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작가님께

글 입력 2024.08.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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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여름밤620. 50호. 2021..jpeg
여름밤620. 50호. 2021. 사진출처 : 정영주 작가 블로그

 

 

정영주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 팬입니다.


저는 달동네 풍경에 익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90년대 후반 경기도 남부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자랐어요. 다른 주거 형태를 경험하는 것은 제가 부러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신기했습니다. 판자촌에 살기는커녕 구경조차 몇차례 해보지 못했음에도,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이유 없이 새로운 감동이 느껴졌거든요.


처음에는 늦은 밤 집 사이사이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낯설어하는 저를 발견했고, 그다음에는 시선을 조금씩 위로 올려 집집마다 달려있는 환한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곤 그 모든 걸 합쳐놓은 듯한 달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렸을 적 남해 땅끝마을을 여행 갔을 때의 짧은 찰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주변에 낮은 높이의 집이 가득한 중에 달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골목 사이사이에서 누군가 저녁을 짓는 듯한 냄새가 풍겨오기도 했어요. 그림을 볼 때면 그 안을 들어가 보는 제 모습이 연상되곤 했습니다.


이런 저의 감상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풍경을 흔히 접하지 못했을 MZ세대 역시 작품을 보고 유사한 감동을 받는다는 점에서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한다"는 내용의 평론을 본 적이 있거든요.

 

 

[크기변환]지붕818, 10호, 2023..jpeg
지붕818, 10호, 2023. 사진출처 : 정영주 작가 블로그

 

 

사무치는 추억이 아니라 스쳐 가는 이미지임에도, 제게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그려낸 작품도 많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 따스한 색감의 작품도 참 많은데 왜 달동네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는지를요.


저를 잡아 이끈 것은 어두운 마을 풍경에 내리쬔 따스한 빛인 것 같아요. 빛을 머금은 한지가 포근함을 안겨주는 걸 느꼈어요. 작가님의 작품은 실제로 봐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과거에 인터뷰하신 내용을 보았는데, 어린 작가님께 온기를 채워주었던 동네 풍경을 배경 삼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장소를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더라도, 존재만으로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느낌을 줍니다. 설령 지금은 실재하지 않더라도요.


그 이유는 그 속에 가족이 머무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장소의 모습은 다르지만, 가족들이 집 안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하는 시간에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달동네의 밤 풍경을 그리는 이유가 밤에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라는 말씀이 와닿았던 이유도 같습니다. 밤보다 낮을 훨씬 더 좋아하는 저인데,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과 조잘조잘 얘기 나눌 수 있는 게 제게도 커다란 밤의 행복이거든요. 제 마음 한켠에 늘 품고 있던 소중한 추억들을 새삼스레 빛으로 어루만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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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기억 1026, 100호f. 사진출처 : 정영주 작가 블로그

 

 

이번 여름 더위가 그렇게 기승을 부렸는데도, 밤에 매미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걸 느끼면 벌써부터 여름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이 아쉬워서 앞으로 다양한 곳의 사라지는 것들을 작품에 담으려 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무척 기대됩니다. 저마다의 소외된 추억들이 작가님 작품에서 되살아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작가님 작품을 찾아다니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서현 올림.

 

 

[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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