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또 다른 나의 잔혹한 세계 - 연극 '너츠'

feat. 영화 <아이덴티티>
글 입력 2024.08.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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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너츠>와 영화 <아이덴티티>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중인격 그리고 살인 사건


 

극단 소년이 첫선을 보인 미스터리 연극 <너츠>는 지난 1월 워크샵 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후, 새로운 스토리라인과 캐릭터들로 돌아왔다. 더굿씨어터에서 8월 2일부터 8월 18일까지 약 2주간 상연된 연극 <너츠>는 소름 돋는 반전과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냈다.


연극 <너츠>는 미국 북부 미네소타주 한 작은 마을의 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파견된 경찰 '새미'와 그의 파트너 '레온'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범상치 않은 세 명의 용의자, 전기기술자 '토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잭', 성직자 '다이머'가 모여 모두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새미'와 '레온'은 심문을 통해 증거를 찾으며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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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보면서 영화 <아이덴티티>(2003)가 떠올랐다. 영화는 다중인격을 가진 연쇄살인범 '말콤'이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인격을 지우는 과정을 외딴 모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표현한다. 이 모텔에 모인 11명의 사람(사실은 말콤의 인격)은 생일이 같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둘씩 살해당하는 상황에 서로를 의심하던 그들은 비밀에 가까워지고, 결국 이 모든 게 말콤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임이 밝혀지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연극 <너츠> 또한 '새미'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제외한 네 인물 모두 그의 인격이다. 그렇다면 '새미'가 왜 다중인격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증오와 분노가 낳은 다양한 인격들


 

'새미'는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형인 '레온'에게 남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레온'은 이를 친구에게 고자질한 것도 모자라 '새미'를 괴롭히는 데도 앞장선다. 이에 복수를 다짐한 '새미'는 '레온'을 죽이는데, 그를 기억의 조각에서 끌어낸 '새미'가 본인의 형이 아니라 같은 경찰 동료로 취급한다. (심지어 '새미'는 경찰도 아니다. 본인의 상상 속에서 경찰이 되어 살인 사건을 조사한 것이다. )

 

이후 증오와 분노가 뒤섞여 탄생한 다양한 인격들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먼저 '토드'는 자신을 저버린 채 행복하게 사는 아버지를 전깃줄로 목을 졸라 죽이고, '잭'은 죽은 '레온'의 친구 얼굴에 산성 용액을 테러해서 결혼을 망치고, '다이머'는 사이비 교주로서 천국으로 보내주겠다는 거짓말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열차에 치여 죽게 한다.

 

그러나 '새미'의 연쇄살인은 제대로 심판받지 않고 있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마리아'만이 그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한편, 그의 트리거(살인)가 발동되지 않게 막고 있었다. 결국에는 방조죄로 재판에 불려 갈 위기에 처한 '마리아'로 인해 '새미'는 총을 들고 자신을 죽일지 어머니를 죽일지 갈등하다가 최후의 선택을 내린다.

 

이처럼 연극 <너츠>는 누가 범인인지 찾는 전개로 흘러가지 않는다. 애초부터 세 명의 용의자는 자기가 범인이라면서 펍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재현하고, 알리바이 대신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고한다. 심지어 '새미'와 '레온'의 심문 역시 굉장히 허술하고 비전문적이다.

 

여기서 영화 <아이덴티티>처럼 다중인격을 가진 연쇄살인범의 내면세계가 펼쳐지고 있고, 그 주인공은 '새미'라는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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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미'가 진범이라는 건 초반에 깔린 복선을 통해서도 눈치챌 수 있다. 우선 범인의 실루엣을 비추는 장면이 있는데 누가 봐도 '새미' 역을 맡은 배우의 외형과 같다. 더불어 '새미'가 살인 사건이 보도된 신문지를 주머니에 감추는 장면이나 "죽여 버린다"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던지는 장면은 대놓고 그가 살인자라고 소리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전개 덕분에 누가 범인일지 추리하며 머리를 싸맬 일은 없었지만, 세 용의자에 대한 집중도가 확 떨어져서 그들의 이야기가 길어질 때 긴장감이 풀어졌다. 하지만 '마리아'가 '새미'의 내면세계를 무너뜨리며 현실로 돌아왔을 때부터 시작된 반전과 누굴 죽일지 갈등하는 '새미' 안에서 '토드', '잭', '다이머', '레온' 이렇게 네 인격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부추기며 감정을 폭발하는 순간은 꽤 볼만했다.

   

*

 

연극 <너츠>는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밑바닥을 다중인격을 가진 주인공의 머릿속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배경 자체는 미국이나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잔인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다. 물론 그가 한 짓은 정당화할 수 없다. 아무리 심한 폭력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보복살인은 옳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은 엄중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어땠을까?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추락한 그를 구원해 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러한 일을 겪은 이들이 진창으로 떨어지기 전, 누군가 손을 잡아주길 바라본다.

 

 

[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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