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영화가 재해석한 '화합의 라스트 세션' -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4.08.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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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마지않던 웹툰의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결과물은 웹툰 속 캐릭터가 본연의 모습을 온연히 갖춘 채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반대로, 깊이 감명 받은 소설의 영화화가 이뤄질 때는 우리가 상상해 온 환상을 어떻게 실감 나게 구현하는지에 수작의 방점이 찍힌다.


이처럼 원작이 있는 콘텐츠를 다른 매체 안에 녹여낼 때에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의 기준이 적용된다. 매체의 맛을 살려 빛을 더하는 재해석이 이뤄질 때, 비로소 아낌없이 박수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본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과연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 기본 정보 :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둔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이자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이하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이름을 떨친 '유신론자' C.S. 루이스(이하 루이스) 간의 치열한 토론을 다뤘다.

 

영화는 연극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즉 미지의 허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두 석학이 펼치는 가상의 토론이라는 기존 연극의 설정을 가져왔다는 의미다. 따라서 무신론과 유신론 간의 치열한 전투보다는 연극에서 보여줬으면 좋았을, 혹은 극의 연출을 영화로 풀어냈을 때 시너지가 날 요소들을 중심으로 변화의 축을 두었을 공산이 크다.


영화는 그 해답으로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화합을 제시했다. 원작인 연극은 두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다뤘는지, 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각색했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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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비춰낸 화합의 장


 

영화는 주된 장면을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간의 논쟁으로 갈음하는 대신, 프로이트와 루이스라는 인물 자체를 내보였다.


연극이 두 사람이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단일한 배경을 제공했다면, 영화는 충분한 서사를 부여해 두 사람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설득의 화법 자체는 유사하다. 프로이트는 시종일관 신랄하게 신의 부재를 꾸짖고, 루이스는 조목조목 반박하며 대화 흐름을 이어간다. 하지만 크고 작게 요동치는 두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 조금씩 연극과는 상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연극이 두 사람 간의 쉴 틈 없는 지적 논쟁을 통해 쾌감을 선사한다면, 영화는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모습을 점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포용의 미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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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형성하는 유대감의 주요 매개체가 되는 존재는 바로 전쟁이다. 러닝타임 내내 가장 많이, 자주 등장한 소재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부터가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9월 3일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전쟁에 참전한 시점이 라스트 세션의 시대적 배경이다.


전쟁이 이들을 연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신의 존재에 대한 담론에서 고통을 빼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전쟁은 고통의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순간과 유사한 소리만으로 공포에 떠는 루이스의 모습과 더불어 전쟁 당시 동료의 죽음을 생생히 조명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포의 시대 한복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전쟁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고통을 유사한 감정(공포)으로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사상에 입각해 상이한 논리를 펼친다. 이후 대화를 주고받고, 때로는 침묵도 이어가며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신이 존재한다면 왜 전쟁터에서 수없이 많은 이가 죽어가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더해, 아무 죄도 없이 병에 걸려 죽어야 했던 둘째 딸 소피와 손자 하이넬레를 언급하며 신의 존재를 믿고 싶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리고 루이스는 이러한 일련의 고통이 신의 수단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스스로 말을 얼버무린다.


두 사람이 함께 머뭇거린 시간은 짧지만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프로이트는 줄곧 딸 안나에게만 접촉을 허용하던 입을 루이스에게 내어주었다. 또 평소 거부하던 음악을 틀어놓으며 루이스를 배웅하는 장면들을 통해, 일련의 대화를 거치며 무척 가까워진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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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장소의 확장


 

그렇다면 영화는 프로이트와 루이스 간의 쌓여가는 유대를 보여주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취했을까. 첫 번째 수단은 장소의 확장이었다.


두 사람이 과거 마주했던 비극적 경험을 화면에 교차해 비추어줌으로써, 오가는 대화 이상으로 프로이트-루이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논쟁의 텐션감을 낮추는 대신, 각 인물에 집중할 수 있는 구성을 택한 것이다.


대학을 프레임 속에 담아 인간의 한계를 직면한 후 인문학을 통달하며 무신론자가 유신론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프로이트 집 창문을 열고 나가면 보이는 푸릇한 뜰(과거에 살던 집과 동일하게 배치해 그리움을 나타내는 용도)을 비추어 한때 유신론자이고 싶었던 자가 완강한 무신론자가 되는 과정을 찬찬히 그려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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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인물의 확장 역시 영화가 취한 성공적인 차별화 수단이다.


철저한 2인극으로 진행됐던 연극과 달리, 프로이트의 딸 안나의 존재를 부각한 것이 대표적 예시다. 동시에 연극과 가장 눈에 띄게 대비되는 연출이기도 하다. 안나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절대적 숭배자이자, 아동 정신분석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처음 등장해 프로이트를 보필하는 순간부터 몸이 좋지 않다는 프로이트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집에 돌아오는 때까지, 안나는 제3의 주인공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연극에서는 안나가 과거 게슈타포에 의해 연행될 뻔했던 과거를 잠깐 언급하는 것에 그쳤다면, 영화에서는 아예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같은 성별의 여성에게 이끌리지만, 아버지인 프로이트에게 헌신하느라 이를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영화에서 프로이트는 안나가 이따금씩 언급하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인지했지만, 이를 쉽사리 대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얘기를 꺼내려는 안나와 계속해서 다음을 기약하는 데서 그 심리가 드러난다.


안나는 그 자체로 프로이트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자신에게 속박된 딸의 모습을 지적하자, 계속해서 허점을 찔러오던 프로이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회피하는 장면이 그가 느낀 혼란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에서 프로이트가 보이는 태도는 언뜻 동성애를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조사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동성애를 성 기능 발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형태의 변화로 여겼다. 또 과거 아들의 동성애를 고쳐 달라는 한 여성의 요청을 "고대와 현대의 많은 존경받는 이들이 동성애자였으며, 동성애를 범죄로 박해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절하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안나 프로이트의 등장은 실재세계의 프로이트 가족을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영화 내에서는 프로이트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더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가 루이스와 더 솔직한 모습으로 대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라스트 세션'은 연극이 닦아놓은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영화만이 선사할 수 있는 시공간의 탈피로 또 다른 감동을 자아냈다.


서두에 던진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향후 두 사람이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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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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