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증의 몽골, 그래도 - 몽골 여행기 ep.2 [여행]

글 입력 2024.08.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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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에 특화된 여행사가 넘쳐 난다. 관광이 으레 그렇듯 가는 곳은 모두 엇비슷한데, 몽골 여행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광지는 몽골 남부 고비 지역에 위치한 홍고린엘스와 몽골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호수 홉스골이다. 두 지역 간 거리가 상당하기에 보통 일주일 이내의 단기 투어는 두 지역 중 한 곳만을 간다. 다양한 몽골의 모습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두 곳을 모두 갈 수 있는 이 주간의 장기 투어를 신청했지만, 몽골 여행을 계획하던 당시의 나에게 둘 중 한 곳을 포기하라고 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고비 사막을 포기했을 것이다. 사막에 대한 별다른 로망도 없었을뿐더러, 워낙에 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파아란 홉스골 호수가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금, 나는 망설임 없이 몽골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고비 사막, 홍고린엘스를 꼽는다.

 

 

 

사막을 오르는 일은


 

몽골 여행 4일 차, 몽골의 남부, 고비 지역으로 향했다. 고비 지역으로 달려갈수록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사막이 보였다. 사막과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게르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건조한 모래바람이 느껴졌고, 숙소 이곳저곳에서 모래 알갱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든든히 저녁을 먹고, 우리는 홍고린엘스로 향했다. 힘들기로 유명한 고비 사막 등반. 가이드님은 등반 과정에서 힘들 수 있으니 짐을 최대한 간소화해서 가져갈 것을, 또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면 걸음을 옮기는 일이 힘겨우므로 신발을 벗고 갈 것을 당부했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기 전, 사람들의 신발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 가지런히 나의 신발을 두며, 사막 등반이 안전하고 재밌기를 바랐다. 물과 선글라스, 약간의 비상약이 담긴 작디작은 여행용 가방을 뒤로 메고, 모래 썰매를 한 손에 든 채 나는 나름 비장하게 사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막을 오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들어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사막을, 엄청난 양의 모래로만 이루어진 그곳을 올라가 본 일이 없었기에 사막 등반의 어려움을 상상해 볼 순 없었다.


홍고린엘스 등반을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사막 등반의 어려움을 호소하는지 이해했다.


모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고운 입자의 모래들이 내 발을 집어삼켰다. 모래에 발이 파묻혀버리니, 일반 등산보다 배로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게 아니라, 내 발을 집어삼킨 엄청난 양의 모래로부터 내 발을 구출해 내는 것만 같았다. 사막을 오르기 위해서는 푹푹 꺼진 발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때 느껴지는 모래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그리고 그곳의 경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그리고 당연히 아니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완전한 수직으로 느껴졌다.


매일 같이 홍고린엘스를 등반했을 가이드님은 별 어려움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 뒤에서, 그를 힘겹게 쫓으며 끝없이 피어나는 의심을 떨치려 노력했다. 그 의심은,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였다. 높은 경사에 푹푹 꺼지는 발. 모래로만 이루어진 ‘거기서 거기인’ 발밑 풍경. 홍고린엘스를 오르다 보면 ‘내가 나아가고는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힘은 엄청나게 드는 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 곳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힘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정상을 바라봤는데, 정상은 내가 오르지 못할 것만 같은 아주 멀고 높은 곳에 있었다.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사막을 오르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건가?


생각이 그곳에 이르자, 배낭을 메고 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 손에 들려 있는, 높이도 상당한 플라스틱 모래 썰매는 사막 한 구석에 버려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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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고린엘스를 오르는 가이드님, 팀원들, 그리고 여러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누구도 밟지 않았던 쌩 모래(?)를 밟으며 배로 힘을 들였던 초반과는 달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새겨진 움푹 팬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걸었고, 거추장스러운 모래 썰매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어보며 최대한 힘을 들이지 않고 썰매를 이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사막을 오르는 일’에 꽤, 잘 적응해 갔다.


얼굴은 벌게지고, 숨은 가빠왔다. 뒤를 돌아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왔던 곳을 바라보았다. 꽤 멀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딱 내가 지나온 만큼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겼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어느새 절반이나 와 있었다. 그쯤부터 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 썰매를 앞으로 찍으며 그 거리만큼 앞으로 걸어갔다. 모래 썰매가 찍힌 곳까지 올라가면 다시 모래 썰매를 앞으로 찍어 옮기고 걸음을 재촉한다. 한 곳을 허우적거리며 제자리에 맴도는 게 아니라,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등반 초반 짐 덩이에 불과했던 모래 썰매가 어느새 나를 북돋고 있었다.


