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시장에 매달린 캔버스천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8.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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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미술사 계보에서 풍부한 색체와 캔버스의 대상성의 관계를 탐구한 샘 길리엄(Sam Gilliam, 1933-2022)의 작업을 소개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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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Gilliam, Double Merge, 1968

 

 

미국의 추상화가 샘 길리엄은 미술사 흐름에서 주요한 변곡점이 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휘장 회화(drape painting)'를 제작하며 당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71년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의 전시 시리즈《Project》에 네 번째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이어 1972년 제 3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 전시에 참여했다.

 

제 3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은 선정된 여섯명의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길리엄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에 선정된 최초의 흑인작가였으며, 그를 비롯해 Ron Davis, Richard Estes, James Nutt, Keith Sonnie, Diane Arbus가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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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Gilliam, Yves Klein Blue, 2017, acrylic on Cerex nylon.

2017년 제 57회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전경

 

 

이렇게 당대 큰 주목을 받은 길리엄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먼저 1960년대 후반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미학과 그에 반하는 포스트모던미술의 관계 속에서 길리엄을 형식주의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며 이는 길리엄을 워싱턴색채파(Washington Color School)로 파악하는 대부분의 연구에서 기본적으로 공유되는 시각이라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으로 길리엄의 인종에 주목한 시각이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은 흑인인권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이는 미술계에도 비판적 시각을 요구했다.

 

이런 시대적 맥락은 1974년 맥크리디(Eric S. McCready)가 기고한 짧은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맥크리디는 핸리 태너(Henry Ossawa Tanner, 1859-1937)와 길리엄을 사례로 흑인 미술가의 자기 정체성 인식과 방향에 대해 질문하며, 길리엄이 미술사적 흐름과 미학적 탐구에 입각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보여온 행보는 그를 소위 “배신자”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흑인사회의 시대적 요구와 형식주의 미학의 관계는 길리엄의 작업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1. 워싱턴 색채파 시기 - 길리엄은 1962년 워싱턴으로 이주하여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 1912-1962)와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1924-2010)를 비롯한 작가들과 함께 했다. 이들은 색면추상 계열의 화가들로 분류되며, 워싱턴색채파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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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 Louis, Phi, 1960

 

 

이 그룹을 대표하는 작가로 루이스를 말할 수 있다. 미술사학자 전혜숙에 따르면 루이스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후기 회화적 추상 혹은 색면 추상의 맥락으로 대표된다. 루이스는 큐비즘과 폴록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환영주의를 거부하며, 착색 기법(stain technique)을 이용하여 형상-배경의 관계를 벗어나는 방식을 통해 평면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루이스의 성취는 1960년 클래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출판한 에세이 “루이스와 놀란드”를 출판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시기에 길리엄의 작업은 루이스와 색체, 구도, 날카로운 면 등에서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특히 길리엄의 <여섯번 쏘기 Shoot Six>(1965), <긴 녹색 Long Green>(1965)와 루이스의 <따뜻한 절반 Hot Half>(1962)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후 1966년과 1967년에는 그의 날카로운 경계면들이 서로 섞이며 길리엄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발달해간다. <오래된 Paleo>(1966)는 길리엄이 처음으로 제시한 큰 규모의 회화이며, 길리엄이 이 시기 색면추상으로부터 출발해 자신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습득해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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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Gilliam, Green April, 1969.

2018년 쿤스트바젤의 전시 《The Music of Color (1967–73)》 전경

 

 

2. 폴록의 유산과 길리엄의 확장 - ‘빗각 캔버스 회화(beveled-edge painting)’은 마치 폴록과 같이 추상표현주의적 작업을 한 캔버스를 3차원의 공간에서 볼륨이 있도록 구겨놓은 상태로 건조한 후 이를 다시 펴서 모서리가 45도로 가공된 틀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1967년부터 시작된 빗각 캔버스 회화 시리즈는 그가 앞선 시기 모더니즘 비평에서 논의되던 바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길리엄이 폴록을 위신한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을 차용함과 동시에 캔버스 자체가 입체감을 갖게되는 빗각 캔버스 틀을 통해 그를 비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면 처리된 캔버스의 모서리는 색면의 효과를 최대화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바라볼 때 입체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는 모순적인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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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각 캔버스 회화를 선보이고 1년후 길리엄은 휘장 회화 연작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표면은 더 이상 작업의 최종 단계가 아니다. ... 이는 회화를 구축된 관계의 관점에서 혹은 오브제로서 정의하는 것을 제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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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Gilliam, Rondo, 1971, acrylic on canvas on oak beam.

 

 

캔버스의 틀, 지지대를 완전히 벗어날 길리엄의 휘장 회화는 천장에 매달리거나 공간을 가로질러 설치되어있다. 이때 캔버스는 더 이상 평면성을 담보하기위한 매체가 아니며 길리엄이 강조했듯 오브제 자체로서 제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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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Gilliam, Seahorses, 1975

 

 

프레임을 버린 이 휘장은 벽, 설치 공간 등 물리적 공간과 관람자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하며, 이는 마치 미니멀리즘 작업의 비평에서 언급되는 현상학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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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샌프란시스코미술관에서 개최된

《공간 속 작업들 Works in Spaces》전시 전경

 

 

또한 길리엄의 작업은 공간에 설치되어 건축의 일부가 된다. 1973년 샌프란시스코미술관은 《공간 속 작업들 Works in Spaces》전에서 길리엄의 작업을 선보였고 이는 그의 작업이 공간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길리엄의 작업은 추상표현주의의 계보 속에서 출발했음에도 1960-7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연계되는 문제의식이 보여진다. 이는 길리엄의 작업을 직접 만났을때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파리 여행에서 길리엄의 작업을 프랑스 루이비통뮤지엄에서 직접 보았다. 휘장 회화의 거대한 크기, 전시장에 매달려 중력을 받아 포물선을 그리며 매달린 모양, 모든 면에 칠해진 강렬한 색체와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움직임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전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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