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사상과 영혼의 얽매임(2)

글 입력 2024.08.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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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Yang EJ (양이제)]

 


아이오와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은 경제적인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고기를 주식으로 먹습니다. 그러니 고기란 이미 마을에서부터 수요가 있는 품목이지요. 또한, 소, 돼지 등은 부위별로 갈라 각각 판매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마리로부터 최소 두세 가지 이상의 상품이 생산됩니다. 심지어 말은 수레와 마차를 이끄는 좋은 운송 수단이기까지 합니다. 이를 통해 가족은 언제라도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동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말을 빌려주고 대여비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가축은 그야말로 가족의 재산입니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값진 이유는 황금을 파는 주인과 이를 사고자 하는 이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프란체스카의 소신대로 가족이 소를 팔지 않는다면 소는 돈을 물어다 주지 않겠지요.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이 소를 사지 않는다면, 역시 소는 돈을 물어다 주지 않을 겁니다. 거래되지 않는 소는 꾸준한 여물과 관리를 요구하는 비경제적이고, 어쩌면 ‘비효율적’이기까지 한 일개 구성원으로 전락합니다.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1년간 정성껏 소를 기른 이유는 도축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체스카의 가족뿐만이 아닙니다. 아이오와의 사람들은 영혼, 죽음, 문학 등 사람의 내면적인 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농장과 거름을 잘 관리하고, 어떤 시기에 농작물을 심고 수확할지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가족 중 누구도 문을 쾅 닫는 것을 대수로워하지 않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닫는 것보다 문이 바람과 경첩의 힘에 의해 알아서 닫히게 내버려두는 것이 힘을 덜 들이고 문을 닫는 방법입니다. 문에 신경 쓸 시간에 서너 걸음을 더 걷는 게 낫습니다. 현관에서 부엌까지 단숨에 도달한다면, 외출 전까지 좀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까요. 같은 5분이어도 ‘알찬’ 5분이지요. 아이오와는 이처럼 모든 것이 효율과 생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길을 알려준 것에 감사하며 꽃을 꺾어다 주는 로버트의 방식은 그야말로 이방인입니다. 그의 표현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마지막 카우보이’이지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둘은 모두 효율 지상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처럼 자신의 사상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상과 사회와의 거리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는 사람은 로버트처럼 최소한의 돈벌이만 유지하며 떠돌이로 살거나, 프란체스카처럼 숨죽여 영혼을 억누른 채 살아갑니다. 로버트는 자신을 이해할 이를 찾아 방황하였고, 프란체스카는 행여 그럴 수 있단 기대를 스스로 저버려야 했습니다. 로버트의 삶은 대부분 외로웠고, 프란체스카의 삶은 대부분 공허했습니다.

 

가정과 마을로부터 화합될 수 없었던 그 시절 프란체스카의 얼굴을 살펴봅시다. 영화 속의 메릴 스트립은 눈을 내리깔거나 무표정합니다. 그러나 로버트를 만난 프란체스카는 그와의 만남이 초면임에도 얼굴에 늘 미소를 띠며 사소한 농담에도 자지러지듯이 깔깔 웃습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해지고, 장난도 곧잘 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염려스러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그는 서슴지 않습니다. 로버트의 등장으로 프란체스카의 행동은 다채로워졌습니다.

 

영화 속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와의 만남 이후에도 여전히 변화한 모습을 보입니다. 프란체스카가 살고 있는 아이오와의 마을은 이웃끼리 허물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프란체스카가 편히 몸을 누일 울타리 또한 없습니다. 로버트(외부인)이 상점에 들어서면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보내며 경계합니다. 로버트가 움직인 경로는 물론이고, 그가 누구이며 직업은 무엇인지에 대해 온 마을이 속닥거립니다. 그 이상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은 마을 사람들의 각종 추측으로 채워집니다. 마을은 그만큼 단단히 묶여 있으며, 폐쇄적입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불륜같이 도의에 벗어난 짓을 벌인다면 모두에게 배척받기 십상이지요. 영화에는 실제로 그러한 연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엑스트라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카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요. 프란체스카는 마을 주민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와 친분을 유지하며 지냅니다. 원래의 프란체스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로버트와의 만남, 즉 자신의 사상이 외부 세계와 화합을 이루던 순간, 자신을 이해받은 순간이 프란체스카의 영혼의 행동반경을 넓혀준 겁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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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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