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위협적인 AI 글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써야 하는가?

글 입력 2024.08.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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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외치시자, 태초에 빛이 생겨났다. 구약성경의 첫 장에 등장하는 이 한마디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말이 등장한 순간과, 속에서 뒤엉키는 불안과 충동 속에서 마치 빛처럼 세계가 열리는 개개인의 유아시절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이 존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탄생했다. 인류의 문명도, 인간의 자아도, 말이 존재하는 순간에 진정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말은 단순한 기술 이상이다. 제롬 부르노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설명해내기 위해서는 이야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춤과 춤꾼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언어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구분할 수 없다.


내가 나에게 갖는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갖는 감정, 내가 인지하는 모든 세계의 심리적 인지 단위가 언어와 담화의 구조라는 점은 생각할 때마다 놀랍다. 언어의 힘으로 우리는 사건을 구획하고 구성하고 지각, 기억, 사건을 변형한다.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없다면, 언어능력의 통합적으로 부르는 ‘문해력’을 사고과정 없이 정의할 수 있을까?

 

문해력이 사고과정에 가까운 개인 심리적 과정이라면, ‘좋은 사고’란 추론과 연결짓기의 순수한 기술로서 발달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다양하고, 나도 여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교적 뚜렷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리뷰할 책,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문해력을 단순한 문자표상-추론능력이 아닌 통합적 사고능력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다시피, 이 책은 단순히 ‘문해력’에 대해 정의하는데 멈추지 않고, 읽기 쓰기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을 끌고 온다.

 

저자의 이런 접근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새로운 글쓰기 도구인 ‘인공지능’은 놀라운 자동화 능력으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챗 GPT를 이용한 자기계발서가 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수의 기업에서도 공식적인 사과문에서도 GPT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글쓰기 과제의 개요를 GPT가 도와주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GPT가 글쓰기 업무를 대신 수행하면서, 더이상 인간의 고급 쓰기 능력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적절한 프롬프트’를 넣으면 전문가 수준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강의도 유튜브에서 종종 보인다.

 

읽기는 어떤가? '숏츠'와 ‘스포일러 리뷰’가 이미 주류 소비 콘텐츠로 자리 잡은 시대에, 인공지능은 쓰기보다 요약에서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아직은 양쪽 분야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수행능력을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더 발달하게 되면 인간은 읽고 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 장황한 시대적 불안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불안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첫째, 인간과 인공지능의 읽기 쓰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아예 다른 개념입니다. 전자는 무의식적, 의식적 정보들을 오랜 시간 동안 망각하고 입력해가면서 통합되는 역동적 사고 과정이고, 후자는 입력된 순간 데이터 간 연결거리를 정돈해서 언어로 부호화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부르더라도 생성부터 과정, 처리까지가 모두 다른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습니까.”

 

“둘째, 프롬프트를 잘 넣어서 좋은 글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더 높은 수준의 글쓰기가 가능하다 하더라도,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사람의 문해력(그러니까 사용자의 읽기, 쓰기, 사회적 약속과 배경지식, 심지어 유년기의 시절까지 여기에 영향을 줍니다.)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집니다. 애당초 프롬프트를 계속 수정하느니 처음부터 자유로운 발상 속에서 글을 써나가는 것이 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요?”

 

“셋째, 기술은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을 변화시키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인류의 최후의 보루처럼 인간성을 낭만적인 성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증명해왔습니다. 나도 젊었을 때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는 엄청난 세계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더더욱 진정한 의미에서 문해력이 필요한 겁니다.”

 

 

 

2.


 

이처럼 이 책의 주제는 ‘AI’와 문해력이지만, 결국 인간의 사고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읽기시험 점수와 같은 결과물이 아니라 언어와 매체에 힘을 빌릴 뿐인 끝없이 변화하는 사고 과정 그 자체다.

 

최신 주제를 다루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 점이다. AI를 다룬 책들은 빠르다. 트렌드, 사용법, 최신, 개정, 여러 단어가 달라붙어 있는 책의 표지를 보다 보면 괜한 심술에 글자를 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불안에 종종 시달리기 때문이다.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지만, 이 책의 지향하는 메시지와 서술방식이 약간 다르다. 책은 비약 없이 논리적으로 내용을 전개하지만, 때로 에세이처럼 노이즈를 섞는다. 동네 고양이나 호수에 떠다니는 오리, 저자의 좀 더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지만 '이런 책'들로써는 뜬금없이 스며든다.

 

독자로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노이즈가 책의 메시지와 잘 어우러져 책을 합리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동시에 사고 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책의 방식은 많은 것들을 잘라내고 생략하는 것이 미덕인 현대인에게 이상한 위안을 준다.

 

인공지능이라면 저자와 같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발달할 인공지능이 썼다면 나와 같이 쓰지 않았을 것이다. 쓰기 과정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저자의 관점, 다른 지식과의 연결을 나의 관점, 나의 다른 지식과의 연결과 연결한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육체와, 그 육체가 존재하는 시공간, 그 육체가 사고하는 언어마저도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사고과정은 고유한 동시에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낭만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순간순간마다 거대한 세계의 충돌을 겪는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자동화되지 않았고,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문명을 이끌어왔다. AI도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그 소통의 속도를 높이고 최적화할 수는 있어도 그 본질이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최초의 문자는 수메르에서 발견되었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이 돌에는 10마리의 염소가 교역됨을 증명하기 위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당대 시와 같은 예술이 유행했음을 고려할 때, 최초의 문자가 핵심적인 법적 절차나 상업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이처럼 글쓰기는 기록의 보전을 통해 개인의 기억의 확장으로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점차 사회적 차원에서의 행정과 규제를 위한 도구가 되었고, 세계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빠르게 발달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세계를 규제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문해력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회 정치적 활동을 구성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읽기와 독서는 단순한 개인이 아닌 사회적 행동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문해력이란 한 사회를 규제하는 텍스트에 접근하고 이해하고 사용하며, 필요할 때 그것의 명확성,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일테다.

 

AI 앞에서 우리가 도전받을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로 등장한 또 다른 읽기 방식을 마주하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 언어의 명확성과 적절성에 끝없이 의문을 가지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가장 사회적인 것을 가장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때로는 그 반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 본질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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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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