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달린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의 맨 끝으로 눈길을 옮기면 저 멀리 작은 불빛들이 보인다.

 

완벽한 정답이나 완전한 오답이라는 건 없겠지만, 삶은 끝없이 반복되는 오류를 통해 정답에 근접한 진실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시선에 공감한다. 길을 잃었다가도 방향을 되찾고, 틀린 길로 들어섰다가도 옳다고 여겨지는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 이야기를 탐구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수없는 오류를 범하며, 더 나은 답으로 향하는 것.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행하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궁리야말로 세기의 논쟁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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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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