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함이란, 어쩌면 가장 위대한 것 - G-SHOW : THE LUNA

글 입력 2024.08.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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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어오고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봄이, 선선함과 단풍으로 물든 가을이 모두 사라지면 어떤 기분일까.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꽃구경을 하는 것도, 풍성하게 물든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올해 여름도 심상치 않다.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숨 막히는 더위에 피해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며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성이 멀지 않았음이 피부로 와닿는다. 이제는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당연하다고 느꼈던 사계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뮤지컬 G-SHOW : THE LUNA는 2060년, 기후변화로 여름과 겨울만 남은 세상 속 생명의 나무 노르말리스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담은 이야기다. 지난 8월 12일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공연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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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혹독할 정도로 추운 미래세계는 이제 봄과 가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바다가 얼어붙어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 되면 환상의 섬 루나 아일랜드는 딱 한 달 문을 열고,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봄과 가을의 꽃이 핀 생명의 나무 노르말리스를 위한 루나 페스티벌이 시작된다.


특히 이번 루나 페스티벌은 10주년을 맞이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하지만 기후 이상 현상으로 노르말리스의 생명력이 점점 떨어지며 곧 루나 아일랜드도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로써 노르말리스와 루나 아일랜드를 지키기 위한 모두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 모험을 표현한 방식은 기존의 공연과 비교했을 때 매우 참신하다. 바로 피겨와 뮤지컬을 결합한 공연이라는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피겨 선수가 노래하고 뮤지컬 배우가 스케이트를 탄다. 각 분야의 직업적 경계를 허물고 예술에 관한 다양한 시도를 했음이 느껴진다. 배우들의 노력은 누가 스케이트 선수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고, 올림픽이나 굵직한 경기장에서만 봐왔던 피겨 종목은 이제 문화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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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공연의 핵심은 노르말리스 나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가람’은 오래전 루나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나무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노르말리스는 꿈과 희망의 매개체다.


가람이 오랜 시간 먼 곳으로 떠나 있었음에도 한 번도 나무를 잊은 적 없다는 대사는 나무를 근원으로 큰 꿈을 키웠음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유년 시절부터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반짝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르말리스가 없어지는 것은 그들의 꿈과 더불어 어린 날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는 아쉬움이다. 유년 시절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유독 또렷하게 생각난다. 이는 기억력과 같은 지능의 문제가 아닌 정서적 연결에서 비롯된다.


초등학교 때 기억에 남는 선생님, 그때 있었던 일화나 사건, 친구와 했던 놀이, 어릴 때 매일 부모님이 나한테 했던 말 등이 기억이 나는 까닭은 그 행동이 인상 깊었다기보다,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느낀 감정이 크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 그 선생님이 주었던 따뜻함, 그 시절 친구와 어울리며 느꼈던 안정감 등은 평범하고 사소해도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람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끝까지 노르말리스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나간다. 과거 루나 아일랜드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은 이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까지. 이들 모두 노르말리스를 통해 꿈을 키우고 추억을 간직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마음 한편에 담아낸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노르말리스 나무를 지키려는 방법은 그 나무가 평범해지도록 힘쓰는 것이다. 희귀식물이기에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닌,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래서 다시 봄과 가을을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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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말리스를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온 가람은 노르말리스를 향한 노래를 부른다. 평범했던 소년이 겁 없이 세상으로 뛰어들고 척박한 땅 위를 걸을 때도 늘 나무를 생각했다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의 노랫말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여전히 참 바보 같아 기적이란 이름의 길을 쉽게 포기해

 

하지만 너를 만나 기적이 아닌 평범함의 의미를 깨닫네

 

 

누군가는 말한다. ‘지구를 살리는 건 기적에 가까워’ ‘이미 죽어가는 나무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아. 새로운 곳에 다른 우주를 설계하자’ ‘나무를 살리는 건 기적이야.’ 기적이란 의미가 주는 거대함에 위축되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에 일정하게 물을 주고 계속해서 애정을 주어 결국 그 나무를 살린다면, 이것은 꾸준함이 쌓여 발현된 기적과도 같다. 결국 나무를 살리는 건 어느날 갑자기 운명처럼 나타나는 기적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이 쌓여서 발현된 꾸준함이다.


그런 지속성은 나무 한 그루에서 열 그루, 백 그루의 나무로 자라난다. 나무가 살아난 것은 자연이 살아난 것을 넘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공연의 결말이 결국 루나 아일랜드를 지켜내고 다시 반짝이는 노르말리스 나무가 피어있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모두의 평범한 행동이 축적되어 이루어낸 결과였다.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도 반복되는 평범함이 기적과 연결된다는 믿음을 가져보아도 될 것 같다.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우리 삶의 태도에서도. 나무 하나로 인해 이토록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되다니. 평범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신빙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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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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