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바-집의 무한굴레 -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실험적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글 입력 2024.08.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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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연극 바깥 사이의 경계 위에서 실험을 거듭하는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를 보고 왔다. 본 작품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새롭게 해체하고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와 구성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세상에 이런 형태의 극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 작품이다. 너무 새로운 형식의 극이다 보니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맥락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보다는 한 장면 장면의 묘사에 집중했다. 강렬한 장면과 유연한 연결, 무맥락처럼 보이던 독특한 스토리 라인, 예상치 못한 재밌는 연출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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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강렬함과 꿈속 같은 전개 


 

인형 탈을 쓰고 있는 곰과 호랑이가 나와 인간이 되고 싶어 신에게 전화를 건다. 하늘에서 자고 있던 옆집 아저씨 같은 신은 일어나서 귀찮은 듯 전화를 받는다. 그리곤 인간이 되고픈 짐승들에게 피자와 콜라만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을 버티라고 말한다. 앞선 ‘피자’라는 단어는 다음 장의 ‘배달 음식’과 연결되며 잠든 산타클로스가 배달의 민족 주문을 받고 배달하러 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주문!’ 알람과 미친 듯이 달리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들. 산타클로스는 카트 위에서 편하게 앉아 명령만 내리니 어찌보면 알바생 일만 죽어라 시키는 악덕업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지루할 정도로 오래 달리고 뛰고, 무어라 무어라 외친다. 도대체 언제까지 배달할 건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만큼 이들의 노동에는 끝이 없는 것 같은 지루함과 고단함이 묻어있다.

 

중간중간 피자 배달 중 극과 전혀 관계없는 TV 매체에서 이용되는 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광고가 실제 오디오로 들리면서 극 중 광고로 이용되는 듯하다. 광고가 나올 때는 모두 액션을 멈춘다. 공연 중에 광고가 나와서 그런지 그것도 극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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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노동의 현장은 쉴 새 없이 바뀐다. 열심히 달리던 루돌프들은 아마존 익스프레스의 직원들로 변해버렸다. 몇 곡 내리 춤추고 흔들어대며 익살스럽게 움직이던 아마존의 직원들은 우리를 웃게도 했지만, 그 과격한 춤사위와 무리하는 듯한 웃음이 과해 보여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배달하고 나서도 지친 기색을 낼 수 없는 그들은 관객을 위해 자신들의 몸을 불사른다. 유쾌한 액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쾌하지 않아 지고, 동조의 박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려의 박수로 바뀐다. ‘아. 배우들 정말 힘들겠다.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좀 쉬었으면.’ 배우를 향한 걱정스러운 마음은 노동하는 청년들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후에도 일터가 바뀌며 노동자의 현실을 처연하게 드러낸다. 결혼식장과 명품 샵, 영어 학원과 공장, 연극무대까지 다양하다. 장과 장의 연결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분절되어 있으며 모든 역할이 바뀐다. 하지만 그 연결은 매우 자연스럽다. 마치 꿈을 연상케 하는 전개 방식이다. 왜 꿈에서는 맥락 없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가. 꿈 속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에 녹아들어 수긍하게 된다.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급진적인 전개와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 속에서 매 장면을 아주 강렬하고 독특하게 보여주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연타로 먹는 느낌이랄까. 짜장면 다음에 마라탕, 마라탕 다음에 탕후루, 탕후루 다음에 요아정, 요아정 다음에 두바이 초콜릿을 먹는 듯한 그런 느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음식들의 자극적인 향연. 보는 내내 뭐지? 이해하려고 애쓰다 그냥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보다는 장면으로, 이미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끊이지 않는 노동의 굴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어학원에서 연극무대로 이어지던 부분이다. 유능해 보이는 영어 강사가 나와 칠판에 문장을 적는다. ‘나는 어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 끝나고 맥주 한잔하면서 쉬고 싶다’와 같은 문장을 현재 시제부터 과거 시제, 미래 시제로 만들어 본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칠판을 들고 움직이던 보조강사는 매우 지친 몸짓으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바닥에 쓰러진 보조강사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열렬히 수업을 이어가는 메인 강사. 쓰러진 학생은 장례식장으로 옮겨가 형식적인 장례를 치른다. 우스꽝스럽게 눈물을 훔치는 누군가와 억지스럽게 흐느끼는 동료들. 떠나는 사람은 제대로 된 애도도 받지 못한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카트에 누워있던 이 사람은 아침이 되자 다시 공장 노동자로 일어난다. 죽음과도 같았던 피곤한 쓰러짐 이후에도 노동은 이어지는 것이다. 무한하게 반복되는 단순노동, 갑작스러운 죽음, 연극무대로의 전환. 삶의 끝에도 노동의 장소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노동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을 했던 중심인물인 곽영현 배우는 마지막 곡으로 뮤지컬 CATS의 OST였던 Memory를 구슬피 부르며 극은 막을 내린다.


청춘의 기간 동안 한 번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해봤을 사람들은 공감할 내용이 담겨있다. 보통 그때는 일을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두세 개씩 하기도 한다. 배우들이 보여준 것처럼 말 그대로 몸을 불태운다. 근데 그마저도 충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뿐일까 그렇게 내 한 몸 바쳐 일을 하고 나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는 어렵다. 그 참혹하고 억울한 현실을 겪어봤기에 이들의 노동 현장이 크게 와닿았다. 과거의 나를 연상시켰기에 반대로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죽어서도 다시 일어나 일을 하는 그 모습이 애잔하고 불편했. ‘이런 공연은 비슷한 일을 겪은 이 시대의 청춘이 아닌, 이 사회의 정치인들이 봐야 하는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와 너무 가까웠던 청춘인지라 공감하는 동시에 아팠다. 알바의 집이란 결국, 아르바이트의 장소가 집이 되어버릴 정도로 굴레에 갇혀버린 청년들의 현실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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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명성에 맞는 아방가르드한 극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새롭다 못해 낯선 부분도 많이 있었다. 극단적인 감정선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웃거나 갑자기 슬퍼지거나 하는 부분들은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Memory 가창이라든지 AI가 부르는 상록수 음원은 의아한 상태로 듣게 되었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빛났던 재밌는 연출과 기가 막힌 이음새 등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장재호 배우님의 연기에 안정감을 많이 느꼈다. 다양한 역할을 맡으셨는데 대사나 감정이 확 와닿았다. 여러 이야기와 공간이 나오는 작품의 특성상 집중력이 흩어질 수 있는데 그 중심을 잡아준 느낌이었다. 곽영현 배우님과 김남현 배우님은 그 작은 체구들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장면마다 쉼 없이 큰 비중을 맡아서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뛰어난 기량의 연기를 보여주셨다. 이 외에도 극단의 모든 배우들이 엄청난 움직임과 표현, 대사를 맡으며 땀을 흘리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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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의 집, 배로나르다>는 CJ문화재단의 '2024 스테이지업 창작단체' 지원사업에서 선정된 작품으로 김현탁 연출이 재구성하고 극단 성북동 비둘기가 제작했다. 본 작품은 9월 1월까지 CJ 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된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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