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밤에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글 입력 2024.08.2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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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에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번 천둥이 치는 순간 어딘가 다른 세계로 옮겨져 있을 것만 같다거나, 지난날 어느 때에서 눈 뜰 것 같은 느낌. 여름날의 상상은 그렇게 도피처가 된다.

 

곧이어 의식은 어린 시절의 여름으로 나를 데려간다.

 

밤늦게까지 놀이터 가로등 아래 나를 기다려주던 엄마. 크록스를 신고 음료수를 털어 마시며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친구들의 분홍빛 얼굴. 곤충 키우기를 좋아하던 친구 덕에 매미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았다가 잠을 설친 기억과(나는 곤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 돌아갈 때 빵빵한 가방을 메느라 한쪽 어깨가 높아진 아빠의 뒷모습.

 

현실로 돌아와 리모컨 버튼을 누르니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재생되기 시작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과거의 여운 위로 현재의 여운이 덧씌워진다.

 

이번 여름은 특히나 더웠는데, 내겐 올여름이 으레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꼽히는 2018년보다 더 덥게 느껴졌다. ‘내가 옥수수였다면 이미 팝콘이 됐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러 나가자마자 훅 끼쳐오는 뜨거운 공기에 휴대전화 메모장에 휘갈긴 문구처럼.

 

어쩌면 여름은 모든 것을 끓게 만들기 때문에 평소라면 떠오르지 않았을 기억들이 끓어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적처럼 남은 기억과 시간은 꺼내보는 게 맞는 걸까, 발굴하지 않은 채로 두어도 좋은 걸까.

 

흙 속에 묻혀 있던 유적은 우연히 발견되기도 한다. 꺼내어 흙을 털어내고 빛을 비추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어떤 기억들은 굳이 되살려내지 않아도 무의식 안에 자리 잡고 우리 존재를 구성한다.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고요하더라도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며칠 전 2024년의 처서가 지났다.

 

좋은 생각을 하기 어려워질 땐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밤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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