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향조와 단어 그리고 기분

글 입력 2024.08.2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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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향수에 관심이 있었다.

 

향수 뿌리기보다는 향조의 배합이 만드는 이미지 세계를 탐닉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텍스트로서의 향수는 늘 익숙했다. 시 구절을 위아래로 훑는 눈알 위로 스쳐 지나가는 저릿함과 공기 중에 산란하는 향조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구절이나 향조는 내 단어사전에 곧잘 저장되곤 했고, 이유 없이 시선을 잡아끌었다는 점이 비슷했다.

 

우선은 구어망드. 교복 입던 시절에는 일상의 냄새를 어느 향수 전문 블로그에서 찾곤 했었다.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코를 킁킁거리면서. 갓 구운 빵도, 코코아도 전부 식어서 나왔지만 블로그 주인장이 마음을 담아 데운 흔적이 있어서 계속해서 들여다봤었다.

 

그가 묘사하는 향은 대체로 어느 소설의 한 장면 같았고, 흡입력이 있었다. 의인화된 향이 그래서 달콤한 디저트 향이 구어망드임을 알게 됐다. 영단어를 암기하듯 “구어망드.. 구어망드..” 웅얼거리던 모습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시트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숀 마틴의 “The Yellow Jacket”을 매일 돌려 들었는데, 그 노래는 늘 쌉싸름한 녹차잎이나 신선한 오렌지 껍질, 레몬 껍질 향이 났다. 비슷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펑크나 디스코 같은 장르는 뒤로하고 전부 시트러스라고 뭉뚱그리는 버릇이 이 때 생겨버렸다.

 

이 와중에 시트러스는 존재감이 강렬해서 그대로 지중해를 건너온 시트러스로 남았다. 아쿠아 향을 맡은 기억은 없지만, 나는 제각각 다른 스타일의 노래임을 알면서도 향조를 핑계로 간단하고 풍성한 묘사를 종종 사용하곤 했다.

 

직관적일 수는 있지만 다른 특성을 무시해버리는 습관인 것 같아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노래는 여전히 산뜻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 시트러스는 생각 없이 낭창한가?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 절대 생각 없이 만들지 않았을 거다.

 

요즘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하다. 예민하게 튀어나온 점과 앞으로 발산하는 이름 몇 가지를 홱 잡아채서 꿰매어야 괜찮아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

 

향조도 내게는 익숙한 감각이고 단어사전은 내가 너무나도 아끼는 세계이지만 어감의 무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향수를 시향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시의 구절과 향조가 다를 바 없다면 더더욱. 그 둘을 혼동하지 않고서 더욱 다채로운 말맛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향수를 뿌리면 내 단어사전이 뒤집힐까, 아니면 기분이 좋아질까.

 

나도 모른다.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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