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바깥을 달리는 [문학]

<천 개의 파랑>, 천선란
글 입력 2024.08.2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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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인가, 아닌가 


 

“인류사는 공감 대상의 확장의 역사”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괄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기존에 배제되었던 소수자 집단이 점차 주류 집단으로 속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소수자 집단 또한 일정한 권리와 자격을 지닌 인격체로 격상되었다는 것이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정치 참여는 불가했으며,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백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류사에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을 겪으며 주류사회는 소수를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인류 역사로 편입된 순간이었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 동안 간과되었던 그들의 권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주류는 지금껏 논의해본 적 없는 종류의 인간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달라졌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고, ‘유색인종’이라는 구분은 낡아빠진 구분법이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도 훼손될 수 없는 핵심적인 도덕 원칙으로서, 인간의 정신과 행동 모두를 지배할 만큼의 지위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 실제가 언제나 같을 수는 없듯, 제일의 도덕규범도 현실 앞에서는 기세를 죽이곤 한다. 모든 인간이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받고 있냐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약자가 존재한다. 동시에 기술의 발전과 의식 변화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약자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의 주류에서 소외되어 또다시 외따로 떨어졌다.

 

한두 세기 전의 그들은 보통의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을 벌였고, 마찬가지로 가까운 미래의 언젠가 누군가는 비슷한 투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서 멀어지는 존재는 당연히 생겨날 테니까. 그러나 인류가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갈수록 확장된다면, 미래의 투쟁은 인간 외의 존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주류는 소수의 인간 외에도 또 어떤 존재와 함께해야 할까? 지구상에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존재가 세상을 채우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 그리는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잔잔한 호수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듯 유사한 질문을 던진다. 그 시점의 인류는 또 어떤 소수를 만나게 될까, 그들은 그 삶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을까. 인류가 나아가게 될, 미래의 또 다른 세계로 헤엄쳐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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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와 동물, 그리고 인간의 세계


 

모든 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 콜리에게서 시작된다. 말이 기수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큼 가볍고, 설령 말에서 떨어져 박살나더라도 가차없이 바꿔치울 수 있는, 인간 기수의 한계를 극복하여 만들어진 기수 휴머노이드, C-27이 바로 콜리였다. 그러나 다른 휴머노이드와 콜리는 분명히 달랐다. 인지와 학습 능력이 담긴 학습 휴머노이드용 칩이 여러 차례의 실수를 거쳐 마침내 콜리에게 잘못 삽입된 것이다. 콜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것은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콜리만의 매력 하나를 만들어 주었는데, 바로 인간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 콜리는 “찬란하다”며 감탄했고, 경마장의 기수 관리자 민주를 향해 “왜 말은 달려야 하나요?”라며 질문할 줄 알았다. 그렇게 어딘지 이상한 콜리는 파트너 경주마 ‘투데이’와 함께 홀로그램 하늘 아래에서 여러 차례의 경주에 참가했지만, 어떠한 실수로 한 순간에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를 계기로 콜리에게 제2의 인생이 주어졌다. 인간 소녀 연재가 콜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콜리는 연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세계로 왔다. 경마장 바깥의 사람들은 너무도 복잡했다. 연재의 집에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생업에 매진하는 엄마 보경과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로 세상을 보는 언니 은혜가 있었다. 또한 연재의 친구 지수는 가끔씩 집을 찾아와 뜻 모를 시선을 보내곤 했고, 경마장의 말을 돌보는 수의사 복희는 동물을 치료하는 직업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으로 괴로워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섬세한 마음을 가져서 묘사하지 못할 괴로움에 빠지곤 했고 서로를 믿지 못했다. 그런 세상에 콜리가 왔다. 미지의 존재는 불쑥 몸을 들이밀더니 자리에 척 앉았다. 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인간도 아닌,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가진 존재에 의해서.

 

 

 

소외는 다만 누구에게 그치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의 주류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 보경의 어머니는 은행원이었으나 휴머노이드의 보급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고, 소방관이던 보경의 남편은 휴머노이드 제작에 정부의 지원 예산이 쏠린 탓에 교체하지 못한 오래된 소방복을 입고 출동을 나갔다가 열기로 옷이 눌어붙은 채 질식하여 세상을 떠났다. 다리가 불편한 은혜는 대중교통을 사용하기도 어려운 데다 자기들 좋을 대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늘 혼자였다.

 