등반을 시작한 지 1시간, 나는 정상에 도착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막을 오르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나 힘든데, 정상에 올라가면 얼마나 뿌듯할까,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본 사막의 풍경. 고운 입자의 모래로 뒤덮인 그곳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나는 정상에 앉아 그 풍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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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오르는 일이 우리의 삶처럼 느껴진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는 탓에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이곳에서 계속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하지만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나아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그곳을 빠져 나와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무리 힘겨운 순간이 닥쳐도, 그 고통이 영원할 것 같아도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듯 살다 보면 나를 영영 가둘 것만 같은 순간은 나에게서 멀어지고 내가 닿고자 하는 목적지는 나에게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생의 고통도 어느 순간 끝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사막을 열정적으로 오르는 이도, 잠시 쉬어가는 이도, 그리고 너무 힘들어 포기하는 이도 있다. 사막을 오르는 이 한 시간 남짓한 여정 동안 그렇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을 위한, 그 순간의 최선의 선택. 무엇 하나 틀린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목표를 향해 한없이 달려갈 때도, 잠시 쉬어갈 때도, 혹은 그저 포기하고 돌아갈 때도 있다. 잘못된 선택도, 순간도 없다. 그저 그런 순간들이 한데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별다른 것 없다고 생각했던 사막이지만, 밑에서, 중간에서, 그리고 위에서 바라보는 사막의 풍경은 모두 달랐다. 똑같은 하루하루 같아 보여도 인생의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서 있는 풍경이 계속해서 달라져 있는 것처럼.

 

 


홉스골의 파란 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여행의 막바지, 우리는 8시간의 긴 이동을 거쳐 북부 홉스골로 향했다. 맑고 파란 물이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었다. 몽골 연휴 기간과 겹쳐 홉스골에는 몽골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은 인파와 긴 이동에 지쳐 홉스골에 도착한 첫날은 홉스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다음날, 나는 일찍 잠에서 깼다. 그날은 유일하게 이동하지 않는 날이었기에 팀원들은 짐을 싸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편히 잠들어 있었다. 점심을 먹기까지 아무 일정이 없었기에 무료했던 나는, 무작정 홉스골로 나가보았다. 사람들로 북적였던 어제와는 달리, 홉스골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를 사랑하는 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홉스골을 느끼기 위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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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골을 거닐었다. 선명한 파란색이 인상적이었던 홉스골.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가끔은 멈춰서서,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또 생각을 했다. 그때는 나름 진지한 - 삶의 방향이나 태도 같은 것들-을 생각했을 테지만 글을 쓰는 지금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무도 없던 한적한 아침, 드넓은 홉스골에서 혼자 고요를 느끼며 사색을 즐겼다는, 그 단편적인 기억만은 이렇게나 또렷이 기억나는데도.


홉스골을 멍하니, 고요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기에, 나는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답’이 아니라, 온전히 내 행복에 집중하고 살아가자고. 끝없는 인내를 통해 남부러워할 만한 성취를 거머쥔, ‘성공한 삶’에 대한 선례는 넘쳐나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나,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끝내 목표에 도달해 성공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성공이 비교적 획일적이고 단일한 반면, 행복의 형태는 제각각이라 그런 걸까. 그냥, 그곳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행복은 여기에 있다고. 나의 행복은 다양한 곳을 탐험하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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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홉스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엄청난 수의 야크 떼가 홉스골로 들이닥쳤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홉스골 호수로 단체 입수를 하는 것 아닌가. 언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겠나 싶어, 카메라를 꺼내 그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야크들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찍이 나를 피하지도 않았다. 맑은 홉스골 호수에 야크 떼들이 편히 몸을 맡긴 채 씻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난 그 곁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을 구경했다. 몽골 여행을 하며 수많은 동물들을 가까이 보았음에도 적응되지 않는 이 광경. 이후 게르로 돌아와 나는 팀원들에게 내가 본 야크 떼에 대해 신이 나게 이야기했다. 그 순간순간들이, 그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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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시작할 때부터 몽골이 애증이라고 밝혀두었다. 여행할 때는 힘들었던 것, 원망스러운 것, 증(憎)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은 미화되는 것일까, 글을 마치는 지금은 몽골에 대한 감정이 애(愛)에 훨씬 가까워진 것 같다. 길고도 짧았던, 행복하고도 징글징글했던,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던, 그래서 꿈같았던 이 주간의 몽골 여행.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가리라 결심하면서도, 다시 몽골로 떠날 생각을 하면 처음과는 달리 두렵기도 하다. 역시, 몽골은 애증이라니까.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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