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을 앞지르는 '알바'란 현실 -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배로나르다 알바의 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글 입력 2024.08.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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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CJ 아지트에서 진행되는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의 원작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배로나르다 알바의 집」을 바탕으로 한다. 우선, 이 연극에 흥미를 느끼게 된 지점은 총 세 개로 연극의 '포스터'와 '원작'인 로르카의 「배로나르다 알바의 집」, 그리고 국내 아방가르드 실험 극단의 대표주자인 '성북동 비둘기'의 대학로 공연 소식이었다. 이 세 지점을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의 포스터 이미지에 나타난 배수구 구멍 두 개, 인간의 두 눈,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대표작 〈풍선 개(Balloon dog, 1994-2002)〉의 상징에 대한 해석으로 갈무리하여 글을 전개할 것이다.

 

 

[크기변환]02-알바의집, 배로나르다 공연 포스터 이미지.jpg

 

 

 

인간의 두 눈


 

순차적인 배경 설명을 위해 포스터 중앙에 위치한 짙고 검은 두 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자 한다. 두 눈은 중심에 위치하여 관객을 꿰뚫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한 극의 원작인 「배로나르다 알바의 집」의 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적인 두 눈을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로르카는 1898년 안달루시아의 푸엔테바케로스 마을의 대지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안달루시아의 유럽 최초의 문명이 태생한 지 오래된 문화와 신비, 자연 속에서 자라났으며, 이후에 가족과 떨어져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에서 많은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1920년대 스페인의 예술적 기류에 영향을 받는다.


당대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이었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 헤라르도 디에고, 호르헤 기옌, 페드로 살리나스, 다마소 알론소, 라파엘 알베르티 등과 함께 예술적인 비전을 공유한다. 또한 로르카는 '자유교육협회'에 등록하여 인간 존재의 자유, 인간 본능에 대해 탐구하며 그 흐름을 자신의 작품에 초현실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현했다.


로르카는 문학 집필뿐만아니라 스페인 공화 정부 교육부의 지원으로 스페인 대중을 위한 순회공연 극단인 '바라카'를 창단하여 고전극을 현대에 맞게 개작하여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 냈다. 이때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한 3대 전원 비극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배로나르다 알바의 집」이 탄생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전을 각색하여 현대의 관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추구하는 '성북동 비둘기' 극단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로르카가 스페인을 살았던 시대는 양차 세계대전의 바람이 불어오며, 1936년에 들어서며 스페인 내전이란 이름과 함께 파시즘이란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동성애자이자 집시였던 그는 그라나다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스페인 극우파에 의해 총살당하는 시대의 비극에 희생되었다.

 


 

배수구 구멍 두 개


 

1930년대 스페인에서 다시 21세기로 돌아오자.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을 패배시킨 자유란 이름은 '자본'과 함께 돌아왔다. 신자유주의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신자본주의는 현대의 거울이다. 심지어 '순수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지며, 정신적인 것마저 구매하기 위해 값을 따지려고 들면 환산할 수 있는 '물질'로 변할 수 있다.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은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안전모를 쓴 노동자처럼 보이는 이들이 무대를 이곳저곳 살핀다. 그러나 극의 시작은 갑자기 단군신화의 내러티브를 보여주며 현실과 극을 완전히 분리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등장하는 '알바생'이란 이름의 비정규 임금노동자를 연상시키는 몸짓과 대사를 보여준다.


주방, 배달, 놀이공원, 건설, 물류 그리고 예술의 공간이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직업들이 기간제로 일하는 임금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테두리에 갇혀 그들의 노동력은 환산 당한다. 특히나 감정노동과 같은 영역은 고용주의 임의대로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노동 이외의 다양한 갑질을 참아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갑질이란 상황이 성립하게 되는 갑을관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용인이 고용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상호 관계적인 필요가 아닌 고용인에게 종속된 필요를 행하며 인간의 사회적 충족감을 떨어뜨리는 점이다.


포스터의 첫 번째 이미지인 배수구 구멍 두 개는 설거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요식업종에서 많이 쓰이는 두 개로 된 싱크대를 연상시킨다. 지금도 배수구 구멍 사이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이 쏟아부어지고 있을 것이다.

 

 

 

쿤스의 〈풍선 개(Balloon dog)〉


 

포스터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미지는 '살아있는 가장 비싼 작가'로 불리는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대표작 〈풍선 개(Balloon dog, 1994-2002)〉다. 그리고 그 비싼 풍선 개가 와장창 깨졌다.


2023년 2월 16일, 미국 마이애미의 아트 윈우드 아트페어 개막에 앞서 열린 VIP 행사에서 한 관객이 '풍선 개'를 받침대에서 떨어뜨렸다. 4만 2000달러(한화 약 5,500만 원)에 해당하는 도자기 작품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이 해프닝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아이러니하게도 깨진 조각마저 비싸게 팔릴 거란 전망이 나왔다.


이 사건이 처음에는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파는 작가인 제프 쿤스라는 이름하에는 어떠한 명명 혹은 가치가 자유자재로 바뀔 수 있는 현실이 필자에게는 너무나 하늘과 지하 같은 격차가 느껴지며, 그러한 재량이 없는 작가들이 받는 환경에 대한 부조리함까지 느꼈다.


하지만, 이 해프닝의 주도자는 어찌 보면 평범한 관객이었다(물론 아트페어에 VIP로 초대된 귀빈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풍선으로 만들어졌는지 만져보려는 간단한 확인을 제프 쿤스라는 이름 앞에 감히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한 금기를 깬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제프 쿤스 또한 깨진 풍선 개의 소식을 듣고 '정확히 내 의도대로 됐다'고 표하지 않았던가. 전쟁과 파시즘앞에 굴복을 저항하는 문학썼던 로르카와 같이 자본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 꿇지 않도록, 다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길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 함께, 극은 과로한 건설노동자를 부활시킨다.


극을 마치며, 커튼콜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든 배우분이 앞으로 나와 한 분씩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과로사로 쓰러져계셨던 배우분의 눈은 물에 젖은 조약돌처럼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예술을 배우며 사는 당사자로서 그 배우분께서 극단에 들어가고 예술을 하기 위해 걸었을 많은 길이 상상되었다. 스무 살 시절, 노동강도가 높은 호프집에서 같이 일했던 디자인과, 실용음악과, 패션과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노동이 삶으로 들어와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될 때의 그 현전의 감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으로 예술이 나의 삶이 되었다.

 

 

 

변의정.jpg

 

 

[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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