투데이를 비롯한 경주마들은 경마장의 관리자들이 요구하는 때에 기수를 태우고 아무 의미 없는 경주를 마구 달려야 한다. 그들은 네 다리가 멀쩡하고 온화하여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마음대로 달릴 수는 없었다. 가끔은 승부조작을 통해 큰돈을 만져보려는 어둠의 손길로 인해, 때에 따라 밥을 거르기도 하고 평소보다 무겁게 조작된 휴머노이드 기수를 업고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발생한다. 부상을 당하거나 너무 나이가 들어 기존의 기량을 낼 수 없으리라 판단되는 경우, 냉철한 평가가 시작된다. 치료해서라도 다시 달리는 쪽과, 은퇴시키는 쪽 가운데 더욱 효용이 큰 쪽을 고르자며 관계자들 사이에서 몇 차례 말이 오가고 나면 그들의 처분이 결정된다. 대부분의 경우, 부위별로 조각나서 이리저리로 팔려나간다. 그들은 살아있다가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에게 가장 큰 효용이 되는 방향으로 처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경마장의 말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인간이 아닌 생명은 인간이 좋을 대로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 죽는다. 특히 말과 같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동물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한 소유와 지배 아래 놓여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분명 지구는 동물과 식물, 인간이 함께하는 서식지이건만,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채 목줄이 매여져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 놓이게 된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손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이내, 기술 발전으로 새로이 등장한 존재에게도 손을 뻗는다. 그것이 작품 속에서는 휴머노이드로 등장했다. 콜리는 로봇의 몸과 사람의 판단력을 지닌, 그 중간 어딘가의 존재다. 그러나 처우는 인간의 반만큼도 되지 못한다. 콜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시멘트 방에 갇혀 보낸다. 그러다 보면 관리자가 찾아와 그를 데리고 가 말에 태운다. 그러면 콜리는 말의 등에 납작 엎드려 앞을 바라보고 한참을 달린다. 보통의 인간 기수에 비해 가볍게 설계된 덕에 경주마는 평균 90km/h라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질주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기수 휴머노이드의 하체는 링크 구조로 설계되어 스스로 반동을 흡수하고, 엉덩이에는 유압기가 설치되어 안장에 닿는 충격을 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인간 기수에 비해 콜리의 몸은 건재하다. 그러니 콜리는 꽤 오랫동안 살아있을 수 있다. 그들이 쓰임새를 다했다고 명하고, 그 이후 어딘가로 팔려가 산산조각나서 다른 존재의 부품이 되기 전까지는.

 

결과적으로 기술 발전은 인간의 수고를 더는 성과를 이루어냈으나, 동시에 그에 발맞추지 못하는 비주류의 존재들을 선 밖으로 밀어냈다. 같은 인간과 동물들, 심지어는 인류가 첨단기술을 집약해 직접 만들어낸 존재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한 소외와 이탈의 과정에서,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발전에서 소외된 사람들, 동물들, 그 밖의 지구 이웃들과 휴머노이드는 힘과 권력을 지닌 주류가 일컫는 ‘우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회를 통솔하고 발전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부르짖는 우리란 것은, 그들이 볼 수 있는 만큼의 인간뿐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기술과 발전에서 도태된 생활을 살고 있었다. 동물을 비롯한 지구 이웃들과 휴머노이드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들은 죽음마저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투데이와 콜리는 숨은 쉬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주류의 인간이 그들에게 불어넣은 욕망의 숨결이었다.

 

 

 

그러므로 더 넓은 ‘우리’를 향해서


 

이러한 서사는 마치 동물 등 지구 이웃들과 기술 발전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상 인류의 급진적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어 착취당할 비주류의 인간, 동물 및 지구 이웃, 그리고 제3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생명체와 비생명체, 그리고 종의 구분은 효과가 없다.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것에서는 어떤 존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동물, 그리고 기술 발전으로 새로이 태어난 존재까지를 포괄하는 세계관이 필요하다. 각자의 생김새는 매우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를지언정, 그들은 공통된 정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투데이와 콜리는 함께 달리고 호흡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만신창이가 된 채 마방에 누워있는 콜리에게서 연재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보았다. 은혜가 투데이를 보며 느끼는 연민은 그들 자신이 지닌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이별의 슬픔을 묵히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보경을 향해, 콜리는 과거의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현재에서 조금씩 행복을 쌓아가는 것뿐이라며 그녀의 말을 되돌려준다. 안락사될 투데이를 향해 누구도 쉽사리 손 내밀지 못하는 가운데, 마침내 콜리의 제안으로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투데이의 생을 지켜낸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휴머노이드는 너무나 다른 존재나, 그들은 주류 인간에게 내몰려 첨단으로부터 소외되었으나 그 상처를 서로의 존재로 보듬어간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들은 인간, 동물, 혹은 그 외로 구분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생명과 종의 구분을 초월하는, 그들 모두를 포괄하는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이다. 그러한 영역 안에서 그들은 공통된 정서로 소통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고,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

 

그러므로 <천 개의 파랑>이 지향하는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 목소리를 내비치는 주류 인간의 것만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인간과 동물, 그리고 미래의 기술이 만들어낼 미지의 존재와 그 밖에도 지구를 이루는 작고 힘없는 존재들을 모두 껴안는 세계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쓰임만으로 존재의 가치를 분별하지 않고, 소유를 주장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가 자신만의 명예로운 생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태도. 이로 하여금 더욱 크고 포용적인 우리를 꾸려나가고, 인간의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가벼이 소비되지 않는, 그야말로 모두의 지구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분명 콜리 몫의 자리도 있을 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콜리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콜리가 꾸려나가는 삶의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다. 투데이에게 경마장 바깥의 삶이 주어진 것처럼, 콜리에게도 다음이 있을까. 이미 콜리가 제2의 생을 얻었다면, 응당 그다음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로봇의 몸과 인간의 마음을 지닌 콜리는 어딘가에 가만히 앉아서 다음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 소유의 대상에서 해방될 실수를, 바깥세상으로 나설 기회를,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찾아올 그 소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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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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