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연한 취향에 대해

글 입력 2024.08.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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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우연에서 발현된다.

 

그래서 날마다 취향을 찾아 살아가는 순간은 삶을 재밌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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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차갑지만 나무 향이 더 진하게 나는 겨울의 한숨.

 

봄의 따뜻한 벚꽃과 햇살의 향, 여름의 시원한 바다향과 박하 같은 풀 향이, 가을의 낙엽과 도토리와 밤이 가득한 절 향이 내 취향이다. 이는 정말 우연하게 내 코 끝을 지나간 순간의 향과 느낀 감정들의 향.

 

처음 먹어보는 것들에 두려움이 깨지고 취향으로 바뀌는 순간.

 

그게 살구였다. 솜털이 촘촘하게 느껴지는 살구를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어느 날은 아주 예쁘고 큰 살구를 엄마가 하나 줬는데, 그 살구를 한입 먹는 순간 솜털로 인한 거부감은 취향으로 바뀌였다. 아주 우연하게도 재밌게도. 과육은 너무 부드러웠고 새콤하고 달콤했다. 예민한 나의 어떤 것들에 솜털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살구의 모든 것이 너무 예뻐서 어느새 우연한 취향이 됐다. 이름도 맛도 향기도 식감도 색도 그저 빛 좋은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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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동네에서도 발견된다. 유독 나와 안 맞는 동네와 장소가 있다. 대개 유흥이 많은 곳들과 사람이 많은 곳들은 잔뜩 긴장되고 정신도 없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기운이 쭉 빠진다. 나는 조금 편협해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만을 열렬히 좋아한다. 모든 게 편하고 좋은 무언가들이 자꾸 눈에 띈다. 좋아하는 동네라 더 그런지 아니면 마음이 여유롭고 편해서 그런지.

 

오늘도 햇살에 비친 늦여름의 저물어가는 능소화를 보면서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스카프를 서서 만지작거리고 계셨다. 그 뒤로 다른 할머니 분께서 멈춰 서서 스카프를 만지고 계신 할머니와 얘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스카프를 못 풀고 계신 줄 알고 풀어주려고 멈춰 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냥 옷매무새를 잠깐 멈춰서 다듬고 계신 거였고 두 분은 허허 웃으며 고맙다는 안부를 끝으로 각자 걸어갔다.

 

세심하다. 나도 매번 이 동네를 걸을 때마다 아주아주 느긋하게 걸으며 작은 개미 하나까지도 구경하면서 걷는데 할머니도 세상을 넓게 보시며 도와주시려는 저 세심함이 너무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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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하고 따뜻한 게 좋다. 늘 그래왔다. 취향은 우연이 되고 우연하게 맞이한 취향은 배움이 된다. 나도 다정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동경했고 그들처럼 다정하고 세심한 세상 속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취향이 우연이라고 했다. 사실 이건 내가 직접 경험을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다정한 행동으로 권유로 다양한 사람의 선물로 타인을 통한 경험을 해보며 스스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법을 우연하게 배웠다. 내가 이게 취향이 될 것이라고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알지 못했으니.

 

앞으로 맞이할 우연한 취향들의 하루하루가 기대된다.

 

그럼 매일이 소중한 하루가 될 테니 작은 거라도 취향들을 가득 수집해야지.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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